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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지호 Sep 15. 2023

[습작]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살지

마른 하늘에 비가 내렸다. 분명히 오늘 아침에 우산을 챙기려고 했었는데 늘 그렇듯 잊어버렸다. 우산은 언제나 잊어버리기에 딱 좋은 것이다. 아니다. 나도 늘 우산을 꼭 챙기며 내심 비가 오래 내리기를 바라던 때가 있었다.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가깝게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챙기던 우산은 두 명이 충분히 쓸 수 있는 긴 우산이었다. 나는 그 우산 속에서 몇번을 꼼지락거리다가 외워둔 시덥잖은 농담이나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비가 오는 날엔 꼭 데이트 신청을 하자고 마음을 미뤄두고는 했다. 그런 바보같은 시절도 있었다.


비를 맞는 것을 좋아한다. 비가 내린다고 굳이 밖으로 나가 춤을 추는 것은 아니지만 비가 내리면 그냥 맞고는 한다. 어딘가로 달려가 비를 피하거나 옷이나 가방을 머리 위에 올리지는 않는다. 그다지 애쓰고 싶지 않다. 비를 맞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싶지도 않고, 비를 맞고 싶지 않다고 유난을 떨고 싶지도 않다. 이유없는 나의 버릇은 어째 내가 사는 방식을 닮았다.


슬픔이 오면 그냥 그런대로 산다. 네가 가난에서 쉬이 헤어나올 수 없듯 내가 슬픔을 함부로 지워내지 못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슬픔에서 도망치는 것도, 슬픔을 동네방네 광고하는 것도, 왜 나에게만 이런 슬픔이 오냐고 하소연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슬픔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다.


나는 슬픔을 소금으로 기억한다. 너는 삶을 얼마나 많은 울음으로 살았나. 몇 번 울어본 적 없는 나는 그 짧은 울음들에서 짠 맛을 느꼈다. 눈물을 모으면 짠 맛이 나는 것은, 그 짭쪼롬함이 어째 중독이 되는 것은 슬픔이 소금과 비슷하다는 말에 힘을 싣어 줄 수 있지 않겠니. 


너는 소금을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묻는다. 나는 소금이라는 것이 어떤 공장에서 뚝딱뚝딱 만들어져 비닐봉지에 담기는 줄만 알았다. 바다 근처의 소금밭에서 난 소금을 먹어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떤 나이의 나는 뜨거운 햇빛 속에서 소금밭에서 난 소금을 입에 가져가 댔다. 나는 그때 소금의 뒷맛이 달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가 굳게 바라는 것은, 나의 슬픔이 어떤 그런 비싼 소금처럼 오랜 시간 후에 끝맛이 달기를, 그렇게 믿어보는 것 뿐이다. 땡볕 아래 소금밭에서 바닷물을 가르는 노인의 심정으로 나는 내 슬픔과 마주하는 것이다.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그렇다.


비가 오거든 너도 함께 나의 작은 반항에 동참하여라. 눈물을 모아 잉크 삼아 시를 쓰자. 먹먹한 종이 위에 눈물로 시를 쓰면 언젠가 마르겠지. 읽을 수 없는 글자ㅡ눈물자욱을 보며 그때는 그랬나보다 하고 다시금 살자. 아마 마른 눈물자욱에 조금 남은 소금기는 그렇게 달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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