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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디 Apr 29. 2020

꽃과의 혈투가 나에게 남긴 것

OOTD story #5

청바지에 티만 입다가 인생 첫 정장을 내리는 날처럼 뚜렷한 변화의 날이 아니어도, 사람마다 스타일이 바뀌는 시기가 있습니다. 맨투맨과 블라우스, 원피스와 청바지 사이를 오가며 학생 티, 사회 초년생 티를 조금씩 벗는 시기요. 대학 입학 시즌, 첫 월급 받은 해, 대리급 타이틀로 이직할 때... 그 계절과 나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분명 각자의 알을 깨고 나오는 시기가 있을 테죠.


저에게  변화의 시기는  마디로 ‘꽃과 리본과의 사투(?)’였다고 표현하고 싶네요. 제가 지금보다  애기애기햇을  이야기입니다. 백화점 유니섹스/캐주얼 브랜드 층에서 2030 여성복 브랜드 층으로 들어서면 확연히 다른 분위기라는 점에 모두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한눈에 보아도 캐주얼 브랜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실크나 트위드처럼 다양한 소재, 리본이나 레이스처럼 장식적인 요소가 동공을 열어줍니다.


한 톤 높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점원이 저를 빠르게 스캔하는 걸 느끼며 매장에 들어섭니다. 옷을 고르는 제 모습이 어쩐지 어설퍼 보이는지 점원은 하나... 둘씩 옷을 권하기 시작하죠. 저에게 잘 어울릴 법한 무언가를 들고 다가오시는데, 그 무언가는.... 대체로 꽃무늬를 장착하고 있습니다. 저는 친절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최대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부드럽게 오른쪽 왼쪽, 양쪽으로 저어봅니다. 그럼 이번엔, 리본 장식이 왕따시만하게 달린 블라우스가 나타납니다. 얼굴이 하얀 편이셔서 다 잘 어울리시겠지만....이라는 문장이 자동완성 입력 기능처럼 늘 따라왔죠. 그쯤 되면 ‘저는... 꽃무늬도 리본도 싫어해요 엉닠 흑흫ㄱ’ 하면서 후드득 매장을 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시기의 문제는 꽃무늬를 두른 내가 아닌, 내가 원하는 나는 으면 좋겠는지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꽃으로 온몸을 뒤덮을  있는  원피스,  블라우스를 입었을  어쩐지 이게 아닌데.... 하는 기분만 들었을 뿐이죠. 그걸 알았다면 점원에게 다른 옷을 추천받았을 테고 매장을 황급히 빠져나오는 일도 없었겠죠.


생각해보니 플라워&리본 전투가 남긴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살면서.... 매장 직원에게 받는 옷 추천 말고도 책 추천, 영화 추천, 진로 조언, 패션 지적, 연애 상담 등 많은 피드백을 받지 않나요? 들어보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니고, 나쁜 말도 아닌데 어쩐지 불편하고 어색한 말들.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조언?? 이런 일들은 피할 수 없이 일상에서 일어나고, 다소 피로감을 주지만 스스로를 선명하게 해주는 지표 역할을 해줍니다.


어느 날 옷장을 열고 깨달았습니다. 저는 단색 성애자라는 걸요. 하물며 아빠 하와이안 셔츠에도 꽃이 있는데, 전 꽃무늬가 있는 옷이 없더라고요. 컷팅이나 주름, 여밈, 테일러링에서 차이나는 실루엣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 저의 눈입니다. 많은 그림을 봐도 마치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 마음에 남는 것처럼요. 아, 근데 어째서 사진 속에 입은 옷은 꽃 블라우스냐고요? 오늘의 룩은 플라워 패턴이 흘러넘치는 S/S 시즌에 꽃과의 일탈을 꿈꾸는 <꽃과의 일탈 룩>이었습니다.⠀



p.s) 혹시 시간이 허락한다면 웹상에서 김환기 화백의 Universe나 Air and Sound 같은 작품을 찾아보시길 추천드립니다.


*Photo by Ava So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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