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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쁜남자 Aug 19. 2024

주말은 보통 이렇게 간다

<방>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음악

♬ 나만의 공간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 제일 좋은 것은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전에도 내 방은 있었다. 그렇지만 그 방을 나가면 가족이 있었다. 그건 나만의 공간이라 할 수 없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원했다. 그리하여 독립을 선언했고, 8평짜리 원룸에 살고 있다.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작더라도 나 혼자 있으면 그만이었다. 



집이라는 형태의 원룸에 살고 있지만, 어찌 보면 그냥 큰 방이다. 문을 여는 순간, 침대가 보이고 컴퓨터가 보이고 부엌이 보이고 화장실이 보이고 옷장이 보이는 구조다. 성인 2명 정도 누울 수 있는 거실이 있기는 한데, 이거는 뭐 거실이라 말하기는 좀 그렇고 그냥 바닥이다. 왜 사람들이 자취집이라 하지 않고 자취방이라고 하는지 알겠다. 그래서인지 나만의 공간에 들어올 때마다 집이 아니라 방에 들어가는 느낌이다. 



자취를 꿈꾸었을 때는 나만의 공간이 생기면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모든 직장인의 삶이 그렇듯, 생각보다 방에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일주일 중 대부분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누구도 좀 만나고, 가끔 본가에도 갔다 오고 하면 자취방이란 잠만 자는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기에 온종일 온전히 방안에 있는 날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 움직이는 시간과 멈춰있는 시간     



방안에서 흐르는 시간은 때로는 움직이고 때로는 멈춰있다. 내 성격 탓인지 모르겠으나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할 때가 있다. 휴일[休日]의 휴[休]자가 ‘쉴 휴’인데, 나는 쉬지 않는다. 사람이 나무에 기대고 있는 형상이지만, 나는 계속 나무로 만든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뭐라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린다. 작업실이 되어버린 방안에서는 시간이 빠르게 움직인다.



이런 생활을 하다 보면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내 나름 내가 좋아하는 놀이를 하며 쉬는 거로 생각했지만, 피로는 풀리지 않고 불안한 긴장감만 유지된다. 그때가 되면 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나를 위한 최소한의 것만 한다. 음악을 틀어놓고 계속 누워있거나, 남을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남이 쓴 글을 그저 읽는다. 쉼터가 되어버린 방안에서는 시간이 잠시 멈춰있다.



뭐 엄청 대단하게 이야기한 것 같지만, 방안에서 벌어지는 흔한 모습이다. 집돌이 집순이라면 보통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 이 외에 딱히 다르게 할 일도 없다. 이처럼 방안에서는 때로는 시간이 움직이고 때로는 시간이 멈춰있으며, 너무 바쁘지도 않으면서 너무 늘어지지도 않은 긴장과 이완이 반복된다. 내가 쉬는 날 방안에서 누리는 진정한 자유다.          





♬ 쉬는 날 방안



방안에 홀로 있다. 조용하다. 편하다. 안정하다. 고요하다. 평온하다. 안전하다. 방에 혼자 있을 때, 방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기분 좋은 분위기다. 마치 쉬는 날 방안은 홀로 있는 나를 안아주는 기운이 흐르는 것 같다. 방에서 바삐 무엇을 하든지, 아무것도 하지 않든지,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시간이 흐를지라도 이 감정은 유지된다. 집이 아니라 방이기에 선사하는 마술과도 같다.     



나를 잡아 가만히 선다네
미안한 듯 조용히 낭만적인 건
보통은 이렇게 간다
저 모퉁이 돌아간다     


이스턴사이드킥의 [쉬는 날 방안]     



보통이란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음.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를 뜻한다. 튀지도 않고 쳐지지도 않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특별히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것만은 아닌 보통의 시간이다. 방이야말로 보통의 사람들이 보통의 시간을 갖기에 가장 알맞은 공간이다. 그래서 난 쉬는 날 방안에 있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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