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앞에서
설날이 온다. 도무지 설레지 않는 설이다.
언제부터 설레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는데, 아마도 받기보다 줘야 하는 것이 많아질 즈음이지 싶다(너무 각박한 해석일까).
유일한 설렘이 하나 있다면 긴 연휴 정도인데, 그나마도 여기저기 인사치레 일정을 꼽아보니 이 빠진 호랑이처럼 기분이 너덜거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도 이런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한편으로 자연스럽고 한편으로 상투적이며 한편으로 복권이 떠오르기도 하는 인사말, 해마다 수없이 들어 온 말인데 새삼 ‘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일종의 정신병 증세다).
복이란 무엇일까. 이리저리 검색해 봤더니 대체로 교훈적인 얘기들이다.
관련 키워드는 행운, 행복, 운수대통, 대박, 건강, 무병장수 같은 것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복을 받으라’는 구체적 메시지로 인사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happy new year, 새해 행복하세요, 축하합니다, 라고 인사할 뿐, ‘복을 받으라’고까지 기원하지는 않는 것이다.
관습으로 굳어진 단순한 인사말 방식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닐까 싶었지만 내친김에 더 탐색해 봤다. 말 다음의 행동에서도 확연한 차이가 나타났다.
새해에 우리가 하는 행동들은 세배(인사), 제사(조상에게 인사), 떡국, 윷놀이 등등 예의와 놀이를 종합한 형태로 진행된다. 가족과 조상, 공동체, 하늘의 운과 연계된 행동들 중심이다.
영어권에서는 불꽃놀이를 하고 샴페인을 터뜨리며 ‘(상대를) 축하하고 (스스로) 결심하는’ 행위를 한다. 주된 키워드는 new, change, opportunity, deside, resolve 등이다.
내친김에 문화적 분석으로 들어가 봤다. 일단 농경사회와 목축사회의 차이가 새해맞이 방식을 바꾸었다는 주장이 있다. 가족-마을-공동체를 중시한 문화권과 개인-이동-개척을 중시한 문화권의 차이다. 전자는 운명공동체적 의식을, 후자는 실천적 변화의지를 중시하는 것이다. 전통 중시형과 미래 지향성의 차이로 구분하거나 외부 기원형과 내적 계발형의 차이로 구분 짓기도 한다.
더 들어가면 정신병이 심화될 수 있어 적당히 빠져나오며 왜 하필 올해 ‘복(정확히 말하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에 집착하게 됐을까 되새겼다. 내적으로는, 복에 의존하는 나이가 되었나 싶은 자조감이 싹텄다. 외적으로는 기복과 주술이 유행하는 사회가 보였다. 이런 환경에서 어찌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가볍게 넘길 수 있겠는가, 자위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재미없는 교훈적 메시지라 제껴버렸지만 복의 진정한 의미는 ‘덕을 쌓는 것’이란 설이다. 복 많이 받으세요는 덕 많이 쌓으세요의 다른 말이고, 덕을 많이 쌓으면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의미라고 하니, 새해 모두 복 많이 받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