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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사촌의 간식 초코파이와 야쿠르트

순남씨 부엌에서 내가 컸다

 여름이다. 여름방학이 되면 사촌들이 우리 집에 놀러왔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내가 첫손주다. 그러니 내 사촌들은 모두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이제 중년이 된 사촌들에게는 ‘방학을 맞아 어릴 적 시골에 있던 외갓집에 갔었지’라는 한 자락의  추억이 되었을까. 내가 외사촌의 방문을 기다렸다는 기억은 없다. 번잡스럽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의례 그러려니 했던 것 같다. 내가 사촌들을 살갑게 대했을 것 같지도 없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그렇다. 사람은 잘 안 변한다.      


방학이 끝나면 학교를 가야하는 사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지만 가끔 취학 연령이 안 된 어린 사촌이 집에 남는 경우가 있었다. 바쁜 이모를 도와주려고 잠시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맡아주는 기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때가 되면 주로 할머니가 사촌을 그들의 집으로 데려다 주곤 하셨다.

      

어느 날인가 할머니가 나에게 셋째 이모의 막내 딸이 얼마나 영특하게 간식을 먹는지 이야기 해주셨다. 아이를 데려다 주러 기차를 타고 가는 길이었는데 순둥이였던 어린 사촌은 조그만 손으로 초코파이를 한 점 떼어 먹고 나서 빨대가 꽂혀 있던 야쿠르트를 한 모금 쪽 빨더란다. 초코파이와 야쿠르트를 신중하게 교차 취식하는 손녀딸의 먹는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셨다. “어린애가 어찌 맛을 알았을꼬” 하시며 웃던 할머니의 얼굴이 목소리까지 생생하다. 그 때 그 아이가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내 기억의 심연에 영원히 묻혀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몇 일 전 초코파이와 어린이용 요구르트를 같이 먹는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끌어 올려졌다. 지난 수십 년간 초코파이를 천개는 먹지 않았을까? 그동안 야쿠르트도 수백 개는 먹었을 텐데 그 때는 생각나지 않았던 내 사촌의 초코파이와 야쿠르트 먹는 일화가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면서 무심결에 초코파이를 한 점 입에 넣고 요구르트를 들이키는 순간 ‘짠!’하고 나타나다니. 기억이 이렇게 불려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초코파이는 주로 커피랑 먹는 거였다. 쿨피스와 비슷한 맛이 아는 야쿠르트는 끊은지 오래다. 어느 순간부터 야쿠르트 대신 요구르트를 먹었고 요구르트 대신 요거트를 먹게 되었다. 야쿠르트 아주머니에게서 조차 야쿠르트 보다는 요거트나 치즈를 사먹는 시대이니까. 


수십 년이 넘은 사촌의 초코파이 야쿠르트 페어링을 따라 먹어보니 그 맛이 신묘했다. 요구르트의 신맛은 초코파이와 만나자 사라지며 부드러운 달콤함이 되었고 초코파이의 달콤함은 우아하게 변모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내 사촌은 이 맛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어린 아이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먹어봤을 터이고 그러다 최상의 조합을 찾아냈는데 평상시에는 바쁜 할머니 눈에 띄지 않다가 기차여행이라는 기회에 할머니가 발견하게 되신 것은 아닐까. 여하튼 할머니가 기특해 하셨을만하다. 


나는 할머니의 놀라운 발견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마도 할머니의 기쁜 얼굴을 보며 심드렁한 표정이었을 터이다. 데면데면한 첫 손주가 맞장구쳤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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