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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구공오 Apr 03. 2020

아침이 되면, 영어 듣기를 틀자!

난 실수를 충분히 할 수 있다.

아무런 경력과 경험 없이 들어간 방송부의 엔지니어는 참으로 할 일이 많았었다.

같이 일할 엔지니어 부원들을 보면서, 다들 지원서에 흰색이 안 보일 정도로 빼곡히 자신들의 실력과 경험을 나타낼 것만 같았다. 그에 비해, 흰 종이 장인 내 지원서가 대체 어떻게 여기에 들어오게 했는지

의문이 들 참이었다. 

 


첫 방송실을 열고, 선배들이 가르쳐 준 것은 영어 듣기 트는 법이었다. 여러 버튼이 자잘하게 달린 네모난 검은 기계에서 영어 듣기 시디를 넣어 트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각 학년의 엔지니어와 아나운서를 뽑아 1주일 중 하나를 맡는 방식도 알려주었다. 지금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1학년 땐 금요일 담당, 2학년 땐 월요일 담당인 걸로 기억난다. 그렇게 내 첫 역할이 정해지고 난 뒤, 그 뒤의 등교 아침은 전쟁이었다.

스쿨버스를 타고 도착을 하면, 8시 5~10분이었으니, 영어 듣기 방송 준비를 여유롭게 하기엔 턱 없이 모자란 시간이었다. 스쿨버스에 내리자마자 단정한 교복을 확인하는 선도부를 그냥 뛰어넘어 방송실로 직행하는 날들이 내 등교 일상이었다.



제일 최악이었던 것은 방송 사고가 나서, 3학년 선배들이 내려오는 날이었다. 아마, 내가 처음으로 영어 듣기를 할 때, 선배의 실수로 방송사고가 났던 것으로 기억난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상태라, 그저 선배들이 하는 방법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영어 듣기 시간을 넘겨버려 3학년 선배들이 내려왔었다. 당연히, 처음 보는 말똥말똥한 1학년들이 앞에 있으니 큰 꾸지람 없이 넘어갔다가, 나중엔 이 얼굴들도 익숙해지니 아주 낮고 안개 같은 목소리로, 잘 하자. 그만 실수하고. 이 말을 하고 간 뒤, 분위기는 춥다 못해 어는 게 당연하였다. 그리고 방송이 끝나고 터널 터널 걸어갈 때, 실수한 날이면, 선생님들이 장난으로 방송부! 또 영어 듣기 잘 못 틀었지?라며 핀잔을 주었다. 처음엔 너무나도 서러웠다. 3학년 선배도, 장난 삼아 핀잔이나 꾸지람을 주는 선생님도. 가뜩이나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겐 큰 잘못을 한 거 같아, 점심시간까지 우울하였다. 나의 실수로 받는 모든 말들은 내 자존감을 깎아버리는 것에 선수였다.



 하지만, 이러한 실수도 한 번으로 그치면 좋겠지만, 종종 몇 번씩 찾아왔다. 실수를 계속하는 것은 정말 안 좋았지만, 실수를 하다 보니 겪게 되는 모든 상황들이 익숙해져 오니 사고방식이 조금은 변해갔다. 실수는 인정하고, 사과하면 돼. 하지만, 너 자신을 깎아내리지 말자. 언제든지 실수는 오기 마련인데, 계속 기죽어 있어 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을 넘어 날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까지 챙기기엔 내 속도 남아나질 않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 말이 참 이기적으로 들릴 수 있겠다. 또한 책임감 없다고 탓할 수도 있겠고. 실수가 계속되면, 그게 네 실력인 거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실수를 함으로써 나 자신까지 잃고 싶진 않다. 어느 정도 귀는 조금은 닫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나에게 바라는 건 실수를 인정하고, 다음엔 하지 않도록 나 자신을 발전하는 거니까.


 

그러니, 난 실수를 할 사람이다.란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 두고, 마음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사회에서 너무 실수 없는 정답만 추구하니, 약간 삐끗거린 게 자신이 큰 잘못을 한 줄 아는 사람이 많다. 지금의 내 대학생활에서도 외국인 교수님과 한국인 교수님의 수업 차이가 보인다. 외국인 교수님은 잘못된 답을 내놓아도 바로 정답을 가르쳐주지 않고, 학생에게 이런 방향으로 사고해볼래? 라며 부드럽게 제안한다. 하지만, 한국인 교수님은 정답이 아닌 순간 실망을 많이 하신다. 그러한 상대의 반응이 실수를 통한 배움을 막게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상대는 내가 어찌할 수 없으니, 나 자신이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열어 두어, 스스로가 그 속에서 배워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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