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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Jun 14. 2024

지루하다, 지루하다

참을 수 없이 평온한 날에 대하여

유튜브 제작 전문가와 점심을 먹으며 쇼츠의 세계에 대해 짧게나마 공부했다. 너무 많은 정보를 담기엔 뇌용량이 부족해 몇 번이나 “오늘은 여기까지”를 주문했지만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재미란 바로 이런 것, 꼬리에 꼬리를 무는 흥밋거리가 있어야 한다.


전문가는 역시 전문가답게 적당한 타이밍을 맞춰 귀에 쏙 꽂히는 말로 마무리했다.

“쇼츠 제작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실수는 용서할 수 있지만 지루한 건 용서가 안 된다.”


아, 아름다운 말이다.

쇼츠(Shorts)가 갖고 있는 짧음의 기준은 60초다. 단 60초도 지루해선 안 되는 시대, 바로 지금이다.

“사람도 그래요. 실수하는 건 용서가 되지만 지루한 사람은 참을 수가 없어요. 안 그래요?”

동료 한 명이 동의를 구했다.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맞장구도 쳤다. 저마다 지루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는 눈치였다.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우주의 섭리에 따라 나 역시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실수의 순간들이 아니라 지루했던 얼굴들… 놀라운 영상이다.

흠, 지루한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한다면 얼마나 고문일까, 오늘 쇼츠에게 한 수 배웠다.


전문가와 헤어진 뒤 지루한 이들의 공통점을 생각해 봤다. 우선 지루한 것의 정의부터 해보고, 지루한 것들의 사례를 찾아보고, 지루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추정해 가다 보니, 이런 식의 분석적 사고야말로 지루 자체였다. 쇼츠에게 배운들, 20세깃적 버릇을 못 버리고 있는, 나는 지루한 지루한 사람이었다.


그런 식으로 지루하게 찾아낸 지루함의 조건들을 정리하면 대략 이렇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이유는 같은 사고를 반복하기 때문이고,

같은 사고를 반복하는 이유는 호기심이 없거나 노력을 안 하기 때문이고,

노력하기 싫으니 새로운 시도를 기피하게 되고, 

해왔던 것을 반복할 뿐이고,

그러면서 같은 말,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날마다 지루하게 나이 드는 삶.


자신이 지루한 줄도 모른 채 지루의 늪으로 빠져드는 지루한 사람,

굴곡 없이 평탄하게 지루의 늪으로 빠져드는 이에게 추억의 재산이 쌓였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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