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상수첩, 여섯 번째 기록
어린아이는 그 자체로 굉장히 순수해서 아주 작은 자극에도 매우 큰 반응을 보이곤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게, 본능적으로 새로움에 둔감하지 않은 이상 모든 새로운 것은 다 큰 어른에게도 격렬한 충격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동화는 세상의 단맛 쓴맛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조금씩, 너희가 앞으로 살아야 할 세상이 이런 곳이라고 아주 조금씩 알려주는, 깜짝 놀랄 충격이 아닌 잔잔하게 그런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직 탕수육을 먹어 본 적이 없는 성인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으로 잔잔하게 달려가시라. 어른을 위한 탕수육 동화 반점이 기다리고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기본에 충실한 탕수육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먹어도 맛있다 느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탕수육은 원래 맛있기 때문이다.
찹쌀탕수육으로 귀결되는 요즘의 맛과는 그 결이 완전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고기를 씹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아, 이것은 고기이구나'이다. '튀김옷이 바삭하네'를 느끼지 않아 다행이라고 할까. 고기는 역시 고기 같은 맛이 나야 한다.
고기튀김 자체에는 크게 간이 되어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소스는 어떠한가. 배춧잎이 올라간 것에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겠지만, 상당히 삼삼하고 덤덤한 맛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역시 색깔부터가 자극적인 갈색으로 도배된 최근의 탕수육 소스와는 다른 점이다. 그렇다면 잔잔한 탕수육과 덤덤한 소스가 만났으니 맛도 그러하겠구먼 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정답이다. 그렇지만 오히려 어느 한쪽이 튀지 않는다는 면에서 저 삼삼함이 굉장히 조화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액체 소스, 채소, 고기튀김 본연의 맛들이 온전히 느껴진달까. 이 정도면 생배추, 생당근, 생고기를 먹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개선된 돼지고기 유통환경을 다음에 몸소 체험해보기로 한다.
역시 동화다운 맛이다. 전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그릇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린 깊은 맛이 있다. 이 정도면 매운맛에 갓 눈을 뜬 세 살배기 어린 친구도 충분히 먹을 수 있을 만한 순한 맛이다. 어쩐지, 그래서일까, 동화반점에서 어린 친구들을 많이 본 것 같은데, 이것은 내 희망인가 꿈인가.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바다의 매운맛을 보여주고 싶다면, 동화반점에서 짬뽕을 먹으면 된다. 먹는 순간 바다를 좋아하게 될 그런 맛이다.
짬뽕을 먹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바다는 우리에게 이렇게 한없이 베풀어 주는데, 우리는 바다에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뭐라도 해주고 싶다.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바다에 놀러 가지 말아야 할까. 생선들을 먹지 말아야 할까. 석유를 캐지 말아야 할까. 폐수를 흘려보내지 말아야 할까. 뭐지. 뭐가 됐든지 일단 아무것도 안 하면 바다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바다의 가장 큰 적은 인간인 게 분명하다.
역시 어린 친구들이 많이 찾는 곳답게 필수 교양도서인 삼국지의 그림이 걸려있다. 맛으로만 승부를 보는 게 아니라 아이들 교육에도 힘을 쏟겠다는 사장 선생님의 깊은 철학이 느껴진다. 역시 동화반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