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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할무니 Sep 17. 2019

손오공은 여의봉을 들었고, 여의도엔 서궁이 있었다.

탕상수첩 열여덟 번째 기록, ‘서궁’

서역 삼만리로 기나긴 여행을 떠나며 손오공이 경험했을 수많은 사건들은 두고두고 회자가 될만한 것들이어서, 기어코 사오정의 입에서 나방을 쏟아내게 만들고 저팔계를 왜그러셩밖에 외치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손오공으로 말할 것 같으면 금고아가 헤드기어로 바뀌었을뿐더러 가끔 손에서 장풍을 쏴대기도 하고, 어디에선 여의봉으로 장대높이뛰기를 한다는 소문까지 들리더라. 어느 손오공이건, 이리저리 그래도 잘 소화되고 있는 걸 보면 참 매력적인 캐릭터 아닌가 싶다. 그래도 여의봉은 이리저리 늘였다 줄였다 하며 휘리릭 돌리는 게 제맛인데. 여의봉 없으면 뭐, 손오공이 아니지. 손오공 하면 여의봉, 여의봉 하면 손오공이니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너무 올라가기 때문에 그냥 대충 개화기 즈음부터 해서 백 년이라고만 친다고 봤을 때, 전국 방방곡곡을 다 뒤져도 중국집만큼 여기저기 퍼져나간 건 없으리라 본다. 어림잡아 백 년이지 본토의 그것까지 더하면 헤아릴 수 없을 거다. 탕수육이 지천에 널린 서울에서 외딴섬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변방 취급을 받는 여의도지만, 이곳이 있어 서울의 중심에서 탕수육 외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손오공 하면 여의봉, 여의봉 하면 여의도, 여의도 하면 서궁이니까.



파는 제각각의 모양을 가지고, 계란은 어떠한 것도 그 모양을 종잡을 수 없지만, 그 둘은 금상첨화.


계란탕, 계란찜, 계란말이, 계란파하하, 한국인의 밥상머리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계란과 파다. 찰떡궁합 대신 계란파궁합이 더 알맞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보니 어감이 좀 이상하긴 하네. 괜히 찰떡궁합이 아닌가 보다.

탕수육 불모지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 벌이고 있으니 즐기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건 부지기수고, 배고픔이 완연해질 즈음 발길 옮기면 기다림은 인지상정이니, 고진감래가 이런 것인가.

앉자마자 받아드는 건 바로 최상급 궁합, 계란국이다. 공복으로 성난 위장 달래주는 데는 한국인의 참맛 계란국 만한 게 없지. 사방으로 계란국 튀는 건 고려도 않고 후루룩 짭짭 국치기 박치기 시원하게 하고 나면,



밑반찬 사대장. 단무지, 깍두기, 양파, 춘장. 춘자 누나, 잘 계시죠?


이렇게 중식 밑반찬 삼대장...이 아니라 사대장이 나타났네? 단무지, 양파, 춘장, 깍두기. 깍두기를 타이핑하려니 손가락이 내 몸이 아닌 것 마냥 어색하게 작동한다. 생경한 느낌이지만 한국땅에서 중식을 팔고 있으니 김치맨의 심경을 고려한 한중합작 반찬이라 생각하자.

빼곡히 쌓여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양파는, 비워도 비워도 그 끝을 알 수가 없어 심지어 그릇마저 양파로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생각해보니 잘만 비워내면 양파도 충분히 그릇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도 같은 게, 디저트도 따로 필요 없고, 그릇 씻을 필요 없으니 물도 절약되고, 세제도 안 쓰고, 환경도 보호하고, 일석 몇조여 이거. 아무도 안 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만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안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일단 누군가 도전해보기를 기다린다. 그 실패를 내 성공의 어머니로 삼는다. 만약 성공한다면 우리 어머니를 그대로 어머니로 모신다. 뉴스에서나 보던 후레자식이 여기 있는 갑다.



오향장육, 오장육부, 이젠 헷갈리지 마세요.


권력집중형 홍고추와 지방분산형 청고추가 정상 점령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세상 빛 다 빨아들인 듯 칠흑 같은 어둠의 사각돌들이 원을 그리며 포진해 있는 옹골찬 모습이다. 전쟁 시늉은 고추들이 다 하는데 하이라이트는 흑석들이 다 받는 모양새,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딱 이 꼴이 아닌가.

외강내유를 좋은 인성의 일각으로 많이들 삼는다. 이 흑석은 외유내유, 겉도 부드럽고 속도 부드러운 마치 갓 태어난 강아지의 보드라운 터래끼를 쓰다듬는 느낌이다. 아마도 혀에 손 같은 촉감이 있었다면 분명 그리 느꼈을 거다. 앗. 혀를 대신한 손가락을 상상하니 오향장육의 아름다운 맛을 어리석게도 모두 잃어버렸다. 분명 좋은 맛이었는데. 정신에 가한 충격과 공포가 맛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내놓게 만들었다. 상상은 금물이라더니, 이래서였나 보다. 아쉽지만 고추전쟁 봤다는 것에나 만족하자.



만두신과 만두 만두만두 만두 게임. 만두 일 둥둥, 만두 이 둥둥, 만두 삼 둥둥... 이 게임이 아닌가?


앞서 외유내유를 살펴봤다면 이 만두야말로 외강내유의 산증인이다. 만두신이 있다면 이런 만두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만두 영접하자마자 입에 접하면 그대로 요단강 건너기 십상이니 한 템포 침착한다.

아삭거리는 식감이 사과에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시, 오산시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아삭거리는 만두피를 부셔 뭉개니 몽글한 만두소가 곧 모습을 드러낸다. 물 흐르듯 자연스레, 뭐에 홀리듯 허겁지겁 입에 쑤셔넣다 보면, 영광의 상처, 입천장은 만신창이가 되지만 한 입 먹고 그 맛 잊을세라 그새 두 입, 세 입 욱여넣게 된다. 고상과 예의범절은 먼 나라 이웃 나라 이비에스 세상 끝으로. 강낭콩도 두, 세 개는 거뜬히 날라내는 젓가락 신공 발휘해서 엑스자 젓가락질들 물리치고 만두신에 가까이 다다를 위치를 선점한다. 근데 선점효과, 그거 별 거 없더라. 어리석은 주인 만나 고생 고생 생고생하는 우리 입, 미안해서 어떡하나 몰라.


누구나 보루는 있다.


바삭함에 고소함을 더해 가히 바고함을 가지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세상에 둘도 없을 탕수육이다. 근데, 세상에 아주 똑같은 탕수육이 둘이나 있기는 한가?

어찌 됐건 외딴섬에서 외로운 싸움 가능한 이유는 이 탕수육이 있기 때문이다. 갓 만든 탕수육은 정말 갓이기도 하거니와 먹기엔 당연 그만이고, 조금 식으면 무기로 사용하기도 딱이니 들고 다니며 먹으면 휴대용 식량 겸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멀티퍼포즈 푸드라고 볼 수 있다. 베어그릴스가 진작 알았더라면 야생에서 어렵게 살아남지 않아도 됐을 텐데.

소스의 점도 또한 참으로 적절해서 눅눅해질 걱정일랑 사전에 차단하니, 스트레스 하나 또 이렇게 날려보낸다. 걱정 하나, 둘 캐내고 제거하면 남은 것은 결국 최후의 보루, 서궁 탕수육이다.



깐풍기억을 잃은 나를 용서하지마.


빠른 불에 태우듯 휘휘 볶아 튀김계수를 최대치로 유지하면서도 누드톤의 소스 맛을 유지한 깐풍기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사실 방금 치킨을 먹고 왔더니 기억에서 깐풍기를 끄집어내는 게 여의치 않다. 미안하다. 깐풍기. 억지로 그 맛을 떠올리려 하니 기억이 오작동하는 게 느껴진다. 깐풍기에게 그만 몹쓸 짓을 하였구나. 미안하다. 깐풍기. 아름답게 태어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니 기억하는 건 아름다움뿐, 최후의 맛은 사라져 버렸네. 내게 남은 건 결국 깐풍기의 아름다움뿐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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