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음악
♬ 게임이 시작되면
스타크래프트(Starcraft)라는 게임을 해본 적이 있는가. 게임이 시작되면 화면에 내 본진 건물이 나오고, 일꾼 4마리가 그 앞에 쪼르르 서 있다. 왼쪽 아래를 보면 게임 맵이 있는데 내 본진의 위치만 나타나 있다. 다른 부분은 암흑처럼 캄캄하다. 그 말은 상대방의 본진이 어딘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일꾼이 미네랄을 캐도록 명령한 다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다음과 같다. “상대 본진은 몇 시 방향에 있을까?”
게임을 하는 내내 끊임없이 물음표가 떠오른다. 혹시 상대가 초반 멀티를 하지 않았을까? 벌써 내 본진 앞에서 진을 치고 있지는 않을까? 상대는 어떤 종류의 병력을 뽑고 있을까? 상대방에 대하여 알고 싶은 것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경기 초반에 과감히 미네랄 캐는 걸 포기하고, 상대 본진을 찾으러 일꾼 한 마리를 예상 지역에 보내는 것이다. 게임은 상대방의 상황과 전략을 미리 그리고 빠르게 파악한 자만이 승리를 얻을 수 있다.
지피지기백전백승[知彼知己百戰百勝]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는 뜻입니다. 승리를 향한 명확한 방법론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이를 악용하면 커닝 페이퍼를 만들거나 남의 것을 염탐하거나 이미 나온 답을 훔치려는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승리란 무조건 좋은 것이고 옳은 것이며 위대한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머릿속에 오직 이겨야 한다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 이렇게도 볼 수 있다
나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보다 더 좋을 때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과연 그런 경우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겠지만, 한번 이런 경우를 상상해보자. 너를 알게 되어 행복해“졌어”, 너를 만나 내 삶이 달라“졌어”, 너와 함께해서 기분이 좋아“졌어”, 너를 알면 알수록 네가 가진 매력에 푹 빠“졌어” 상대를 점점 알아갈수록 내가 자꾸 이런 식으로 지고 있다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지 않을까?
내 속삭임으로 행복의 주문 걸어
그대 맘을 밝혀줄게요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커피소년의 [행복의 주문] 중에서
“이겨라! 이겨라!”라고만 말하고 싶지 않다. “져라! 져라!”라고 말하고 싶다. 나로 인해 그리고 그로 인해 계속 졌으면 좋겠다. 나로 인해 상대가 달콤한 패배를 맛봤으면 좋겠고, 그로 인해 내가 감미로운 패배를 맛봤으면 좋겠다. 패배를 맛봤다고 하여 다른 이가 승리의 맛에 취해있는 건 아니다. 승자는 필요 없기에 당연히 패자도 없다. 그저 둘이 나란히 서 있을 뿐이다. “졌다”는 것을 말할 수 있고, “졌다”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 [하나 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졌다”
주사위는 참 신기한 물건이야. 3이 나올 때까지 던지면 거짓말처럼 3이 나오게 되어 있어. 2나 4가 나왔을 때, 3하고 가까운 숫자이니 이 정도면 됐어, 하고 내가 타협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게 3이라면 3이 나올 때까지 던져. 원하는 게 영화감독이면 영화감독이 나올 때까지 던져. 원하는 게 시나리오 작가라면 시나리오 작가가 나올 때까지 던져.
“던져졌다.” 이 네 글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앞쪽 두 글자 ‘던져’야. 뒤쪽 두글자 ‘졌다’가 아니야. ‘던져졌다’를 ‘졌다’로 오해하거나 착각하지 말 것.
정철의 『틈만 나면 딴생각』 - 122쪽
트니트니의 [오뚝이다트]라는 노래가 있다. 가수와 노래 제목은 낯설지만, 노랫말을 들어보면 다 아는 곡이다. “던질까 말까 던질까 말까 던질까 말까 던질까 말까 던던던던 던져 던져” 이건 고민할 필요가 없는 거다. 이미 내 손에 들어온 순간, 던지라고 준 것이게 던지면 된다. 있는 힘껏 최대한 멀리. 카피라이터 정철의 이야기처럼 내가 어떤 꿈을 손에 쥐었다면 무조건 던지는 것이다. 이거 가지고 1시간 동안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