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음악
♬ 있는 그대로의 모습 바라보기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 나왔던 이야기다. 한 아내분의 고민은 대충 이렇다. “남편이 내 마음을 잘 몰라준다. 나에게 좀 따뜻하게 이야기해주고,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남편이 이러 이러 해줬으면 좋겠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공감 가는 고민이다. 아내로서 당연히 서운하고 답답할 일이다. 나 역시 그 상황에 놓인다면 똑같은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법륜스님은 아내분에게 묻는다. 남편을 사랑하느냐고. 아내분은 사랑한다 말한다.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진다. 산 중에 어느 산을 좋아하냐고. 아내분은 북한산이 좋다고 말한다. 질문은 계속 이어진다. 동물 중에 어느 동물을 좋아하냐고. 아내분은 강아지가 좋다고 말한다. 마지막 질문. 꽃 중에 어느 꽃을 좋아하냐고. 아내분은 장미꽃이 좋다고 말한다. 그다음 법륜스님의 한방! 그렇다면 당신이 좋아하는 북한산과 강아지, 장미꽃이 당신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잘 도와주느냐고 묻는다.
아내분은 묵묵부답이다. 법륜스님께서 말씀하신다. 북한산과 강아지, 장미꽃은 당신이 원하는 걸 해주지도 않고 해줄 수도 없는 데도 좋아하면서, 남편에게는 왜 이렇게 이것저것 바라는 게 많고 왜 그토록 집착하느냐고. 고치려 하지 말고 바꾸려 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그 모습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대가를 바랄수록 그에 따른 서운함과 공허함은 배가 될 터이니,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 대가 집착 기대
머리가 띵! 해지는 순간이었다. 남편을 고치는 방법을 말씀해주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내의 태도를 지적하신다. Input과 Output이 동등할 수 없다. 동등해야 할 이유도 없고. 내가 상대방에게 바라는 모든 일을 상대방이 파악하고 있을 리 없다. 어느 정도라는 수준이 있는데, 상대방이 그 수준에 도달할 리 없다. 상대방도 본인 나름의 수준이 있을 테니까. 본인이 만족하는 수준까지만 다다를 뿐이다.
대가를 갈망하면 집착이 된다. 그 뒤로는 이해타산을 따진다. 나는 A를 했는데 너는 왜? 나는 B를 줬는데 너는 왜? 나는 C를 이해해줬는데 너는 왜?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요목조목 따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다음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집착한다. 과연 내가 원했던 말을 하는지, 내가 원했던 행동을 하는지. 해주면 좋고, 안 해주면 싫다. 이토록 불편하고 껄끄러운 만남을 지속한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대가, 집착, 기대 이런 생각 자체가 없어야 한다. 사랑만으로도 벅찬 이 순간에 이딴 생각을 하다니. ‘대가를 바라면 안 된다.’, ‘집착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 자체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내용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돌이켜 보면, 나 역시 사랑 앞에서 대가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대가를 바라고 집요하게 집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마치 금연 중인 흡연자가 담배를 잊기 위해 발악하는 것처럼.
♬ 기대도 돼
하루가 힘들 때면 난
너의 웃는 모습 그려
너도 매일 조금 힘들더라도
여율 갖고 나에게 기대
해질녘 집에 오는 길
오늘 난 너를 기다리다 문득
하고팠던 말로 다독거려
조급해 하지마 여율 갖고 나에게 기대
스탠딩에그의 [내게기대(Feat. 박세영)] 중에서
나는 앞으로 “기대”라는 단어를 다르게 보려 한다. “기대한다.”가 아닌 “기대다.”로 볼 것이다. “벽에 기대다.”, “품 안에 기대다.”, “너에게 기대다.” 누군가가 나에게 언제든 의지할 수 있고 지친 몸을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 앞에서 대가와 기대를 바라는 사람이 아닌, 내가 먼저 그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려 한다. “기대하지 않을게. 나에게 기대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