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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근조청조림

순남씨의 부엌에서 내가 컸다

 큰할머니 이야기를 하고 싶다. 큰할머니는 우리 할아버지 바로 윗 형님의 부인이시다. 우리 할머니와 큰할머니가 서로를 어떤 호칭으로 부르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 분이 대화를 나누시는 걸 내가 주의 깊게 들었을 리 없다. 우리 할머니가 큰할머니에게 “형님”이라고 부르셨겠지? 


나에게 상대방에 대해 언급하실 때는 우리 할머니는 “큰할머니한테” 라고 하셨고, 큰할머니는 나에게 “늬히 할머니”라고 하셨던 것 같다. 큰할머니는 약간 허리가 굽어있는 상태셨는데 언제부터 그렇게 되셨을려나. 여하튼 내 기억 속의 큰할머니 모습은 그러하다. 살집도 없으셨고 꼬장꼬장하셨다. 어느 날 부터 큰할머니께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는데 어린 시절 나만의 미스터리 중의 하나였다. 큰할머니는 그러실 분이 아니셨는데 말이다.      


큰할머니와 큰할아버지가 사시는 집은 ‘큰집’이라고 불렀다. 큰집은 존들에 있었다. ‘문곡리’라는 행정구역 명칭은 중학교 때 쯤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존들은 ‘좋은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들녘은 없었는데 말이다. 강이 앞에 흘러서 그랬을까. 큰집은 기찻길이 지나가는 바람에 외딴 섬처럼 고립되어 버린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부락의 언덕에 있었다. 


존들에 가려면 걸어 가야했다. 원하는 시간에 버스가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존들은 우리 집이 있는 시내에서 한 시간은 족히 걸어가야 했다. 가는 길에 고갯마루도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옛날옛날 아주 옛날에는 호랑이도 나왔다고 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키도 크셨고 엄청 성격도 급하셨기 때문에 발걸음도 빨랐다. 큰집 가는 길을 생각할 때면 할아버지가 너무 아득하게 앞에 가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신작로에서 큰집으로 도착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고개를 넘어 한참을 걷다 보면 신작로에서 철도 아래로 만들어진 굴다리가 보인다. 굴다리를 통과해야 마을이 나왔다. 굴다리에는 마을을 휘감고 나오는 자박한 개울이 길바닥을 질척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인지 자갈이 깔려있었다. 울퉁불퉁하고 미끈거리는 자갈밭은 딱 굴다리 안에만 있었다. 


굴다리를 나와 이웃집을 몇 채 지나고 나면 경사가 급한 짧은 비탈길을 올라가야했다. 한 명이 간신히 발을 디딜만한 평평한 돌들이 Z 자로 박힌 비탈길을 오르면 큰집 마당이 나왔다. 또 다른 길은 약간 위험하긴 하지만 비탈길을 오르지 않고 빨리 갈 수 있었다. 신작로에서 굴다리로 들어서지 않고 조금 더 가면 길은 아닌데 사람들의 왕래로 만들어진 오솔길이 나왔다. 이 길은 바로 철길을 건너는 길이다. 그냥 무단횡단이다. 지금 같으면 큰일날 일이다. 

기차가 오는지 잘 살핀 후 전속력으로 기찻길을 건너면 다시 오솔길이 나왔다. 길의 오른편은 산자락이고 왼편은 비탈진 언덕이 내려다보인다. 이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큰집 대문이 나왔다. 큰집과 기찻길 사이에 있는 비탈진 언덕은 모두 큰집의 포도밭이었다.  큰집의 포도밭은 다른 사람이 농사를 짓는 것 같았다. 큰할머니가 혼자 농사를 지시기에 밭이 너무 컸다. 

     

존들에 있는 큰집에 가서 지내던 제사를 어느 날부터 우리집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큰할아버지는 네 형제 중 첫째가 아닌 둘째셨다. 제일 큰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고 했다. 서울에 살고 계셨던 막내 할아버지는 제사나 명절에 잘 오시지 않으셨다. 큰할아버지는 읍내에 있는 다방으로 마실을 매일같이 나오셨다. 나도 알고 있었다. 큰할아버지가 어느 다방에 계시는지. 어차피 큰할아버지와 우리 할아버지 두 분만 제사를 모셨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제사를 지내기로 하신 모양이다.

     

제삿날이 되면 점심 때가 지나 큰할머니가 오시곤 했다. 큰할머니는 ‘부침게’ 전담이셨다. 쪼그리고 앉으셔서 오후 내내 전을 부치셨다. 제사는 밤에 치러지는 이벤트이므로 오후에 전을 부치신 듯 싶다. 명절날 차례는 아침에 지내므로 그 전날 오후 내내 전을 부치셨다. 큰할머니께서 솥뚜껑을 거꾸로 뒤집어 우묵한 불판으로 전을 부치시는 모습은 큰할머니의 시그니쳐 이미지다. 뒤집힌 솥뚜껑 팬은 가운데로  기름이 고이기 때문에 달구어지 기름을 잘 다루는 것이 중요했다. 전이 타지 않도록 전의 위치를 때 맞춰 솥뚜껑 가장자리로 옮기는 집중력도 필요하다. 솥뚜껑 아래 열원이 장작불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큰할머니는 대단한 제어 능력의 소유자셨다.      


제사상에는 몇 가지 전이 올라갔는데, 전을 부치는 순서가 있었다. 하얀 밀전병처럼 밀가루 반죽으로 동그랗게 모양을 잡은 후 삼각형의 꼭지 점이 되는 위치에 다진 쇠고기 고명을 소량 올려 부쳐내셨다. 찾아보니 지방에 따라 배추, 부추, 멸치를 올리기도 하나 보다. 우리 집에서는 다진 쇠고기를 세 꼭지 점에 올려 부쳐 내셨다. 별 맛은 없었다. 아무 맛이 없다는 뜻이다. 짠맛도 아니고 단맛도 아닌. 제일 맛없는 전이었다. 


그 다음은 두부를 세로로 썰어 넓적하게 부쳐 내셨다. 이 또한 그리 맛은 없었다. 큰할머니는 부쳐 낸 전은 조상님이 드시고 나서 먹어야 한다고 하시며 기미를 시켜주시지 않았다. 식어빠진 두부전은 꾸덕하다 못해 딱딱했고 간도 없어서 맛이 없었다. 


그 다음은 육전이다. 쇠고기를 얇게 포를 떠서 살금살금 칼집을 낸 후 밑간을 해서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 물을 입혀 지져 내셨다. 다 아는 맛이다. 육전이 내 차지가 된 적은 거의 없지만 어쩌다 먹게 되었을 때 강렬한 감칠맛이 좋았다. 그리고 동태전이다. 동태전은 육전보다는 많이 만드셨는데 가끔 가시가 걸려서 조심해서 먹어야했다. 


마지막은 항상 동그랑땡이었다. 동그랑땡 반죽이 준비되면 동글고 납작하게 한 개씩 조물조물 만드는 것은 내 몫이었다. 지글지글 동그란땡 사이에서 기름과 함께 올라오는 계란 거품은 여전히 눈에 선하다.      


큰할머니는 말수도 별로 없으셨던 것 같다. 잔소리가 기억나지 않는다. 가끔 우리 할머니는 젊은 시절 큰집과의 서운한 일들을 말씀하시긴 하셨다. 어린이인 내 눈에도 큰집 살림이 훨씬 여유로웠다. 어느 여름 방학 때였다 큰집에 갔을 때 큰할머니는 뚜껑이 있는 작은 스뎅주발에 밥을 담아 주셨다. 살면서 처음 받아 본 뚜껑 있는 밥그릇이었다. 마당에 토란이 있었다. 내 키보다 큰 토란줄기에 달린 잎에 물방울을 굴리며 놀았다. 


큰집은 적산가옥처럼 생긴 집을 개조한 것이었는데 안방도 윗방도 우리 집보다 쾌적했고 깨끗했다. 부엌은 가운데 문이 있을 정도로 널찍하고 크기가 컸다. 큰집에도 아궁이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걸려 있었다. 나는 큰집에서 조청에 조린 연근을 처음 먹어보았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연근절편이 윤기나는 검은 조청 안에 들어있었다. 연근조청조림은 요즘의 홍삼절편마냥 꾸덕하고 쫄깃했다. 서걱거리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젤리가 되기 일보직전의 식감이었다.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큰집 부엌 부뚜막에서 먹었던 연근조청조림을 어디서도 본 적도 없다.  연근은 귀한 식재료였다. 도시락 반찬으로 연근을 싸오는 친구는 없었다. 우리 집에서 연근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먹은 기억이 없다. 그걸 큰집에서는 간식으로 먹은 셈이었다. 그래서 연근은. 반찬이 아닌 별미 간식인줄 알고 지냈다. 어른이 되어 자연스럽게 어디선가 간장에 조린 연근 조림을 먹게 되었고, 가끔 나도 엉성한 연근 조림을 만들어 먹는다. 달지도 않고 짠맛만 가득한 어석거리는 연근을 씹을 때면 다음에는 조금 더 졸여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러다 요즘들어 생각난 것은 큰집에서 먹었던 연근조청조림에는 조청이 필수라는 것이다. 그리고 조청을 만들던 우리 할머니 모습이 생각난 것이다! 무를 넣고 만드셨던 것 같다. 그 조청 자체가 짙은 밤색을 넘어 감은 빛깔이었다. 조청은 약이라고 하셨고 흰 가래떡에도 찍어 먹었었다! 요즘은 조정이 없으니 대신 꿀을 찍어 먹는데 영 그맛이 나지 않는다. 씁쓸하면서도 달작지근한 맛.      


할머니의 무조청을 만들수는 없고 충청도 어디엔가 있을까 싶어 찾아보니 있다!  온라인으로는 괴산장터가 오프라인으로는 제천 금성면의 곰바위마을에서 조청을 만드신단다. 이 겨울이 끝나기 전에 곰바위마을에 가야겠다. 조청은 겨울에 먹어야 맛있다고 우리 할머니가 일러 주셨었다!. 연근조림은 그 다음에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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