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습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지호 Sep 10. 2023

[습작] 당신이 없는 계절이다

당신이 없는 계절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공항을 등지고 어떠한 목적지로 나아가는 이방인의 마음을 알고 있는가. 나는 그 적당한 외로움에 어느덧 아주 확연하게 중독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감정을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는 없으나, 때때로 그것은 어느 정도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단절이 꼭 나쁜 느낌의 단어는 아니다. 나는 가끔 스스로가 팔이며 다리며 군데군데 실이 매달린 목각인형과도 같다는 상상을 했다. 인간관계란 그런 실과 같은 것이다. 움직이려면 필요하지만 가끔은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만 싶다. 막상 끊어버리자니 두렵기만 했다. 그래서 자그마한 나는 어떠한 거대한 목적성이 있는 운명 같은 것이 그런 단절의 상황을 만들어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군대 훈련소가 그런 기능을 했었다. 세 달 정도를 핸드폰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지옥과도 같은 상황이었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나는 그런 결핍 속에서야 비로소 마음의 평정을 찾아버리고 말았다. 내가 직접 끊어버린 관계도 아니고ㅡ확실한 외압에 의해 생긴 단절 속에서 기껏 행복했다. 나는 그러한 어쩔 수 없는 단절 속에서 짧게나마 오는 몇몇 편지들을 보며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상황은 어째 묘하게 편해져버리고 만다. 내가 바꿀 수 없다는 상황 탓을 하며 그리워하는 것이 나의 적성에는 어련히 맞는 것인가 보다. 사실 단절된 것은 당신뿐만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 모든 것을 버렸으면서도 꼭 버려진 무언가의 서러움을 느끼고 마는 것이다.


공항에서 나왔을 때 처음 머릿속에 채워진 문장은 그것이었다. 당신이 없는 계절이다.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계절이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온도도, 습도도, 냄새도, 느낌도 모두 생경한 것이었다. 굳이 크게 숨을 쉬고 공기를 폐 속에 가득 채웠다. 그 어떤 것에서도 당신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마침내 자유로워져버리고 말았다. 그제서야 나는 다시금 당신을 그리워하기 시작할 수 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