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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실루엣 Jul 13. 2021

각자의 물감

나우 매거진(Nau Magazine) Vol. 5: 서울(SEOUL)

○ 김하나 작가

나는 때로 서울이 거대한 환승센터 같다. 삑-삑- 계속해서 숨 가쁘게 어딘가로 가는 도중인 것만 같다. 무수한 선택지가 스크롤되고 가느다랗게 빛나는 선들이 24시간 분주히 옮겨 다니는 곳. 선택지가 많고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변화의 가능성이 크다는 뜻일 테다. 확실히 서울은 세계 어느 곳보다 역동적이다. 흔히 변화가 적고 안정적인 외국의 도시와 서울을 놓고 ‘재미없는 천국 vs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비교하곤 한다. 천국이나 지옥이라고까지 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다. 서울은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곳, 적어도 지루할 틈은 없는 것이다. 고일 새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물살이 많은 것을 쓸고 가버리는 도시 같다.






 꼭 살고 싶은 도시였다. 부산 대학 시절, 선배들과 지인들에게 서울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이 도시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틈틈이 서울로 여행을 가며 실로 다양한 문화생활이 존재함을 느끼고, 4학년 졸업반 시절에도 내가 원하는 웬만한 취업 자리는 서울에 있다는 것을 보며 서울은 내가 살아가야 할 도시라고 확신했다. 서울살이를 경험한 많은 이들이 서울은 차가운 회색 도시라며 겁을 줬다. 물론 어느 부분에서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본인이 서울살이를 하며 느꼈던 고통을 조금은 과장해서 이야기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겁을 줬다고 표현하겠다. 막상 서울살이가 시작되고 나서는 서울이 회색 도시라고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다양한 도시임을 느끼고 대만족 중이다. 평소 배워보지 못한 색다른 분야의 클래스가 열릴 때, 유명하지 않지만 높은 수준의 실력을 자랑하는 공연을 볼 때, 우연히 발견한 공간에 근사한 전시가 열리고 있을 때. 모두 나의 시선을 점차 넓혀주는 순간들이며 회색이 아닌 다채로운 색깔로 뒤덮인 도시로 보이게 해주는 시간이다. 이 도시가 지루해질 틈이 없도록 오늘도 새로움이 쏟아져 내린다. 

내가 이 도시를 더 좋아하게 된 이유는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물감으로 색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이 회색도 하얀색도 아닌 수만 가지의 색으로 보이게 되는 건 그들만의 물감 덕이다. 가만히 이 도시를 바라본다. 어차피 정해져 있는 물감은 없으니 내 마음대로 칠해본다. 이 도시는 마음껏 그렇게 해도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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