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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구공오 Jan 24. 2022

결과가 단순히 점이라면,
정말 그렇게만 보시게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거야.'라는 말의 해석.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거야.’


어릴 때 실패라는 결과 앞에서 절망한 나에게 해준 어른들의 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거기에 진심이 섞인 지 아님 그저 위로해주기 귀찮아서 인지 어느 쪽도 확신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다들 고등학생이 된 후로 저 문장은 주객전도가 돼 버리는 걸 몸소 느낀다. 그리곤 처음으로 10대의 종점을 찍는 수능을 만나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거야.’란 말로 남은 생을 살아가게 된다.



아무리 머릿속에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해도 내 20대의 3년은 결과를 중요시하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취업을 위한 자격증, 대외활동을 수도 없이 했고, 4학년 편안한 졸업을 위해 일부로 학점을 꽉꽉 채운 시간표로 생활하며, 남들이 좋다는 건 하나도 빠짐없이 하려고 살아왔다. 이력서에 넣을 합격을 당락 짓는 한 줄을 위해서. 하지만 넣을 문장이 여러 개가 되어도 난 그저 지친 개가 될 뿐이었다. 뿌듯함,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고 대체 내가 뭘 위해서 이렇게 살아왔냐는 절망만 내 옆을 지켰다.



그 절망은 우울이 되었고, 우울은 조급함이 되어 날 더 괴롭혔다. 최근 공기업 시험이 어떤 건지 궁금해 신청한 3일 NCS 특강에서 수리 영역 강의가 있었다. 누가 들어도 웃겠지만, 난 펑펑 울면서 강의를 들었다. 수능을 치기 위해 수포자의 길을 안 걸으려 발버둥쳤 건만, 다시 수학의 길을 겪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무섭고 결과가 안 봐도 비디오였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부모님께 털어놓으니 ‘왜 자꾸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도전조차 하지 않으려 하냐.’란 일침을 들었다. 그 말을 들으니 더욱 우울 해져 한동안은 누구에게도 조언을 구하고 싶지 않았다. 다들 알지 않느냐. 내 마음인데 내 마음대로 안 돼서 나도 이런 내가 싫은 거. 



그래도 그렇게 살라는 법은 없는지 5명의 과 동기들과 약속이 잡혀 나가게 되었다. 5명 중 3명은 휴학한 후, 다시 수능 준비 또는 편입 준비를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 중 한 명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어떻게 겁 없이 도전할 수 있었냐고. 



자신은 애니메이션 학과에 진학하고자 간 미술학원에서 자꾸 자신이 원치 않는 대학을 권했다고 했다. 지금 실기로 준비하는 건 늦었다고 생각해 무작정 수능에 뛰어들었다는 거다. 하루에 14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했는데, 자기도 하기 싫어 울면서 공부한 게 떠올랐다며 웃었다. 우선 이 이야기는 전혀 드라마틱한 기적은 없다. 흔히 인터넷에서 떠다니는 ‘전교 꼴찌가 의대를 간 썰’ 같은 것 말이다. 이 친구는 밑바닥 등급부터 시작했지만 완전한 최정상은 찍지 못했다. 꽤 평범하게 잘 나왔네 라는 정도였다. 하지만 친구는 자신만만한 미소로 ‘끝나니까, 결과와 상관없이 왠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었어.’라고 얘기했다. 



덧붙여서 ‘미래? 내일도 생각하기 어려운데, 무슨 먼 미래를 생각해. 지겨워 죽겠어’라고 장난스레 말했다. 이 친구를 떠올릴 때 다들 하는 말이 ‘얘는 하고 싶은 게 있음 이미 하고 있어’ 라 말한다. 이 친구의 인생의 단편일지라도,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한 거야.’란 말이 새삼스레 이해가 될 것 같다. 우린 결과는 점으로 생각한다. 이때까지의 노력을 끝맺는 종점. 달콤한 노력의 보상. 그렇기에 열심히 노력한 과정이 더는 마무리가 되지 않을 때, 우린 좌절하고 그걸 실패라 여긴다. 



그리고 앞은 보이지 않는다고 어둡다고 얘기하겠지. 끝은 보이지 않는데 끝없이 달려야 하는 게 무섭다.  기약 없는 헛된 희망을 품고 달리기엔 사회적으로 많이 뒤처질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결과가 점이어서 그 결과를 계속 잇는다면 어떨까. 점을 연속해서 이으면 선이 되고 선을 계속 그리면 면이 되고 면은 합쳐져 도형이 된다. 그러면 노력의 윤곽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을까. 점에서 멈췄던 게 사실은 아름다운 도형의 일부였다는 걸. 알게 된다면 우린 어떻게 행동할까.



아마 우리 뜻대로 인생은 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매번 경험한다. 신년 계획을 세워도 어느 순간 길을 틀어야 되고, 원래 가지고 있던 걸 포기해야 하는 순간들을. 그리고 매번 좌절한다. 아마 나에게 오는 우울증은 평생을 반복할 거라는 확신도 이제는 안다. 반듯하고 올곧은 길은 영원히 만나지 못하고 닿을 것 같음 안갯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내가 말한 아름다운 도형도 죽음에 다다러야 보일 수도 아님 스스로는 발견 못할 수도 있다. 한데 다들 알지 않느냐. 



평생을 선택의 기로에서 도전하고 성공과 실패를 맛봐야 한다는 걸. 하루는 실패를, 하루는 성공을, 길을 또 돌아가고 엉키고 끊어졌을 수도 있지만, 계속 가면 어디론 가 간다는 걸. 또 그렇게 시간과 함께 흘러가야 한다는 것을. 솔직히 이 글에서 내가 당신을 진심으로 잘 될 거라고 동기부여를 할 수는 없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되짚어 줄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묻고 싶다.



결과가 단순히 점이라면, 정말 그렇게만 보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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