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비용을 낮추는 삶
MBTI로 치면, 나는 정말 정말 I(Introversion, 내향성) 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집에 있는 것이 제일 좋고 집에 있어야 에너지가 충전이 된다. 밖에 나갈 일이 있다면 항상 '나가는 김에', 쓰레기도 버리고, 운동도 하고, 살 것도 좀 사야 한다! 이렇게 1타 3피 정도는 해주지 않으면 나가고 싶지가 않다.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내 에너지는 고갈되기 시작하기 때문에, 잘하면 한 번 집 밖에 나가 할 수 있는 일들로 두 번 세 번 나오기가 싫다.
이렇듯 나는 내 에너지를 아주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데, 이 개념이 바로 이번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오버헤드(Overhead)’라는 키워드를 잘 설명해준다.
개발자들은 개발하는 서비스(어플/프로그램)의 오버헤드(Overhead)를 낮추려 항상 노력하는데, 오버헤드란 쉽게 말해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할 때 들게 되는 교통비, 시간과 같은 '부대비용'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버스나 KTX를 너무 오래 타면 어딘가 결리고 몸이 피곤하듯이, 오버헤드가 높은 서비스는 사용하는 유저를 어딘가 불편하게 한다. 혹시 스마트폰을 쓰다가 어플이 작동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너무 많은 배터리를 소모해 폰이 뜨거워지는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오버헤드가 높은 서비스를 사용했다고 생각해도 되겠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직행으로 가면 될 것을 굳이 전라도 충청도를 거쳐 빙빙 돌아간다거나 굳이 연비가 안 좋은 차를 타고 이동하지 않듯이, 유저들은 오버헤드가 높은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는다. 때문에 어떻게든 오버헤드를 낮추는 방향으로 기술은 발전하고 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재밌는 점은 이 오버헤드라는 개념을 우리 삶 곳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 부동산
가장 간단한 사례는 아무래도 부동산이다. 직장과 집의 거리가 멀수록 오버헤드가 커지니까! 좋은 직장과 좋은 집은, 항상 '적은 시간으로 도달할 수 있다'는 접근성의 개념을 항상 포함한다. 그래서 접근성으로 인한 부대비용을 줄여주는 집이나 직장에 사람들은 항상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특히 서울에서의 지옥철이라는 오버헤드만 생각해 봐도.. 어후..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 직업
한창 유행하다가 요즘 좀 시들한 것 같다만, Work & Life Balance. 를 뜻하는 ‘워라밸’은 이제 사람들이 항상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개념이 된 것 같다. 이 워라밸을 개인적으로 묵상(?)해보니, 직장과 개인의 삶을 구분 짓는다는 느낌, 직장에서의 일(Work)은 삶(Life)이라는 가치를 위한 도구라는 느낌을 받는다.
좀 격하게 말하면, 내 인생 재밌게 살기 위한 부대비용으로써 내가 나 스스로를 희생하는 느낌이랄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고, 그 일을 하기 위한 자금마련을 위해 참고한다는 느낌도 있다.(=목구멍이 포도청)
그래서 가장 축복받은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워라밸이라는 단어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 즉, Work와 Life가 구분되지 않는 사람, 더 이상 Work가 Life를 위한 오버헤드가 아닌 사람.
3. 외국어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은 외국인과 대화하는데 겪어야 하는 답답함, 불편함, 의사소통의 잘못된 해석으로 인해 생기는 불필요한 오해 등의 모든 오버헤드로부터 자유하다. 통역사를 고용할 필요도, 그로 인한 비용도 지불할 필요도 없다. 번역을 해야 하거나 번역기를 돌려야 하는 수고로움조차도 없다.
특히 영어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검색결과와, 그 외 다른 언어 하나로만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검색결과의 양과 질 차이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익히 알고 있을 정도다.
개발자들 사이에 아주 로망으로 항상 손꼽히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노마드 개발자(Nomad Coder)'라는 개념이다. 마치 유목민(Nomad)처럼,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특정 회사에 발 묶여 있지 않는. 노트북과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서는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개발자를 지칭한다. 사실 이 설명만 들어도 얼마나 멋있는가. 동남아 어딘가에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예쁜 바다를 바라보며 카페에서 유유자적하며 코딩하고 있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그런데 우리 삶 속에서의 오버헤드 세 가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세 가지 오버헤드를 모두 해결하는 엄청난 직업이 또 노마드 개발자다.
첫 번째로, 노마드 개발자는 직장에 출퇴근하거나 집이 수도권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므로 부동산으로 인해 발생하는 오버헤드가 없다.
두 번째로, 사실 노마드 개발자라고 모두 개발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개발을 즐기는 노마드 개발자, 즉 자신의 직업에 대해 워라밸을 구분 짓지 않아도 될 정도의 애정이 없다면, 노마드 개발자로 살기를 선택하기 힘들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또한 워라밸이라는 오버해드로부터 자유롭다.
세 번째로, 외국어를 잘해야 노마드 개발자로서 살기 쉬운 것은 팩트다. 특히 영어를 잘해야 공식 문서를 빠르게 읽고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익힐 수 있는 것은 개발자의 큰 장점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외국어를 잘하는 개발자가 외국에 나가서 살기 쉬운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Nomad Coder에서 'Coder'라는 단어 해석에 '단순 코딩쟁이' - 유의미한 서비스를 만드는 개발자가 아닌 시키는 코드만 짜는 기계 같은 일만 하는 사람이라는 논쟁이 좀 있지만 무시하고 사용함.)
노마드 개발자로 사는 삶은 대학생시절부터 항상 꿈꿔오고 있었지만 실력이 미천하여 아직 이루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생각해 보게 된 오버헤드라는 개념을 생각하다 보니 역시 최고의 직업은 노마드 개발자라는 결론에 또다시 이른다.
노마드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저 세 가지 오버헤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또 다른 멋진 직업 혹은 삶이 분명 있을 테다. 약간은 셀프 동기부여 같은 글이 되어버렸지만, 모쪼록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삶에서 오버헤드를 낮추는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