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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쉬는솜사탕 Jun 20. 2024

눈앞에 있는 것을 하기. 그게 전부다.

기세등등하던 햇살이 조금씩 누그러지던 오후,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 놓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자주 다니는 길목 코너에 ‘버거킹’이 보였다. 살짝 출출하던 참이어서인지 간판이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강렬한 욕구에 사로잡혔다. 햄버거에 콜라 그리고 감자튀김! 그 ‘완벽한 정삼각형’ 같은 조합이라니...   


꾹 참았다가 아이가 돌아오면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을까, 먼저 혼자 먹어버릴까 잠시 고민했다. 오전에 실컷 운동을 해놓고 패스트푸드를 먹는 게 찔리긴 했지만, 바짝 달아오른 입맛을 누르기에는 의지가 부족했다. 힘차게 빨간 문을 밀며 홀홀히 입장했다.



마침 행사를 하는 주니어 와퍼 세트를 주문했다. 기다리기를 잠시, 생각보다 더 ‘주니어’한 버거가 친구들을 데리고 나왔다. 여유롭게 포장을 벗기고 햄버거를 베어 물었다. 케첩을 찍어 감튀도 하나, 콜라도 한 모금. 다시 햄버거.  아들이 곁에 있었다면 음식을 사수하기 위해서라도 전투적으로 임했을 테지만, 손댈 이가 없으니 서두를 것이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움직이며 혼자 음식을 씹고 있자니 생각이 여기 저리로 흘러 다녔다.



‘아들 방학 수영신청해야 하는데 계속 미루고 있네…’

’ 아까 유튜브 영상에서 본 그 배우 참 멋졌는데…‘

’그런데  나 요즘 왜 이렇게 고기가 땡기지??‘

’ 목요일에 요가를 쉴까 갈까. 쉴까 갈까 ‘



그렇게 유혹적이던 햄버거, 감튀를 끌어안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 수없이 떠올랐다가 다른 것들에 떠밀려 사라졌다. 씹고 있는 음식도 그냥 그랬다. 딱 내가 아는 맛. 감동스러울 것도 놀라울 것도 없는 패스트푸드였다. ‘내가 이게 그렇게도 먹고 싶었던가?? 이렇게까지 안 먹어도 됐는데...’ 반쯤 먹은 햄버거에 눈길을 주기를 잠시, 또 다른 생각풍선들이 부풀렸다. ‘참 근데, 영어공부 해야 하는데... 미루고만 있네…’



별 맛도 아니라면서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이다 보니 마지막 감자튀김 한 톨마저 사라지고, 어느새 쟁반에는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읭. 이게 언제 다 없어졌지??




2년 전, 일을 그만두고 조기은퇴를 한다며, 자유를 찾겠다며 연고도 없는 강릉으로 이사를 갔다. 첫 몇 개월은 새로운 환경과 생활에 적응하느라 들뜨고 바빴다.   끊임없이 이어 달리는 산맥과 대양을 향해 펼쳐진 바다, 도심보다 훨씬 커다란 하늘.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 생활과 환경에 조금 익숙해지니 딴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 이렇게 있어도 되나’


‘이도저도 아닌 백수로 남는 건 아닐까’


‘남들은 열심히 살고 있는데…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무언가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불편한 감정은 '죄책감' 닮아있었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뭐라도 손에 잡으려 애썼고, 알 수도 없는 뭔가를 찾기 위해  푸덕거렸다.



그냥 눈앞에 삶을 살면 됐는데. 

그냥 그 시간을 즐겨도 괜찮았는데…

나는 미래를 위해 지금의 삶을 준비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강릉을 떠나 다시 일을 하고 있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밥벌이를 하고 있으니 최소한의 쓸모는 하고 있는 거라고 위안을 삼지만, 여전히 생각은 과거와 미래를 쏘다닌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안 되는데. 난 좀 더 멋지게 살고 싶었는데


이곳에서도 나는 여전히 ‘영광스러운’ 미래를 위해 어떻게 지금을 상납해 볼지를 고민한다. 뒷통수에 ’불안‘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있는 줄은  모르고 묘책을 찾아 여기저기로 쏘다닌 날들. 이 꼬리표를 떼어낼 수는 없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을 수는 없을까. 



비어버린 쟁반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다음번에는 오롯이 빵과 고기, 양파. 쏘스의 달콤함, 감튀의 퍽퍽함을 음미해 봐야지. 미래의 꽃등심,오마카세를 위한 플랜을 구상할 게 아니라, 눈앞에 있는 햄버거를 맛있게 먹어야지...



지금 내 앞에 있는 것.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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