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음악
♬ 띠가 아닌 무리의 연대를
단어 뜻이 흐릿하게 그려지는데,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할 때는 한자 뜻을 찾아본다. 각 단어가 어떤 한자로 이루어진 것인지를 보면 단어가 또렷해진다. ‘연대’라는 뜻을 찾아봤다. 사전 뜻도 찾아보고, 한자 뜻도 찾아봤다.
1) 連帶 연대
① 어떠한 행위(行爲)의 이행(履行)에 있어서, 두 사람 이상(以上)이 공동(共同)으로 책임(責任)을 지는 것
② 한 덩어리로 서로 결속(結束)되어 있는 것
“연대하다.”, “연대보증”, “연대책임” 등 우리가 흔히 쓰는 그 연대라는 말이다. 잇닿을 연(連)자와 띠 대(帶)가 합쳐졌다. 띠처럼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서로 이어져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띠라는 말 때문에 가위로 톡 자르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무언가 좀 더 강하게 결집하여 있는 단어가 필요하다.
2) 聯隊 연대
① 사단(師團)·여단의 아래이고, 대대(大隊)의 위인 행정(行政) 및 전술(戰術) 단위(單位) 부대(部隊)
“야! 연대장 떴다.” 군대 갔다 온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그러나 가까이서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연대 혹은 연대장에 쓰는 그 연대라는 말이다. 연이을 연(聯)자와 무리 대(隊)자가 합쳐졌다. 위의 연대(連帶)와는 사전 뜻도 다르고, 한자도 다르다. 그렇지만 단어에 담긴 뜻은 비슷하다.
다만, 여기에는 띠가 아닌 무리라는 말이 담겨있다. 세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대(連帶)라는 말보다 연대(聯隊)라는 말이 더 강력해 보이는데.’ 사람과 사람이 손을 잡고 한 줄로 연결된 연대가 아닌 서로가 얼싸안으면서 뭉텅이로 뭉친 연대가 오늘날 더 필요하지 않으냐는 것이 생각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국방력을 더 키워야 한다는 의미로 돌려 말하는 건 아니다. 물론 그 부분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 ‘야마가타 트윅스터’ 이야기
이름 : 야마가타 트윅스터
다른 이름 : 아마츄어 층폭기, 한받
그의 또 다른 이름
“음악으로 민중과 연대하는 아티스트”, “거리에 나온 음악가”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나는 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대중엔터테이너다.”
돈만 아는 저질
돈만 아는 저질
돈만 아는 저질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돈만 아는 저질] 중에서
오늘날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노동자, 장애인, 철거민 앞에는 야마가타 트윅스터가 있다. 과할 정도로 화려한 옷을 입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신나는 비트에 맞춰 그는 노래한다. 그들을 앞에서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로 직접 들어가기도 한다. 그 순간 모두가 야마가타 트윅스터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게 되고, 그다음부터 전체가 함께 앞으로 걸어나간다. 야마가타 트윅스터처럼 같이 춤도 추고 같이 노래도 부르면서.
거대하지만 더럽고, 두렵지만 얄미운 거대 세력을 향해 그들은 목소리 높여 외친다. “돈만 아는 저질, 돈만 아는 저질, 돈만 아는 저질.” 야마가타 트윅스터와 그들 앞에서 거대 세력은 조롱의 대상이 되고, 모두의 비웃음거리가 된다. 그러면 좀 위험하지 않을까? 막상 현장은 그렇지 않다. 연대하는 곳에는 그들을 지켜주는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음악이 있다.
Q. 질문자 : 음악으로 연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A. 야마가타 트윅스터 : 음악으로 그 현장에 가서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고, 힘을 주고,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퍼포먼스를 통해 흥겨움, 재미와 현장에서 느끼기 힘든 즐거움의 요소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
나쁜 국가는 반응하는 국민을 원치 않는다. 나쁜 국가는 국민이 좀 조용히 그리고 얌전히 있었으면 한다. 나쁜 국가는 말 잘 듣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국민을 원한다. 나쁜 국가는 국민이 국정에 관심 두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야 맘 편히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두환 시절, 3S(Sport, Screen, Sex) 정책이 괜히 있던 게 아니다.
국민이 정치에 관심 두지 않아도 세상이 잘 돌아만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다. 국민은 국가의 일에 알 권리를 주장해야 할 의무가 있고, 잘못된 일에 있어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국가가 이를 통제하거나 제재해서는 안 된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제발 좀 찾아보시오. 그러면 찾아질 것이오.”라고.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태도다.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 21쪽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그는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며 강하게 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