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장조림

기다려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지지고 볶는 것이 아니라 스며들어야만 하는 것들도 반드시 있다는 뜻이다. 

성격이 급하다는 말을 몇 번 들었다. 분명히 나이를 드디어 두 손가락으로 세지 못하게 되었을 때 쯤에는 생각도 몸도 느리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때는 모든 것이 다 느렸다. 달리기도 느리고, 밥을 먹는 것도 느리고. 어느 시점에서부터 나는 나보다 밥을 빠르게 먹는 사람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삶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스스로 그렇게 변해갔는지는 궁금하지 않다. 의문이 드는 것은, 그것이 서서히 변해갔는지 아니면 어떤 한 시점에서 변해버렸는지 하는 것이다. 변하는 것을 참 싫어하던 과거의 나는 변성기가 차츰차츰 오는지 갑자기 오는지 궁금해 내 목소리를 일주일마다 녹음하곤 했다. 삶이 바빠서ㅡ 확실히 말하건데, 중학생도 나름 바쁜 법이다ㅡ 잠깐 녹음하는 것을 잊어버렸을 때 쯤 내 목소리는 이미 변해있었다.

계란을 삶으며 그릇에 간장을 부었다. 양파와 파를 잘게 썰어 넣었다. 설탕 몇 숟가락을 넣고 참기름을 둘렀다. 맛을 보고 뭔가 빠졌는지 고민했는데 다진 마늘이 생각났다. 마늘 한 숟가락만으로 맛이 달라진다는 것은 늘 새삼스럽지만 놀라운 일이다. 

계란을 찬물에 던져 넣고 하나 하나 까기 시작했다. 삶은 계란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품이 드는 것보다 먹는 시간이 너무 짧다. 물도 끓어야 하고 계란도 가끔 뒤집어줘야 하고 껍질도 까야 하고. 먹는 시간은 30초나 될까. 계란 후라이나 스크램블은 대충 휘적휘적하면 끝이 나는데 말이다. 그런 것은 어째 빨리 먹어도 별다른 죄책감이 들지가 않는다.

소금에 찍은 삶은 계란을 입에 하나 물고 나머지 계란을 간장에 재웠다. 재운다는 표현을 좋아한다. 어찌 이렇게 귀여운 말을 음식 하는데에 붙였는지 모르겠다. 간장에 재운 계란을 냉장고에 넣었다. 아마 며칠은 걸릴 것이다. 

궁금하다고 미리 꺼내서는 안된다. 또 아예 잊어버리고 방치해서도 안된다. 아주 적당한 어느 시간대 쯤에 다시금 마주해야만 하는 것이다. 간장에서 자고 있던 계란을 톡톡 깨워 밥 위에 올려야 한다. 참기름을 톡톡 뿌리고 흰자부터 노른자까지 아주 가멸차게 갈라내야 하는 것이다. 그때서야 볼 수 있는 그런 맛이 있다. 그렇지 못한 나날들에 대한 후회를 하며 며칠 후의 계란 장조림을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