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차의 소소한 변화.
고등학생 때부터 은퇴 후에 수입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수입에 연연하지 않을 정도의 자산이 전제가 된다.) 글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담담하지만 말과는 다른 울림이 있고 글은 말과 달리 깊이가 있어야 힘을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글을 쓰다 보면 깊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멋있었다. 하지만 내가 썼던 글이라고는 군대에서 매일 쓴 일기가 고작이었다. 그리고 내 일기는 감정에 호소한 글이 대부분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사실은 신년 목표였지만 6월이 돼서야 실천에 옮겼다.) 다른 어떠한 요소보다 꾸준함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하루에 1편의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그렇게 1일 1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내게 생긴 변화가 몇 가지 있었다. 변화인 동시에 장점 혹은 단점이다.
1) 생각을 붙잡아 두다
2) 끊임없이 소재를 고민하다
3) 구조적으로 생각하다
4) 깊이 있게 생각하다
5) 브런치도 SNS였다
1) 생각을 붙잡아 두다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생각을 한다. 의미 없는 생각도 많지만 유의미하거나 깊이 고민해볼 부분도 많다. 하지만 시간을 내어 고민해볼 여유가 없는 일상에서는 그러한 생각들이 뒤로 밀려난다. 그때 글을 통해 그 생각을 붙잡아두는 것이다. 타자와 상호 간의 것이 아니라 혼자서 하는 것이라면 말보다 글이 훨씬 진하게 남는다. 나의 경우 그러한 고민들은 작가의 서랍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생각을 잡아두는 행동은 습관이 된다. 보관해 둔 생각은 이후 더 깊이 있는 생각들로 탈바꿈할 확률이 높다. 혹은 배움이나 지식이 더해져 나의 지식으로 축적될 수도 있다. (나의 경우 글을 쓴 이후 킵해 둔 사업 아이템들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물론 그 사업 아이템들의 사업성은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우리가 일상에서 흘려버리는 생각들이 많다. 흘러가는 생각만 붙잡아도 일상에, 삶에 큰 변화가 생길 것 같다.(결과는 훗날 글로 전하겠다.)
2) 끊임없이 소재를 고민하다
글을 쓴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단연 끊임없이 글의 소재를 고민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앞서 언급한 것처럼 꾸준함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두어 매일 1편의 글을 쓰는 만큼 소재 고갈의 문제가 컸다. 처음에는 아무 주제나 썼는데 너무 막막하여 지금은 스타트업(창업) - 책(독서) - 생각(가치관) - 인사이트(트렌드) 이렇게 4개의 주제로 나누어 글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소재 고갈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사실 오늘의 주제는 적어도 20개 이상의 글이 축적되면 쓰려고 했지만 소재 고갈로 인해 먼저 꺼내 들게 되었다. 8일 차가 글쓰기로 인한 변화를 논하는게 참 부끄럽다.)
따라서 글의 소재를 찾기 위한 생각이 계속된다. 대화가 아닌 글의 소재를 구하는 것은 꽤나 까다롭다. 깊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용(혹은 분량)이 있어야 하고 그 내용을 내가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글의 소재를 그동안의 내 생각, 책, 다른 사람들의 말 등을 통해 찾는다. 그동안 내가 많이 했던 이야기들을 글로 써보는 것은 흥미롭다. 글을 쓰려고 하다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내 생각들이 얕은 생각이었음을 깨닫는 경우도 많다. 글을 통해 내 생각들이 더 짙어지고 다듬어지는 것이다.
책은 단연 좋은 소재이다. 친구가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해주셨던 말을 내게 전해줬던 이야기가 있다. 먹은 게 있어야 똥을 싼다고. 읽은 게 있어야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매우 직관적이면서도 적나라한 비유이다. 많은 글을 읽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하고 그 중심에는 책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했던 흥미로운 말들 중에서 글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전에 친구에게 들었던 말을 더 자세히 해달라고 부탁하고 지인이 페이스북에 쓴 게시글의 의미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부탁한다. (실제로 내가 그러고 있다.) 글의 소재가 꼭 내 이야기일 필요는 없다. 내 머릿속은 한정적이기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도 좋은 소재가 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많은 내용을 차지한다면 지인이라도 양해를 구하자.)
소재의 고민이 시작됨과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혹은 자투리 시간에 나의 스마트폰 활용은 인스타그램에서 글 소재 고민 혹은 글쓰기(낙서에 가까운)로 바뀌었다. 스스로 가장 만족스러운 대목이다. 자투리 시간을 조금 더 유의미하게 보내고 싶다면 강력 추천한다.
3) 구조적으로 생각하다
글은 말과 다르다. 말은 두서가 없어도 다른 비언어적, 반언어적 요소들로 보충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글은 온전히 글로만 전달된다. 따라서 더 구조적이어야 하며 논리적이어야 한다. 글을 쓸 때 어떤 구조로 내용을 구성할지, 내가 이 말을 할 때 다른 사람이 다르게 반박하지는 않을지, 논리적 허점은 없는지 등을 계속 생각하게 된다.(생각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은 변화 혹은 성장을 이끌기 마련이다.)
이러한 과정은 꽤나 성가시고 오래 걸리지만 이 정리의 과정을 겪고 나서 쓰인 나의 생각은 말로 혹은 생각으로만 존재할 때와 확연히 다르다. 더 설득력 있고 구조적이게 된다.
일례로 우연찮게 나의 글을 읽지 않았던 사람들과 내가 썼던 글의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썼던 글이기에 훨씬 명확하고 구조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사실 청자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랬다.)
4) 깊이 있게 생각하다
SNS에 올리는 코멘트가 아니라 적어도 몇 문단으로 나누어진 글을 쓰려면 일단 내용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지식을 정리한 글이 아니라면 거기에 나의 생각이 있어야 한다. (생각의 깊이는 아직 한계가 있다.) 나의 경우 지식 전달보다 내 생각 정리 및 전달에 더 큰 의미를 두기에 소재를 고민할 때와 별개로 글을 쓸 때는 최대한 자료 조사를 안 하려고 한다.
(일례로 와이즐리에 관한 글도 최소한의 정보만 얻어 내 생각을 전달하려고 했다.)
https://brunch.co.kr/@seekeryang7/15
물론 글의 객관성과 정확성은 떨어질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더 의미 있는 글쓰기라 생각한다. 엄청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면, 혹은 지식을 전달하는 게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나의 생각과 가치가 담겨 있어야 진정한 글이 된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나의 생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깊이 생각하려 하고 알려고 하게 되었다.
5) 브런치도 SNS였다
사실 한 달 전에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무의미하게 계속 앱을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고 내가 생각하기에 더 유용한 앱에 시간을 쏟고자 했다.(브런치나 도서 앱들.) 그런데 생각보다 브런치의 SNS적 요소에 매몰되기도 하는 것 같다. 요즘 가장 많이 보는 것이 내 글의 통계이다. 몇 명이 내 글을 읽었는지 혹은 공유했는지 계속 보게 되었다. 중독을 끊고 다른 곳으로 오니 또 다른 중독이 생긴 것이다. (중독 돌려막기 같지만 개인적으로 인스타그램보다 브런치에 중독되는 것이 훨씬 더 좋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요즘 이동 중에 글의 소재를 생각하고 낙서하듯이 글을 써본다. 며칠이 갈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런 내 모습이 좋다.
또한 디자이너 개발자가 아닌 기획자의 성장 지표는 참 모호한데 쌓여가는 글(이제 8개째이지긴 하지만)이라는 아웃풋이 생기니 좋은 결과물이자 동시에 동기부여가 된다.
1차적인 목표는 1일 1글로 50개의 글을 쓰는 것이다. 이 습관으로 많은 것이 변했고 내 생활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따라서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일단 50개를 꼭 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