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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 혜진 Oct 04. 2020

길을 찾아가는 사람은 고될지언정 불행하지는 않다

이민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이 살아온 길을 벗어나 너무나도 엉뚱한 길을 찾아 헤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나이가 많고 경력이 많은 건실한 직장인이 느닷없이 주방 보조를 하겠다고 하거나 평생 우아한 사모님으로 살던 중년 여자가 피부색이 다른 사람의 발톱을 정리하고 페디큐어를 바르기도 합니다. 학교 선생이었던 사람이 초밥을 만들기도 하고 대기업 직원으로 승승장구하던 사람이 슈퍼마켓 점원이 되기도 합니다. 용접이나 타일 공 같은 기술직에 일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한국에 살 때는 전혀 다른 직종에서 일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은 예전의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입니다. 단순한 직업에 만족하는 사람도 있고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그들은 그렇게 먼 곳까지 이민을 가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서양의 사상과 문화 전반을 이해하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별자리 이름부터 다양한 전문 용어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유래했고 영어 어원 중 다수가 그리스 로마 신화와 연관이 있습니다. 서양 문학 작품 중에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도 다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윌리엄 셰익스피어도 신화 속 이야기를 차용해 작품을 썼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매우 폭력적이고 음란한 데다 비윤리적이고 성차별적인 요소가 상당히 많아 여과 없이 아이들에게 전달하기 거북할 정도입니다. 반면 인간의 심리와 생활을 너무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인용해 다양한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차용된 심리학 용어가 많습니다.      


 내가 어릴 때는 아무 비판 의식 없이 흥미 있게 읽었던 내용들인데 어른이 돼서 다시 접하게 됐을 때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중에 저승의 신 하데스에게 납치돼서 강제로 결혼을 하게 된 페르세포네 이야기는 내가 딸들을 내 품에서 보내야 할 때를 가끔 상상하게 합니다.     


페르세포네는 신들의 왕인 제우스와 그의 여동생이자 아내인 데메테르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듯이  제우스는 바람기 많은 난봉꾼이었습니다. 그런 남편에게 진력이 난 데메테르는 자신의 딸이 남자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을 막기 위해 외딴섬에 딸을 숨겨두고 키웁니다. 하지만 제우스는 자신의 동생이자 저승의 신인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해서 결혼하도록 승낙합니다. 하데스는 데메테르 몰래 페르세포네를 납치해 저승으로 데려갑니다. 데미테르는 딸이 갑자기 사라지자 딸을 찾아 세상 곳곳을 돌아다닙니다. 하지만 딸을 찾을 수 없자 대지를 돌보지 않아 인간 세상이 흉년이 듭니다. 보다 못한 제우스는 데미테르에게 딸이 있는 곳을 알려주게 됩니다. 결국 엄마와 딸이 다시 상봉하게 되고 데미테르는 페르세포네를 데리고 저승을 빠져나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데스는 데미테르가  페르세포네를 찾아내기전에 페르세포네에게 포도를 권합니다. 갈증 난 페르세포네는 포도 한 알을 먹습니다. 사실 저승에서 음식을 먹으면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 이용해  페르세포네가 다시 지옥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하데스의 계략이었습니다.


 페르세포네는 엄마의 손을 잡고 저승을 탈출 하지만 포도 한알을 먹은탓에 일 년에 반은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서 살게 됩니다.  페르세포네가 저승에 가있는 6개월 동안 대지의 여신인 데미테르는 낙심해서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 바람에 인간은 1년 중 6개월 동안 대지에서 소득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가진 폭력성과 요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윤리관, 여성 혐오 같은 사안을 뒤로하고 모성애가 강한 엄마 데미테르와 그의 딸 페르세포네라는 인물에만 집중을 한다면 세상의 많은 엄마들은 데미테르의 마음을 이해할 것입니다.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자신의 품에 딸을 영원히 두고 싶은 마음 말입니다. 하지만 하데스의 계략에 넘어간 어리석은 딸 때문에 일 년 중에 반은 낙심한 체 살아야 한다니 그보다 더 큰 형별이 있을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신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페르세포네가  음식을 먹으면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포도를 먹었다고 말합니다. 엄마의 품이 아늑하고 좋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평생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을 거라는군요. 페르세포네는  왜 풍요롭고 아름다운 엄마의 세계를 두고 어둡고 음울한 저승 세계에 가서 살고 싶었을까요. 한 어린 여자아이가 죽음과 같은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성인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여성에게 가장 가까우면서도 많은 영향을 받는 엄마로부터 단절은 두렵고 꺼려지는 일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라는군요.  심리학적 개념으로 페르세포네 컴플랙스입니다.


나는 얼마 전 아주 가까운 지인 중에서 페르세포네 같은 여성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녀의 엄마는 아파트 단지에서 작은 공부방을 운영 중이었습니다.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결국 이루지 못하고 과외선생과 학원 강사를 거쳐 공부방을 운영하며 딸 하나를 키웠습니다. 딸은 공부를 제법 잘하는 모범생이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교육 대학교를 졸업하고 임용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바람대로 학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2년을 근무하고 남미로 떠나버렸습니다. 엄마의 꿈을 이루어 줬으니 이제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난다면서요. 자라는 동안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선생님이 되는 꿈을 꾸었지만 교사가 된 후에 사실은 단 한 번도 교사를 꿈꾸지 않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교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엄마였다면서요.


이제 갓 30대에 접어든 여자는 엄마를 피해 남미 어느 곳으로 달아났습니다. 최근에 코로나 때문에 걱정스럽고 궁금해서 소셜 네트워크를 뒤져보니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안전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사실 내 지인은 젊은 여자 쪽이 아니라 그녀의 엄마입니다.  안정적인 직장과 자신을 버리고 떠난  딸 에게 배반감을 느껴  한동안 내 지인은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녀의 딸은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내 지인은 오히려 자신의 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더군요. 딸이 단 한 번도 원하는 방향으로 길을 찾아가 본 적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 목놓아 우는 모습을 보고 그제야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는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 항상 손을 잡고 길을 걸었고 형편이 넉넉지 않아도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어 항상 비싼 옷을 입히고 학용품도 최고만 사줬다는군요. 자라는 동안 언제나 건강식을 챙겨 먹이느라 아이가 좋아하는 즉석요리나 간편식을 먹지 못하게 했는데 그것마저 원망 거리더랍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선택을 해야 할 일이 자주 생깁니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같은 일상 적인 것에서부터 어느 학원에 보내야 하는지, 어떤 취미나 봉사활동을 시킬 것 인지 같은 , 쉽게 바꿀 수 있거나 는 선택에 따라서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은 결정을 수시로 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부모들이  학원을 정하거나 간단한 취미생활을 위한 활동조차 남들의 평판에 따라 움직이더군요.


 내 큰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말에 한국에 와서 보니 경기도 변두리 작은 신도시의 초등학교 학생들 마저도 어느 대형 영어 학원에 합격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는 분위기였습니다. 한다 하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취미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어릴수록 엄마 손에 이끌려 엄마끼리 친한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들이 가는 학원에 가서 취미 생활도 같이 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3~4학년이 되면 어릴 때 친했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아이들과 어울려 다닙니다. 엄마가 이끌어 사귄 친구와 오래도록 친한 아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자기 취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부모 마음대로 할 수 없는데 자신의 삶을 부모 손에 이끌려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불행할까요.


내 지인은 언제나 엄마가 원하는 대로 청소년기를 살아야 했던 딸의 불행을 이제야 이해한다더군요. 한국으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단호하게 모든 것을 뿌리치고 떠났으니 그곳에서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사실 이민을 하겠다고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 왔던 젊은이들 중에 내 지인의 딸처럼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한국을 싫어해서 이민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더 늦기 전에 자신의 길을 찾아보고 싶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먼저 세상을 살아본 선배로서 나는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될지 예상이 됩니다. 그렇다고 배부른 소리 하지 말고 부모가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엔 앞에 펼쳐진 인생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고  설령 억지로 귀국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다시 한국을 떠나게 될 테니까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실컷 도전하다가 어느 날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겠죠. 실패를 거듭하다가 포기하게 되더라도 아쉬움을 남기지 않아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이 나선 길 뒤에서 박수 치며 응원하면 됩니다. 혹시라도 자식이 지치고 낙심해서 돌아온다면 등을 토닥이며 위로할 준비가 돼있으면 더 좋습니다.      



우리 가족은 단체 해외여행을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항상 여행 계획을 직접 세워 가족들끼리만 다녔습니다. 단체 관광은 가격이 비싼 데다 일정에 쫓기느라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없습니다. 가이드가 정해놓은 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지역의 진짜 매력을 놓치게 됩니다. 우리 가족은 유명 관광지를 수박 겉핥기 하듯 둘러보는 것보다 현지인의 삶을 구경하는  훨씬 더 좋아합니다. 필요하면 현지에서 안내인을 섭외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우리 가족끼리 다닙니다. 이미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아이들도 익숙합니다. 보통은 아이들이 미리 여행 일정을 짭니다. 교통수단부터 둘러볼 관광지의 목록까지 아이들의 결정에 맡깁니다.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관광지에서 아이들보다 앞서 걷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식당에서 하루 반나절을 보내도 시간이 아깝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정한 일정대로 느긋하게 여행하면서 인생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여행지를 속속들이 다 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쉬워할 때도 많습니다.  쓸데없는 돈을 낭비할 때도 있고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을 합니다. 하지만 단체관광으로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습니다.


 터키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는 모습을 구경하다 최루탄을 피해 딸들의 손을 잡고 데모대 보다 빠르게 도망친 기억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탁심 광장 근처 허름한 식당에서 만난 친절한 변호사와 잘난 체하던 방송국 PD, 길고양이를 위한 집을 지어주느라 공원 한가운데서 한참 토론 중이던 현지 공무원과 시민 단체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고양이들까지 절대로 단체관광으로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날 우리는 숙소에 돌아가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과 터키 시위의 차이와 같은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새벽 일찍 슈퍼마켓을 찾아가 엄청나게 저렴하고 맛있는 체리 한 보따리와 현지인들이 먹는 빵을 사들고 세상을 얻은 듯 행복했던 기억은 비싸고 맛없고 시들한 체리를 볼 때마다 떠오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버스를 탔다가 버스비를 내는 카드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난감했는데 우리 가족의 버스비를 내준 허름한 차림새의 아저씨 덕분에 세상에는 낯선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일본에서는 비를 쫄딱 맞고 길을 헤매다가 어느 인형 뽑기장에 들어갔는데 어느 젊은 일본인 청년이 자신이 뽑은 비싼 인형 두 개를 선뜻 내 딸들 손에 들려줬습니다. 그때 받은 그 인형은 15년이 넘은 지금도 우리 딸들이 애지중지 합니다.


쿠바에 여행을 갔을 때 여느 관광지처럼 시장을 찾았지만 아무리 헤매고 다녀도 시장은커녕 기본 식자재를 살 곳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생활용품은 물론 먹을 것조차 절대적으로 부족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니 낯설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자국민들은 정부에서 식량과 생필품을 배급하고 있더군요. 아침마다 사람들이 줄 서서 배급받는 모습이 신기해 보였습니다. 그날 우리는 사회주의의 장단점에 대해서 긴 토론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숙소 주인이 차려준 소박한 아침 식사 덕분에 화려하고 기름진 음식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두바이에 갔을 때는 각 국가에서 돈을 벌러 온 외국인들 덕분에 두바이의 화려함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숙소 인근의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동남아시아 사람들이었거든요.


 여행의 효율성만 따지면 경험자의 안내대로 따라가는 단체 관광이 훨씬 더 좋다는 것을 나도 잘 압니다. 우리 가족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사서 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여행을 돈으로만 생각하고 효율만 따진다면 집에 돌아와서 할 이야기가 많지 않습니다. 역사 유적지나 유명한 예술 작품을 본 것 말고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유여행은 돈을 많이 들인 호화 관광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기억을 남깁니다. 왜냐하면 자기 주도로 여행을 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책임감과 리더십을 경험하고 주어진 비용 안에서 효과적인 계획을 세우는 방법까지 익히게 됩니다. 여행을 마치고 나면 아이들은 자신들이 주도해서 무사히 여행을 마친 것에 뿌듯해합니다.


나는 내 딸들의 인생도 자기 주도적으로 살기를 바랐습니다. 가끔은 내가 무례하게 끼어들기도 하고 잘못된 길로 가는 게 뻔히 보일 때는 손을 이끌어 넓고 곧은길로 안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세하게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보다 방향만 알려주는 나침판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혼자 길을 갈 때 당황하지 않을 겁니다. 페르세포네처럼 엄마의 숨 막히는 보호를 피하려고 곁을 떠나 음침한 저승에 살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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