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디 Sep 14. 2020

아무것도 아닌 순간은 없다

크리에이터클럽 기록 <인생철학 한 문장 쓰기>

2019.09-12 시즌 크리에이터클럽(크클) 글이나써볼까 주간미션 2019-11-07
한 줄로 생각 훔치기 : 카피라이팅 - 나의 인생철학을 말해주는 한 문장을 써보세요.


아무것도 아닌 순간은 없다

2018년 5월 바람이 많이 부는 어느 날, 나는 누군가와 카페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친분이 두텁지 않은 사이에는 마주 보는 것보다 나란히 앉는 편이 훨씬 편하다는 걸 그날 알았다. 지나가는 사람과 흔들리는 풍경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찻잔은 비어 있기 마련이다.


“그때 지켜보기만 해서 미안했어요.”


형식적인 만남을 비집고 들어오는 이런 표현에 대해, 의미에 대해 고민에 빠졌다. 사람을 어려워한다는 건 매 순간 고민해야 할 가짓수가 늘어난다는 거다. 믿어도 될지, 좋아해도 될지 갈피를 잡기 어려워진다는 거다. 인간은 어떤 일을 겪어도 사람을 미워하고 두려워할지언정 사람을 대하는 감정은 사라지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 무렵 나는 어떤 사람에 의해 인생의 방향이 달라졌고 언제 끝날지 모를 휴식기를 갖고 있었다. 사회로부터 추방되었다는 두려움과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공포감에 휩싸여 잠들지 못하는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암울한 순간에도 상대가 던지는 이 사소한 표현에 진심일지 아닐지를 고민해야 된다니. 사회적 동물로 살아간다는 건 자뭇 복잡다단한 운명이다.


밥 한 끼 해요, 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으레 하는 인사인 줄 짐작했다. 어린 친구가 큰일 당했는데 밥이나 한 끼 사줘야겠네 같은 인사치레. 그래서 반년 동안 날을 미루고 미뤄 겨우 나간 자리였다. 식사를 하며 들어보니 그분도 같은 사람에게 피해를 보고 회사를 다시 일구느라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서로가 서로의 방관자이자, 주변인으로서 느끼고 경험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 자체로 도움이 되거나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냥 그러했다는 걸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스스로가 엄청나게 회복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4월의 나는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났지만 5월의 끝자락, 하늘을 올려다보며 편안히 호흡할 수 있는 상태를 이뤄낸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고맙다.


세상으로부터 내동댕이쳐진 그때에는 괴로웠는데, 회복을 하고나니 그 시련마저도 감사하다. 버티는데 모든 힘을 집중해야 했던 시기, 그 부동의 시간이 값지다. 멈추는 시간이 없었다면 세상이 내 의지대로 될 수 있다 믿으며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처럼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넋 놓고 풍경을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을,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라 넘겼을지도 모른다.



Photo by Toa Heftiba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저는 평생 다이어트 강박증과 살아왔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