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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Oct 01. 2019

그만두기로 결심하다

뭐를? 공무원을.





신이 난다. 언젠가 이 일을 그만 둘 거라는 생각이 들자 묘한 쾌감이 인다. 키보드를 내려치는 손이 가벼워졌고 그것의 몇 배만큼 마음도 가벼워졌다.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나는 이제 2년 차지만 앞으로 몇 년을 이 곳에서 일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리 머지않은 날에 이 곳을 떠나리라는 예감이 들었고, 그 예감이 날 쓰게 했다.


공무원으로 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내가 공무원이라는 이름으로 일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고,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하고 나서도, 공무원이 되고 나서도 이런 삶을 살 거라 상상할 수 없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낀 건. 어느 날부터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졌고, 몇십 년이 흐른 후 이곳에서의 나의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몸이 아프게 되면서부터인가? 민원인에게 욕을 먹었을 때? 그도 아니면 첫 출근날인 건가.


사직서를 내는 날을 상상해본다. 과장님께 가서 '저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말을 하고, 과장님께서 '아니, 대체 왜?'라고 물어보는 장면들을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재생한다.


왜ㅡ라는 질문에 준비해놓은 대답은 아직 없다. 없다기보단 너무 많아서 그중에 뭘 말하면 좋을지 고르질 못했다. 하나 분명한 것은, 화가 났다거나 욱하는 마음에 떼를 쓰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와는 별개로 무엇을 이야기하든 나는 또라이가 될 것이다. 어쩌면 용자가 될 지도.


이 글들은 내가 회사원으로서 특히 공무원으로서 지나온, 때때로는 버텨온 시간에 대한 글들이다. 기쁜 일도 있었고, 화 나는 일도 있었으며, 슬픈 일도, 즐거운 일도 있었다. 그 감정들은 흩어지지 않고 내 안에 남아 나에게 끊임없이 물었고 지독히도 괴롭혔다.


쓰면서도 의심한다. 이 글을 내놓는 게 맞는 걸까? 내부고발 같기도 하고, 공무원의 비밀유지나 품위유지 의무에 어긋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쓴다.


공무원도 똑같은 '노동자'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조직에 남아있는 갖가지 문제점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내 글들이 아주 조금, 한 꼬집만큼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이 글들이 필요 없어지는 날이 오면 좋겠다. 이 곳에 있는 직원들이,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온 사람들이 더 이상 내가 가졌던 질문들을 마주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들이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 라떼는 말이야ㅡ가 된다면, 그게 가장 좋겠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알던 나를 수없이 부쉈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고, 그 착각이 나를 이곳에 오게 했으며 그 오만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를 다시 빚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나에게 물었고, 답을 들으려 귀 기울였다. 어떤 걸 좋아하니? 어떤 순간에 행복해? 어떻게 살고 싶니?


묻는 것도 어려웠지만, 답을 듣는 건 더 어려웠다. 내 각오보다 꽤 힘든 시간이었고 나는 그 시간을 기를 쓰고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이건 시작일 뿐이라는 것. 나는 계속해서 묻고 또 답해야 하고 행동으로 그 답을 보여줘야 한다. 이 글이 그 길의 첫 발걸음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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