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내려주는 절대평가 점수
가장 심각한 두통이 구토를 동반한 모양으로 찾아왔다. 아내가 응급실에 데려다줘서 긴급조치를 취하고 안정을 되찾았지만, 그냥 넘기기 힘든 포인트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 MRI/MRA를 찍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MRA 결과에서 작은 하얀 점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들은 바로 소혈관변성. 미세혈관이 군데군데 막혀서 죽은 것이라고 한다. 이 녀석들이 크기가 커지고 머릿속에 꽃처럼 여기저기 피게 되면, 그것이 바로 치매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등학생이었던 17살부터 현재 나이인 34살까지. 엄마의 식탁을 떠났던 딱 그때 그 나이만큼. 그동안 내 마음대로 가져왔던 내 식습관은, 뇌혈관과 심혈관을 기름으로 막아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식습관을 채식 위주로 바꾸고 규칙적인 운동을 한 덕에, 다행히 현재는 머리도 맑아지고 몸도 가벼워지고 있다. 많이 놀래기도 했지만, 그동안 내가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많이 교정하게 된 것 같다.
내 몸 상태를 알게 된 뒤, 맨 처음 들었던 생각은 사실, '억울함'이었다. 내가 매 끼니마다 진짜 미국의 비대한 사람처럼 그렇게 먹어댄 것도 아니었고. 그래도 뚱뚱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본 적이 없는데.. 심지어 나는 간간히 헬스장도 다니고 있다. 게다가 나는 술/담배도 안 한다! 술담배 다하면서 나보다 더 막 먹고 막사는 사람들은 왜 멀쩡한 건지..
하지만 그 억울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실제로 내가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먹던 모든 것들이 그 뒤로는 하나만 먹어도 뇌가 지끈거렸기 때문이다. 그러면 머리를 누르며 누워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회사 일이든 쉬는 것이든, 뭐가 됐든 집중을 할 수 없다.
초콜릿, 다양한 과자들, 아이스크림 콘, 제로 콜라 등.. 그제야 영양성분에 적혀있는 어마무시한 '포화지방' 수치와 '아스파탐'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내가 아프기 싫어서 알아서 잘 피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건강은 그야말로 '절대평가'다. 그것도 그 기준이 오롯이 나에게만 맞춰져 있는.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건강이라는 녀석마저도 유전적인 요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생각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저 사람이 저렇게 먹고 막살아도 괜찮으니, 나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저 내가 남들보다 어떤 부분이 더 약한지, 나의 절대평가 기준은 어떻게 되는지 스스로 잘 파악하고, 무리하지 않고 잘 보완해야 할 따름인 것이다. 건강은 상대평가가 아니다.
고등학생이었을 때부터, 나는 편두통을 달고 살았는데, 그래서인지 편두통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따금씩 찾아왔던 편두통은, 내 뇌혈관이 나의 식습관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는 나름의 경고, 혹은 조심하라는 신호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이처럼 내 몸은 내 식습관에 해당하는 절대평가 점수를 정직하게 내려준다. 내가 이 점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인생이라는 과목에서 다음 시험을 칠 자격도 없이, 퇴학(안녕히 계세요 여러분)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좋은 인생을 원하거든, 하기 전에 기분이 좋은 것보다, 하고 난 뒤에 기분이 좋은 것을 해라.'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충동적으로 하고 싶은 것들, 자극적인 것들은 하기 전에 기분이 좋지만, 그 뒤는 허무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식습관 또한 그렇다. 당장 내 혀를 즐겁게 하는데만 충실하다가는 그 뒤에 내 남은 인생이 허무할 가능성이 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내 건강을 얼마나 진지하게 여기는지, 나는 내 인생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매일 펼쳐지는 이 식습관으로 우리는 나름의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의 내 삶이 얼마나 대단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식습관 때문에 내 발목이 잡힐 일은 없어야겠다. 잠시 괴로운 두통이었지만 더 심각해지기 전에 정신을 차리게 됐으니..
오히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