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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Cha Jul 23. 2023

Default 값

17년 동안 괴롭히던 편두통이 사라졌다.

 

 경제 분야에서 'Default'란 흔히 채무불이행을 뜻하지만 개발자 세계에서 Default 값이란 '사용자가 특정한 값을 사용하겠다고 알려주지 않았을 때, 기본적으로 사용하도록 설정되어있는 값'을 뜻한다. 즉, 기본 설정 값이다. 기본 설정 값으로 지정하는 것은 그만큼 대부분의 경우에 자주 사용되는 값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경우. 그러니까, ‘평소에 가지는 기본 값이 무엇이냐’라는 의미로써의 Default는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강력한 개념이었다.




 이전 글에서 자유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도 했지만, 문제는 그 자유가 '내 스스로에게 한 없이 관대해 나태해지는 자유(언제 정신 차릴까)는 어떻게 컨트롤하는가'의 해답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 결과 식습관이란 영역에서 나태의 자유를 컨트롤하지 못한 나는, 바로 다음 글에서 말했듯 보란 듯이 매를 맞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기도 했다.


 그렇게 뒤늦게 정신을 차려 땀을 펑펑 흘리는 운동을 최소 주 3회 이상 하기 시작했다. 식습관은 기본적으로 아내가 만들어주는 건강식과 샐러드(장가 참 잘 갔지)로 아침 점심을, 저녁은 먹더라도 6시 이전에 먹거나 먹지 않았고 습관적으로 먹던 과자나 간식, '제로' 시리즈의 탄산음료 등도 모두 끊었다. 배가 고프니 일찍 자버리고 일찍 일어나는 것으로 바꾼 지 한 달. 8kg가 감량이 된 것은 물론, 몸이 가벼워지니 절대적인 체력이 늘었다. 그 결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에 피곤해서 못하는 경우도 줄게 되었다! 그야말로 '유레카!'의 기간이었다.

 

 이론적으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알고 지낸 지 10년도 넘었지만, 실천을 제대로 한 적이 한 번이 없었다는 것이 후회스럽다. 그래서 이제야 건강한 삶이 가져다주는 삶의 질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그 결과, 고등학생 시절부터 17년 넘게 항상 나를 괴롭히던 편두통이 사라졌다. 나와 같은 만성 편두통 환자들은 이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알 것이다. 해그리드 아저씨와 함께 마법사들의 쇼핑몰 다이애건 앨리에 처음 들어간 해리포터가 된 것 같다고나 할까.


 그 뒤로는 한 번씩 회식을 하거나 지인들과 약속이 있는 특별한 경우에 이전과 같이 마음껏 먹더라도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그런 특별한 상황이 아닌 평소에는 항상 내가 정한 Default를 지키는 삶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매일같이 먹고 싶으면 제한 없이 먹어대던 그때의 나보다, 그런 세속적인(?) 음식을 먹는 날에는 그 자극적인 음식의 맛이 더 깊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이전에도 나에겐 똑같이 모든 음식을 먹을 자유가 있었고, 운동을 하지 않을 자유 또한 있었다. 그러나 이전 내 Default는 '먹고 싶으면 먹는 것, 운동하기 싫으면 안 하는 것'으로 정했다는 것이 지금의 나와 유일한 차이점이다. 서두에 말한 것과 같은 개념으로, '특정한 값을 사용(휴가, 회식, 지인과의 만남) 하겠다고 알려주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사용하도록 설정이 되어있는 값(샐러드, No 간식&음료, 운동)'을 잘 설정했을 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비단 신체를 관리하는 영역에서만 Default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Default는 나의 예시와 같이 삶에서 내가 지킬 '루틴(Routine)'으로써도 힘을 발휘하지만, 더 큰 관점에서 보면 Default는 사실 '마음가짐'일 따름이라는 생각이다.


 같은 일을 당하더라도, 부정적인 것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어떻게든 다행인 점, 긍정적인 점을 찾고 대처를 해나가는 삶의 태도 또한 '내 삶의 힘든 일을 대하는 Default 태도' 일 수 있으며, '나에게 무례한 사람을 대할 때 나는 보통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 또한 내가 나의 감정과 나를 지키는 Default 마음가짐일 수 있겠다. 즉, '특별한 경우가 아닌, 보통의 경우에 나는 어떤 삶의 태도/삶의 루틴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가 사실 정말 커다란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의 방향을 반대로 꺾어보면, 내가 자주 스트레스받고 있는 대상이 있다면 내가 그 대상을 대하는 보통의 경우에 설정된 Default 값을 어떻게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인가 고민해 볼 수도 있겠다.




 실제로 코딩을 해봐도 Default 값을 개발자가 어떤 값으로 설정했는지, 그 프로그램(API 혹은 함수)을 사용하는 사용자나 고객은 알 수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내 삶을 대하는 여러 방면의 Default 값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 저 사람은 또 어떤 철학과 방법으로 살고 있는지, 단순히 겉으로 봐서는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가 설정한 그 삶의 Default 값이 무엇이냐에 따라 소위 말하는 대단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 되는 Secret 키를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 개발자들만 이해하는 아재개그로 개발자들끼리만 서로 큭큭대는.. 뭔가 다소 30대 중반 개발자스러운 생각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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