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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실루엣 May 13. 2022

다정소감 / 김혼비

다정이라는 단어만으로도. 

Hugging the sentence


5월의 문장

● 다정소감
 / 김혼비 지음
 / 안온북스 출판사


/참고 인터뷰

http://ch.yes24.com/Article/View/46454

(채널예스 김혼비 작가 인터뷰)





글 쓰는 일이란 결국 기억과 시간과 생각을 종이 위에 얼리는 일이어서 쓰면서 자주 시원했고 또한 고요했다.

-p.8


기억과 시간과 생각을 종이 위에 얼리는 일이라니. 글 쓰는 일을 이렇게 근사하게 표현한 게 좋다. 나에게 글 쓰는 일은 뭘까? 생각을 쏟는 것? 정리하는 것? 그걸 넘어서 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수전 브라운밀러와 영지 선생님의 말은, 마음대로 누구를 때리라는 뜻이 아니다. 폭력을 옹호하고 선동하는 것도 아니다. 문명의 선을 지키며 살되, 저 선을 넘어버린 누군가가 폭력을 행사할 때, 공포와 억압에 가로막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지 말라는 뜻이다. 은희는 왜 맞서 싸우려 생각하지 못했을까?  또 나는 거전까지 왜 맞서 싸울 생각도 못 한 걸까? 큰소리 내면 안 돼, 때리면 안 돼, 싸움은 나빠, 여자가 나대고 과격하면 못 써, 여자는 어차피 지게 되어 있어, 같은 것들만 잔뜩 배우고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만 도가 트느라, 고함치고 때리고 맞는 원초적 싸움에서 나를 주체로 놓아보지 못한 것이다. 

-p.49


한 북토크에서 “축구를 해서 가장 좋은 점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은 저자는 “집주인과 잘 싸우게 됐다”는 대답을 했다. 축구를 하기 이전에는 막무가내로 부당한 요구를 하며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집주인을 두려워했다면, 축구를 통해 몸을 부딪치고 맞서 싸우는 것을 배우며 더 이상 상대의 태도에 겁을 먹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명의 선을 지키며 살되, 저 선을 넘어버린 누군가가 폭력을 행사할 때, 공포와 억압에 가로막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지 말라’. 나는 여전히 이 세상이 무섭고 폭력과 무자비한 행동이 공포스럽고 피하고만 싶다. 하지만 겁먹은 표정으로 피하기만 한다면 나는 계속해서 당하기만 할 것이다. 영화 <벌새>의 영지 선생님의 대사를 다시 한번 떠올린다. “어떻게든 맞서 싸워.”




사실 꼰대의 특징 중에는 ‘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 지식만이 대체로 옳다고 여기는 상태’ 또한 분명히 있다. 그리고 나는 이 특징이 극복하기 더 어렵다고 느낀다. 남에게 충고를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꼰대가 아니라고 믿지만, 남의 충고를 듣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꼰대가 되어가는 걸 모르고 사는 것 이제 가장 두렵다. 


요즘 가장 걱정되는 것 중 하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꼰대가 되어있는 것’이다. 이미 진행된 질병일까 봐 더 무섭다…. 나이에 국한되는 상황이 아니라 내가 조금이라도 경험했다거나 건너 들은 알량한 내용을 바탕으로 으스대며 아는 척 하는 내 모습이 보일 때마다 꼴사납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꼴사나운 아는 척과 충고를 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남의 충고를 듣지 않으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태도다. 모든 이들의 충고를 수용하고 그들이 옳다고 절대 말할 수 없지만, 필요한 충고는 천천히 적용해보며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함을 느낀다. 




나는 원래부터도 점심시간에 다른 반에 놀러 가는 편이 아니었다. 대부분 운동장에 있거나 그렇지 않을 때는 그저 제자리에서 공부하거나 그도 아니면 같은 반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날 M의 교실에 간 건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그런 내 성향과 행동 패턴을 고려했을 때 내가 M에게 자주 가야겠다고 먼저 알아서 생각했을 확률은 전혀 없었고, 생각했다고 한들 어차피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가지 말았어야 했다. 사실 나는 그게 ‘시작’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백지에 별생각 없이 점 하나를 찍고 말 때, 누군가는 그 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긴 선을 그리려 한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알았어야 했다. 

-p.135


끝까지 내밀 손이 아닐 것 같으면 이내 거둔다. 항상성이 없는 섣부른 호의가 만들어내는 깨지기 쉬은 것들이 두렵다. 그래서 늘 머뭇댄다. ‘그럼에도’ 발을 디뎌야 할 때와 ‘역시 디디지 말아야 할 때 사이에서. 이 사이 어딘가에서 잘못 디딘 발자국들 사이에서. 

-p.136


어릴 적엔 스스럼없이 건네던 위로와 호의가 지금은 정말이지 어렵다. 나에겐 위로라고 여겨진 말 한마디가 상대에겐 큰 실례가 될 수 있고, 내가 건네 호의로 인해 더 큰 일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매 상황마다 고민이 되고, 행동하고 나서도 늘 찝찝하다. 어려운 일이다. 




이제 와 하는 말인데 솔직히 그날의 맛이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대신 기억나는 건 가게 앞에 쭈그러져 있는 풍선 인형에 바람을 넣으면 팽팽하게 부풀면서 우뚝 서듯 무너져 있던 마음이 한 구석이 서서히 일어나던 생생한 느낌. 한 입 두 입 계속 먹을 때마다 몸속을 세차게 흐르는 뜨겁고 진한 국물에 심장에 박혀 있던 비난의 가시들이 뽑혀나가는 것 같았다. 마음의 틈새마다 눌어붙어 있던 자괴와 절망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p.210


저자가 일로 인해 몸도 마음도 아팠던 시절, 저자의 친구는 이틀을 꼬박 만든 사골국을 대접해주었다. 진한 국물에 비난의 가시들이 뽑혀나가는 기분이었다는 문장을 보며 저자가 홀로 버텼을 고통과 그를 위해 정성을 다해 요리한 친구의 우정에 괜히 울컥하고 말았다. 어디에선가 끙끙 앓고 있을지 모르는 친구들과 때때로 혼자 끙끙 앓는 나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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