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가운데 만두 한 알
"김대리는 꿈이 뭐야?"
얼마 전 사장님이 던진 이 뜬금없는 질문이 고요한 마음에 물 수제비를 떠 냈다. 내 나이 서른 어드매, 이런 질문은 너무 오랜만이라 말문이 막혔다. 내 나이의 곱절하고도 십 년은 족히 더 살아낸 사장님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결코 이 질문이 적당한 장난이 아님을 간신히 읽어낼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얼굴이 뜨거웠는데 휘영청 밝은 달덩이만큼이나 달뜬 마음을 부여잡아야 했다. 이 나이에도 내 꿈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니. 어쩐지 뭉클해지기도 했다.
사실 그 질문을 받기 한 달 전 즈음, 아니 그보다 좀 더 오래전부터 나는 몰래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있었다. 대단한 걸 만들어 보겠다고 처음으로 코딩을 시도해 봤지만 메인 페이지를 만드는데만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별 진전은 없었지만 퇴근하고 남은 여분의 시간에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되짚어 보는 작업은 꽤나 혈색이 돌게 했다. 막상 쓰다 보면 속 빈 강정인 나를 마주해야 했기에 여러 번의 좌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저 이렇게라도 자판을 두드려 몇 글자를 채워가는 행위는 도무지 닿지 않는 내 반대편 어깨를 스스로 토닥여주는 것 같아 멈출 수가 없었다.
특이한 구조의 (자세히 말하긴 어렵지만 결론적으로 사장님과 대표님이 서로 다른 사람이며 나는 대표님의 직원이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누구나 그렇듯 CEO를 공공의 적으로 표적 삼아 입의 방아쇠를 자주 당기곤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사장님만은 입사부터 존경했다. 작은 체구에 군살 하나 없는 소박한 모습과 꼭 맞아떨어지는 진중하고 겸허한 성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미래를 내다보며 단 한 번도 현재에 좌절하지 않는 모습은 충분한 귀감이 되었다. 어쩜 그날의 그 질문은 항상 꿈을 꾸는 사장님에겐 지극히 평범한 물음이었겠으나 현재는커녕 과거를 복기하며 꾸물거리는 나에겐 너무나 커다란 파문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뱉은 내 꿈은 지극히 소소했고 사장님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지만(뭔지는 비밀이다. 부끄럽기 때문이다), 집에 가며 곰곰이 생각해 결정한 내 진짜 꿈은 '만두 빚는 호호 할머니'. 소를 한 움큼 집어넣었지만 절대 터지지 않는 요령을 가진 할머니가 될 테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만히 앉아 밀가루 더미와 물 한 대접을 떠놓고 소원을 비는 마음으로 만두를 빚어내는 노년을 보낼 테다. 믿음직한 손주에게 혹은 미덥잖은 영감에게 이러나저러나 사랑한다는 말 대신 뜨끈한 복 주머니 하나를 입에 넣어주는 할멈이 될 테다.
쌀쌀해진 날씨, 퇴근길 지하철은 만두 찜기 같다. 복닥복닥 붙어 선 사람들은 서로 작은 틈을 만드려 애쓰지만 문이 열리면 함께 뿜어져 나오는 하얀 김이 오히려 서로의 열기를 반증한다. 현생에 지쳐 허여멀건한 얼굴을 하곤 있어도 아마 그들은 저마다 다른 꿈을 꾸며 살아가겠지. 그게 뭔지도 잊은 채 하루를 견디는 게 능사일지라도 언젠가 마음 한가운데 작은 만두 한 알을 꼭 발견할 수 있기를, 모르는 이의 뒤통수에 대고 작게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