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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구공오 Oct 12. 2021

세상에서 가장 나쁜 딸이 돼 버렸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위로.

곧 취업을 생각해야 하는 시기인지라, 공부만 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 생각한 나는 학교에서 시행하는 현장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고작 현장실습이지만, 인턴도 요새 금이라고 칭하는 시기에 먼저 사회를 겪어본다는 건 정말 좋은 기회였다. 아직도 힘들게 회사에서 현장실습을 하고 있지만, 나에겐 너무 버거웠나 보다. 



솔직히 버거웠다는 것보단 작은 회사라서 그런지 거의 정직원처럼 학생들을 부려먹는 대표 때문이었다. 요즘 애들이라면서 가스 라이팅을 밥 먹듯 해대고, 신경질을 매번 부리며, 점심시간도 매번 유동적이고, 체계라는 것도 없는 회사에서 아직 때를 안 묻힌 내가 견디긴 너무 힘든 곳이었다. 저 회사가 이상한 거야, 대표가 나쁜 거야 라 생각해도 내가 무책임한 건가, 내가 잘 못하는 건가 라는 의심도 계속되어 아무리 친구들에게 속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아도 속은 점점 썩어갔다. 그런데, 그 썩은 속에 담긴 감정들을 묵혀 두다가 엉뚱한 곳에 다 쏟아 내버렸다.



오랜만에 아빠와 엄마가 자취방에 방문해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부족한 게 있음 사주고, 밥도 먹고 좋은 시간을 보낼 때였다. 엄마가 평소 하던 농담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화만 버럭 내버렸다. 옛날이라면 나와 똑같이 서로 죽기 살기로 싸웠을 엄마인데, 이제 그럴 기력도 없는지 날 무섭게 바라보며 내 화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이게 아닌데, 이러면 후회할 거 백 퍼센트인데 라는 생각은 했지만 방아쇠를 뚫고 나온 감정들을 쉽게 그칠 수 없었다. 그러더니 엄마는 아빠한테 그만 집에 가자라고 했고, 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10분 뒤에 엄마가 올라와서 침대에서 날 안아주며 속삭였다. 




집 가자.




그만 집에 가자고. 매정하게 가버리면 혼자 엉엉 울고 있을 날 너무나도 잘 아니까. 네가 태어나서 어른이 되기까지 온갖 추억이 서려진 그곳에 가서 마음 놓고 푹 쉬다 오자고. 그때 엄마 품에서 쌓인 눈물을 쏟아내며,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엄마는 내가 같이 쇼핑을 할 때, ‘가지 마.’라고 했던 말이 마음에 계속 걸려서 발을 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 가자고 얘기하러 온 거라고. 그 뒤로 부모님의 차를 타고 곧장 고향으로 내려가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산책도 하며 하늘을 올려도 보았다. 



그때 깨달은 거지만,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건 정 붙이기 힘든 타지 생활에서의 큰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 커플, 가족이 갈등을 해결하고 난 뒤, 문 앞에서 건네는 장면이 종종 있다. 먼저 들어간 사람은 현관 앞에서, 남은 한 사람은 심호흡을 한 번 내쉬고 집 문을 열며 ‘다녀왔어!’라 하면 ‘어서 와!’라고 얘기해주는 내용이다. 난 그 장면을 볼 때 ‘에이 너무 오글거리는 장면이야.’라며 빠르게 넘겼지만 지금은 그 장면의 숨겨진 의미를 알 것 같다. 



아마 ‘돌아갈 곳’이 사람의 품, 고향, 내가 쉴 수 있는 곳 등 다양한 의미로 많은 사람이 갖고 있겠지만, 나에겐 ‘돌아갈 곳’은 가족들이 있는 내 고향이다. 그곳에만 가면 내가 빠르게 흘러갔던 시간이 멈춰진 여유로운 느낌이 든다. 엄마는 내가 고향에 잠시 온 걸 잠깐 여행을 하고 가는 거라 말했지만, 난 내가 다른 도시에 사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멀리 와버렸다 생각해도, 시간이 흘렀다 해도, 이게 긴 여행이 될지 모르겠지만, 난 내가 돌아갈 곳으로 갈 준비가 항상 되어있다. 



가끔은 너무 그곳이 그립고 편안하고 익숙해서 밤을 하얗게 설치기도 한다. 계속 서글퍼지는 마음을 애써 달래보기도 하고, 발버둥 치기도 한다. 내가 너무 욕심을 많이 낸 것이 아닌가, 아니면 내가 돌아가면 또 어떻게 살아야 되나 걱정도 한다. 내가 미래에 아니 당장의 내일에도 어떤 선택을 내릴지 모르겠지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엄마의 ‘집 가자.’라는 말은 내 생에서 가장 눈물겹고, 따스했던 위로였다. 지금도 그 말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 최고의 위로를 세상에서 가장 나쁜 딸이 되었을 때, 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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