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을 위한 김치만두
슬프게도 모든 역사는 전쟁과 함께 쓰였다. 국가, 민족, 성별, 계급, 계층, 인종. 그리고 여기, 21세기 현대사회는 각 종 전쟁이 범람하는 시기. 부먹 vs. 찍먹(바삭 촉촉 논쟁의 근본), 팥붕 vs. 슈붕(델리만쥬의 붕어빵화에 대한 논쟁), 민초 vs. 반민초(치약의 식용화 논쟁), 하와이안 피자 호 vs. 불호(세계적인 괴식 논쟁), 후라이드 vs. 양념(논쟁을 종식시킨 반반의 탄생), 쌀떡 vs. 밀떡(유년 시절의 취향을 결정하는 논쟁), 물복 vs. 딱복(과일이 맛을 넘어 식감에까지 영향을 끼친 논쟁) 등 한 사람의 삶 속에서도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나 역시 개인의 취향은 명확했으나(찍먹, 슈붕, 민초, 파인애플 피자 불호, 양념, 밀떡, 딱복 되시겠다) 전쟁은 없어져야 마땅하다 생각하는 보통의 인간으로서 이러한 쟁점 속에서 굳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 편이었다. 다만 절대 물러설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고기만두 vs. 김치만두'에서 김치만두를 고르는 일이다.
"변태 같다." 나와 같은 김치만두 지지자가 본인 부친에게 실제로 들은 말이라고 한다. 나는 그 시점 황당한 표정을 지었는데, 같이 이야길 듣던 또 다른 누군가가 "만두의 근본은 고기지"라고 하는 순간 갑자기 분노 비슷한 감정이 들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니, 김치만두 좋아하는 게 무슨 피해를 준다고 이런 박해를 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근본을 짚고 넘어가자면 한국의 뿌리인 김치를 넣는 것이 더 맞는 쪽이 아닌가? 흔들리는 내 동공을 발견한 '고기 근본파' 행동대장은 김치는 우리나라의 고유성을 담아 만들어진 퓨전 음식이나 다름없다는 식으로 본인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발원지라 할 수 있는 중국의 '만두(만터우)'는 속이 없는 밀가루 빵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중식당에서 파는 꽃빵과 고추잡채가 그에 준하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속이 든 만두 종류인 바오쯔는 얇은 피가 아닌 포슬하고 폭신한 밀가루 빵 안에 속을 채운 음식으로 호빵과 결을 같이 한다. 일본의 '만쥬'는 슈붕의 미니어처 아니야? (물론 중국의 딤섬과 춘권, 일본의 교자, 베트남의 짜조 등 다양한 문화권의 만두 친구들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쟤가 먼저 우겼잖아요.)
잠시 본질을 흐리고 체면을 잃었지만 이렇게까지 억지 부릴 정도로 김치만두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줬음 한다. 자칫 텁텁할 수 있는 밀가루 음식이건만 신 김치의 새콤함과 매콤함이 일단 압권이며 씹으면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배추의 단맛도 예술이다. 고기만 있는 만두에서는 감히 느껴볼 수 없는 산뜻한 맛. 그러나 맛도 맛이지만 김치만두야 말로 진정한 평화의 상징이라 읊고 싶다. 일단 고기만두는 김치를 품을 수 없지만, 김치만두는 고기를 품을 수 있다. 고기와 김치를 한 데 넣은 전형적인 집 만두 스타일은 전통미를 품고 있다 말할 수 있다. 만두를 빚는 그 장면을 상상해 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삼 대가 둘러앉아 도란도란 숟가락으로 소를 뜨는 모습이 자연스레 상상된다. 가격이 비싸지도 않은데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한 만두가 노벨 평화상의 주인공이 되어야 함을 설파하고 싶다. 게다가 요즘 같은 시대 이토록 친환경적인 음식이 또 있을까? 탄소 절감, 동물 복지, 비건을 아우를 수 있는 음식으로 김치만두가 제 격이다. 게다가 맵부심의 민족답게 다양한 맵기 정도의 만두가 시장에 즐비하다. 두둑하게 속을 채워주면서 스트레스도 해소할 수 있는 김치만두, 나는 이보다 더 뛰어난 음식을 찾을 수 없다.
조금 더 애착이 가는 이유는 따로 있다. 김치만두가 내 영혼의 마더 테레사 역할을 하기 시작한 건 1년 차 삐약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도 밤 열 한시가 다 되어갈 무렵에야 업무가 얼추 마무리되었고 함께 일하던 차장님, 그리고 대리님과 저녁 식대로 산 커피를 쪼록 마시며 각자 집까지 데려다줄 택시를 부르고 있었다. 이제 약 몇 주 뒤면 인턴 기간은 끝나고 정직원 전환을 앞두고 있던 나는 불안감에 차장님께 물었다.
"저 계속 회사 다닐 수 있을까요?"
차장님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여기서 네가 진짜 말도 안 되는 커다란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가능하지."
그런데 그 말이 복선이었을 줄은 몰랐지. 바로 다음날, 인쇄소 대기실에 홀로 앉아 부들거리는 손으로 차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열 장 남짓 페이지에서 찾은 오타만 해도 벌써 다섯 개는 훌쩍 넘긴 상황이었다. 이미 아래층 인쇄소에서는 몇 천 부의 가이드북이 쏟아지고 있었고 심지어 중국어판 가이드북은 들쳐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곳에 홀로 남겨진 스물여섯의 인턴 나부랭이인 나. 휴대폰 배터리 잔량은 오 퍼센트, 이사님의 차가운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홀로 올림픽 대로를 넘는 택시 안에서 살짝 정신을 잃었다. 너무 슬퍼서 눈물도 안 났다.
그날도 어김없이 야근을 마치고(그 망할 놈의 중국어판 가이드북에서도 오타를 찾아야 했으니까) 집에 가는 길에 난생처음으로 맥주 한 캔과 김치 만두를 샀다. 혼술의 시작이었다. 너무 더운 여름, 씻는 동안 다 식어버린 미지근한 맥주에 김치 만두 한 알을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맥주도 만두도 모두 썼지만 비로소 어엿한 사회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별 것 아닌 만 원 남짓의 야식이 매번 나를 견디게 만들었다. 상대가 누구든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전쟁이 들끓는 날엔 어김없이 김치만두를 산다. 전자레인지에 딱 삼 분. 그 짧은 시간만 견디면 완료. 시끄러운 속에 차곡차곡 김치만두를 쌓아 올린다. 매콤 새콤한 감칠맛 위로는 협상 히든카드다. 아삭한 배추와 미끈한 당면을 씹는 동안 나는 고되고 지친 나와 지난한 시간을 털어내고 악수한다. 내일은 또 괜찮아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