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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쉬는솜사탕 Jun 22. 2023

20년만에 야구장에 갔다.

내가 갈매기일 줄이야


내 고향은 부산이다. 고향이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식상하고 어색한 도시. 모름지기 ‘고향’이라고 하면 아련하면서도 그리운 정서가 묻어나야 하지 않겠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정지용의 <향수>에 나오는 어느 시골 마을처럼 말이다.


요즘 그런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그렇게 치더라도 부산은 '너무' 도시다. 대도시다. 전국 어느 아파트 단지에 갖다 놓아도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질 평범한 놀이터에서 뛰어놀며 자란 나에게는, 부산이 그리 특별한 곳이 아니다.


게다가 머리가 조금 크고부터는, 얼른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집에서 독립해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최대한 멀어져야 했다. 다행히 서울에 몸을 누일 수 있는 침대 한 칸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고, 내 몸에 남아있던 부산의 흔적을 빠르게 지워갔다. “잘 사나? 밥 무웃나?” 고등학교 친구들과 통화를 할 때는 걸쭉한 사투리가 자동으로 튀어나왔지만, 대학 친구들을 만날 때는 세련되게 말꼬리를 올렸다. “일찍 왔네에? 밥 먹었어어~?” 사람들은 부산 출신이 사투리를 하나도 안 쓴다며 신기해했다.


부모님이 일본으로 이주하고부터는 부산을 찾을 일도 거의 없었다. 10년쯤 뒤, 고향이 같은 남자와 결혼을 하면서 다시 부산과의 인연이 이어졌지만, 마음으로는 더욱 멀어졌다. 내 평생 부산에 돌아가서 살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을 굳힐 뿐이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아직도 나의 피 속에 부산 앞바다의 노릿한 소금기가 녹아있음을 깨달았다.




야구장에 가는 건 꼭 20년 만이었다. 대학 시절, 남자 친구(지금의 남편) 와 2호선을 타고 잠실 야구장에 갔었더랬다. 스포츠에 관심이 없고, 야구에 문외한이던 나는 야구장을 ‘먹으러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바리바리 먹거리를 싸가서 경기는 안중에도 없이 먹고 마셨다. 먹을 만큼 먹었음에도 경기가 도무지 끝나지를 않아서, 종료할 때까지 꾸역꾸역 버텼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야구장에 갈 기회가 없었는데, 초등 2학년 아들이 야구에 관심을 가지면서, 집에서 멀지 않은 문학경기장에 다녀오기로 했다. 남편이 ‘롯데 자이언츠’의 오랜 팬이라, 인천으로 원정 경기를 오는 토요일로 표를 예매했다.


가만있자. 그런데 나는 어느 팀을 응원하나. 부산 출신들은 대부분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한다. 연고와 상관없는 팀을 응원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부산 사람들에게 ‘롯데’는 모태신앙과도 같다. 매년 성적이 저조해 꼴찌 신세를 면치 못하는데도, 매 시즌이 시작할 때마다 시민들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럼 나도 롯데를 응원해야 하는 건가?? 아니, 그러기는 싫었다. 남편에게 물었다. “ 솔직히 프로 야구팀에 지역 연고지를 만든 건 상술 아니야? ‘우리 지역팀’이라고 포장을 해서 은근히 지역 간의 경쟁심을 부추기는 거잖아.” 남편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했다. 어차피 나는 양 팀을 통틀어 아는 선수도 없고, 어느 팀이 이기건 크게 상관이 없으니 그냥 이기는 팀을 응원하기로 했다. 야구장은 먹으러 가는 곳이니까~~


토요일 오후, 아들의 손을 잡고 문학경기장으로 향했다. 집에 시누이가 아들에게 선물해 줬던 롯데의 대표 선수 ‘이대호’의 응원 유니폼이 있었지만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아들과 나는 옷 사이즈가 거의 비슷하다.) 아들은 ssg 팬이 되기로 마음먹었고, 나는 그걸 챙겨 입을 만큼 열정적인 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오자마자 땅이 울릴 듯한 함성이 들렸다. 이미 경기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한 사람의 이름을 연호하는 수천 명의 목소리. 그 열기가 멀리서도 느껴져, ’안 야구팬‘의 마음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전날 11:1로 롯데가 대패한 터라 낙심했던 남편은, 롯데가 상승세인 모양이라며 상기된 얼굴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굳이 경기를 보지 않아도 괜찮았으므로 혼자 치킨과 맥주를 사서 천천히 경기장으로 입장했다. 외부의 3층 계단을 올라 경기장 내부로 진입하는 통로를 통과하자 4면의 관중석을 빼곡하게 채운 관중들과, 초록의 잔디가 깔려있는 그라운드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문학경기장은 2만 3천 명을 수용하고, 이날 경기는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우와. 여기는 다른 세상이구나.


마침 경기장에 들어섰을 때는 롯데가 3:0으로 앞서고 있었다. 오늘은 분명히 승리를 지켜보리라는 듯 롯데 응원단은 가열하게 응원전을 펼쳤다. 인천 홈구장이니만큼 수적으로는 밀렸지만, 기세로는 결코 밀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타자가 나올 때마다, 오직 그 선수를 위해 만들어진 맞춤 응원가를 불렀다.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떼창이었다. 승리의 깃발에 쐐기를 박을 시원한 한 방에 대한 염원. 나는 치킨을 씹으면서 그 응원의 물결을 지켜보았다. 참 낯설었다.


공 하나에 저렇게 울고 웃을 필요가 있나?? 이기면 선수들이 좋지 저 사람들에게 득 될 게 있나?? 야구팀에 목숨을 거는 세계를 나는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홀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관중석에 앉긴 했으나 응원 구호도, 노래도 모르는 것은 물론이요, 야구 룰도 헷갈리는 수준이었으니 맥주를 마시면서 남편에게 설명을 들었다. 포수가 공을 받았을 때 심판이 가만히 있으면 ’볼‘이고 손을 들면 ’스트라이크‘라는 것. ’병살‘은 타자가 친 공에 자기 혼자만 아웃되는 것이 아니라, 출루해 있는 선수까지 아웃이 되는 타격이라는 것.


오호라, 모를 때는 몰랐는데 규칙을 알고 보니 경기 내용이 이해가 됐다. 이거 이거 재미있네! 흥미를 붙여 경기를 지켜보며, 목구멍으로는 연신 노랗고 차가운 액체를 흘려넣었다. 곧 그 기운이 서서히 몸 전체로 퍼졌다. 각을 잡고 있던 이성이 흐물흐물해지고 사지가 노곤노곤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경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들이닥치는 찬스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안타까운 순간들. 각본 없는 드라마에 어느새 나는 울고 웃고 있었다. 그리고 치킨 한 마리를 끝냈을 즈음에는 열정적으로 롯데를 응원하고 있었다. 롯데 응원단과 함께 함성을 지르고 탄식을 뱉었다. 에라 모르겠다. 마 저도 부산에서 왔다 아입니까!! 그 무렵 울려 퍼지는 롯데 공식 응원가 ’부산 갈매기‘.


“파도치는~~ 부둣가에~~ 지나간 일들이 가슴에 남았는데~~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너는 정령 나를 이잊어었나아~~”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노래를 인천 하늘을 향해 놓아 보냈다. 나고 자란 곳을 떠나, 멀리 인천으로 흘러와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 대한, 나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 한편이 뜨끈해졌다. 거칠어 보이지만 속정이 깊은 사람들, 화끈하고 열정적인 사람들. 이 노래를 힘주어 부르는 동안 우리는 하나였다. 미처 몰랐지만 나의 골수에는 형형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부산 갈매기’의 피가.



6회 초 롯데의 공격. 타자들은 1,2, 3루에 나가 있었고 투아웃인 상황. 전준우 선수가 타자로 나설 차례였다. 날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찬스라, 전 선수가 반드시 승점으로 연결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안타~ 안타~ 쎄리라 쎄리라(때려라) 롯데 전준우~~” 응원가가 흘러나오고, 양 팀 응원단 모두 희비의 순간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4만 6천 개의 눈이 투수의 글러브에 꽂혔다. 이윽고 네 개의 공이 던져지고, 투스트라이크 투볼.  방망이가 제대로 휘둘리지도 못했다. 그러나 희망은 있었다. 잠시 후 운명의 공이 글러브를 떠나 허공을 날았다. 제발!! 관중들은 동시에 숨을 멈췄다.



땅!


방망이를 맞은 공이 하늘 높이 날았다. 공은 포수 반대쪽 관중석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더니 ‘뚝’ 외야에 떨어졌다. 수비수들이 공을 쫓아 달려가는 동안 두 명의 타자가 홈으로 들어왔다. 5:0. 경기장을 쪼갤듯한 환호. 갈매기들은 춤을 추고 얼싸안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나와 남편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물개 박수를 쳤다.이야~~ 이 찬스를 살려냈구나!!!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입이 댓 발 나온 어린이가 있었다. 아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ssg가 수세에 몰리자 잔뜩 뿔이 난 모양이었다. 치킨도 먹었고 컵라면도 먹었고, 경기는 지고 있고. 모든 흥미를 잃은 아들은 집에 가자며 온몸을 꼬아댔다. 한창 재미있는데 중간에 가는 게 아쉽긴 했지만, 롯데가 거의 이긴 거나 다름없으니, 기분 좋게 일어나기로 했다. 뒷일은 고향 사람들에게 맡기지 뭐!


뜨겁게 달아오른 경기장을 뒤로하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 롯데를 외치는 함성이 들려왔다. 소리만 듣고도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갈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아우성이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나도 저 목소리 중에 하나가 아니었나. 경기장 출구를 통과하면서 스르륵 현실로 빠져나온 것일까?


경기장에서 한발 한발 멀어질수록 정신이 들었다. 마구 흔들어대던 이성이 주섬주섬 옷매무새를 가다듬 듯, 본연의 내 모습이 돌아오고 있었다. 야구. 승리. 갈매기. 그게 뭐 대단한 건가. 밥 먹여 주나... 잠시나마 고향의 찐득함에 엉겨 붙었던 나는, 지하철을 탈 무렵 쿨내 풀풀 풍기는 시니컬한 태도를 되찾았다. 경기 결과는 그리 궁금하지 않았다.



이날 경기는 5:8 ssg의 승리로 끝났다. 우리가 나간 후 8회에서 7점을 한 번에 실점한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실망하기보다는 헛웃음이 났다. 역시…롯데구나… 누가 이기든 나와는 크게 상관이 없으니 뭐.


그러나 안다. 나는 머지않아 다시 경기장을 찾을 것이다. 그 이상한 나라에서 풍겨오는 부산 앞바다 냄새가 싫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싫지 않은 게 아니라 좋았다. 정말. 내가 어딘가에 속해있다는 느낌, 같은 정서를 공유한다는 느낌은 머리가 아닌 가슴을 찌르르 진동시켰다.


알코올의 기운이 떠다니는 관중석, 소리를 지르고 몸을 들썩이는 사람들이 어울려 일으키는 파도 속에 다시 섞이고 싶다. 그땐 롯데 유니폼을 챙겨 입어야지. 장내에 울려퍼지는 ‘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를 혼을 담아 부를 것이다. 그곳에서는 기꺼이 한 마리의 끼룩끼룩 갈매기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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