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가까이에 있다.
스타트업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와이즐리 이야기를 많이 한다. 계기가 있었다. 페이스북을 둘러보다 열정에 기름붓기와 같은 콘텐츠겠거니 했던 카드 뉴스가 와이즐리의 콘텐츠(동시에 광고)였던 것이다. 광고가 아닌 듯한 광고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 제품을 어떻게 마케팅할까를 계속 고민하던 찰나에 와이즐리의 미끼에 낚인 것은 꽤나 임팩트가 컸다. (낚였다는 워딩이 긍정적이지는 않지만 보다 더 직관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나는 이 낚임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
또한 주변에 와이즐리 대표님과 친분이 있는 몇몇 지인들에게 와이즐리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 사실은 엄청 대단하신 분들이라고. 실제로 와이즐리 대표님과 이사님 한 분은 한국 P&G에서 근무하셨고 다른 이사님 한 분은 구글 코리아에서 근무하셨다고 한다. 단순히 면도기 만드는 회사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와이즐리는 혁신을 만들고 있는 회사이다.
와이즐리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면도기를 거의 구매하지 않는다. 2주에 한 번 정도 혹은 특별한 날만 면도를 해도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고 면도기를 직접 구매해본 것은 살면서 1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와이즐리라는 스타트업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내가 와이즐리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를 전해보려 한다. (사실 평가보다는 존경의 의미가 더 크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와이즐리는 혁신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와이즐리만의 몇 가지 특징이 있다.
1) 명확한 문제 정의
2) Only 공식 홈페이지
3) 계획된 사업 확장
4) 스토리텔링
1) 명확한 문제정의
모든 솔루션의 출발점은 문제 정의이다. 문제가 명확해야 솔루션도 명확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와이즐리의 문제 정의는 놀랍도록 명확하다. 면도날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면도날이 비싼 이유(문제의 원인)는 크게 독점, 비싼 유명 모델 광고, 복잡한 중간 유통이다. 따라서 와이즐리는 독점 구조를 깨고, 비싼 유명 모델 광고를 하지 않고, 복잡한 유통 구조를 줄임으로써 합리적인 가격의 면도기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다.
- 문제(상황) : 면도날이 지나치게 비싸다
- 문제점(원인) : 독점, 비싼 유명 모델 광고, 복잡한 유통 과정
- 해결 : 독점을 깬다, 비싼 유명 모델 광고를 하지 않는다, 복잡한 유통 구조를 줄인다
- 결과 : 합리적인 가격의 면도기를 제공한다
와이즐리는 D2C로 대변되는 유통 혁신으로 면도기의 가격을 대폭 낮추었다. 또한 정기구매(Subscription)라는 효용을 추가해 면도기(생활 소비재)가 가지는 불편함(주기적인 구매의 번거로움)을 해결한 것이다.
- 정기구매(Subscription)
명확한 문제 정의로 출발한 와이즐리는 명확한 솔루션과 그에 따라 뚜렷한 브랜딩과 메시지를 지니게 되었다. 단순해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운 것이다.
2) Only 공식 홈페이지
사실 오직 공식 홈페이지에서만 판매가 이루어지는 것은 1 )의 D2C 구조와 중복된다. 다만 유통 구조의 혁신에 있어서도 공식 홈페이지에서만 판매하는 것은 두드러진 특징으로 단순 유통혁신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기에 조금 더 이야기하려 한다.
보기에 따라서 공식 홈페이지에서만 판매하는 것은 양면성이 있다. 판매 채널이 적기에 판매 및 노출이 적게 일어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에, 하나의 채널로 집중할 시 얻을 수 있는 장점들도 있다. 장점들은 다음과 같다.
- 수수료 절감
- 용이한 고객 관리
- 데이터 확보
- 브랜딩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판매할 시 우선 수수료가 들지 않는다. 다른 판매 채널에 입점할 경우 적게는 10% 많게는 30%까지 발생하는 수수료를 결제 수수료 정도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절감된 수수료는 제품의 가격을 절감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판매 채널까지도 유통 혁신이 닿은 것이다.
많은 채널에서 판매가 이루어질 시 CS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발생한다. 벤더사를 통해 CS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한 채널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들은 보다 쉽게 컨트롤 가능하며 매뉴얼화하는데도 용이하다. 이는 고객 관리의 효율성과 직결된다. 그리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발생한 고객 관리는 그대로 유용한 데이터가 된다.
앞에서 얻은 데이터를 활용해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제품 및 서비스의 개선에도 반영될 것이며 마케팅 효율성을 제고하고 방향성을 확립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판매가 일어나는 모든 데이터가 자산이 되며 시간이 갈수록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채널에서만 판매되는 것은 단순히 내부적인 장점에 그치지 않는다. 고객들도 이를 인지한다. 와이즐리라는 채널(공식 홈페이지), 제품, 스토리를 더 뚜렷하게 전달받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와이즐리만의 브랜딩을 확립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사실 자사몰을 통해서만 판매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이즐리는 현재까지 그것을 잘 해냈고 이는 와이즐리만의 특징이라 할 만하다.
3) 계획된 사업 확장
혹자는 면도기만을 판매하는(현재는 쉐이빙젤도 판매하고 있지만 말하자면 그렇다.) 와이즐리가 어디까지 클 수 있을까를 의심한다. 와이즐리 대표님은 그러한 우려를 비웃듯 최근 남성 화장품 분야로의 사업 확장을 발표했다. 내부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시작부터 대략적인 구상안에 있었던 행보로 예상된다.
명확한 문제 정의를 바탕으로 확보 가능한 시장을 선점한 후 더 큰 시장으로 나아가는 행보는 매우 합리적이면서도 계획된 움직임으로 보인다. 다음 제품은 피부 보습제와 자외선 차단제라고 한다.
- 와이즐리의 제품 방향성 : 면도기 -> 쉐이빙젤 -> 피부 보습제 -> 자외선 차단제 -> 남성용 화장품
와이즐리가 남성용 화장품 영역에서도 기존 면도기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면도기에 그치지 않는 스타트업임을 공표한 것이고 와이즐리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4) 스토리텔링
이것 또한 명확한 문제 정의에서 출발한다. 와이즐리는 끊임없이 '더 이상 속지 마세요', '남성 소비자들은 평생 속고 살았다' 와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이 메시지에 이어 '정직한 가격', '문제 해결'이라는 이야기를 한다.(나는 '당신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최악을 습관을 아시나요?'라는 페이스북 카드 뉴스에 낚였었다.)
이러한 메시지에 더불어 창업자들이 직접 겪었던 불편함이었다는 점, P&G 출신의 창업자가 직접 발로 뛰어 공장을 확보했다는 이야기들이 소비자들에게 진정성 있게 전달된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그대로 마케팅, 브랜딩에 활용되고 소비자의 높은 충성도로 이어지는 것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참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이다.
와이즐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오래되지 않은 스타트업이다. 100년 역사의 독일 면도날 공급 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된다고는 하나 다른 IT 기반의 스타트업에 비해 압도적인 기술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다만 와이즐리는 혁신에 대한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혁신이 꼭 복잡하고 기술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 단순하고 명확한 것에서 출발할 수도 있으며 우리 주변에 존재할 수도 있다. 와이즐리는 이를 보여준 좋은 사례이다. 너무 쉽게 이야기를 해서 지금 와이즐리가 해내고 있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제대로 전달이 안된 듯도 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무 멋있고 대단한 스타트업이다.
와이즐리의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하며
훗날 지금의 나와 같은 누군가가 지금의 와이즐리와 같은 훗날의 나의 회사를 응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