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酒路 여기를 가 - #1. 충무路
서울에서 가장 힙한 곳을 꼽으라면 여러 곳이 스쳐 지나간다. 그럼 가장 좋아하는 곳은?
단박에 '충무로'. 경험이 있는 장소는 추억이 된다. 충무로가 그렇다.
충무로에서 대학생활을 보냈다. 땅에 머리를 박고 토했던 이모네 뒷골목, 하얀집 골방에 틀어박혀 날이 새는지도 모른 채 먹었던 낙떡과 복분자주, 서비스로 8000원짜리 비빔막국수를 받으면 소주 이만 원 치를 더 먹었던 대구막창집. 지금도 그 골목과 냄새가 그려진다. 이상하게 초저녁부터 들큰하게 달아오른 분위기, 내 인생에 언제 그렇게 치기 어린 음주를 또 해볼 수 있을까. 그 사랑해 마지않던 골목엔 졸업과 동시에 자연스레 발길이 끊어졌다.
내가 이렇게 충무로에 대한 찬양을 쏟아낼 때 요란하다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다. 맞다. 조금 요란하다. 중학교 수학여행을 제외하고 제대로 서울을 구경한 건 대학입학을 위해 상경한 이후가 처음이었다. 학교 기숙사에 살며 친구라곤 동기가 전부였다. 자연스레 충무로가 내 삶을 이루는 모든 공간이 되었다. 그곳에서 4년을 보냈다. 충무로는 내게 서울생활을 가르쳐주고 사랑을 하고 이별을 경험하고 고단함을 싼 값에 풀어준 공간이다. 지금도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기면 반드시 충무로를 함께 가는데 나이가 들수록 심드렁해지는 상대의 반응이 씁쓸하다.
동대닭한마리 등나무집
애석하게도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닭한마리가 맞다. 그런데, 여긴 다르다. 동대문 4층짜리 건물을 다 쓰고 있는 원조 할머니 보다, 어느산 약재를 달여 끓인다는 명동의 그 집보다 여기가 훨씬 맛있다. 여긴 술 그것도 소주를 마실 수밖에 없는 식당이다. 그리고 이상하게 소주가 '받치는'-나는 술이 취하진 않았는데 어느 순간 알콜향이 강하게 나며 넘어가지 않을 때를 받친다라고 표현한다- 느낌이 없다. 모든 테이블이 줄을 세워가며 소주를 먹고 있다.
이 집만의 포인트는 부추 양념장. 각자 자부심 가득하게 만드는 법이 있겠지만 나 역시 최고라고 생각하는 배합은 이렇다. 아 부추는 나중에 넣는거다. 간장소스는 바닥만 잠길 정도로, 그리고 겨자를 한 움큼 넣는다. 잘 풀어준 이후 빡빡하게 양념장을 추가하고 부추 투하. 어차피 닭을 옮겨 담다 보면 자연스레 국물이 생긴다. 닭 한마리 분량보다 많은듯한 닭봉 살을 뜯어 부추양념과 함께 먹으면, 여기가 충무로! 정신 차려보면 소주 댓병은 마셨다.
여럿이 모여 닭 한마리에 칼국수와 죽 사리 그리고 술까지 먹으면 가벼운 금액은 아니다. 인사불성이 돼 모두가 자기 카드로 긁는다고 한바탕 소란을 떨고 나와 편의점 계단에 주저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결국 그날의 승자는 가게를 물려받는다고 서빙하고 있는 주인의 20대 아들이라고 푸념하며.
필동해물
충무로는 필동에 속해있다. 붓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모여있어 붓골이라 불렸고 이를 한자를 표기하다 보니 필동이라는 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필동엔 인쇄소와 그 종이 내가 가득하다. 인쇄소 도로 앞에 있는 해물집이 바로 필동해물이다. 노포의 분위기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이상하게 해산물 집이 노포인건 싫었다. 탈이 나기 쉬운 식재료라 유독 위생에 박하게 굴곤 하는데 필동해물은 노포이긴 하지만 깔끔하다. 들어서는 순간 풍기는 바닷 내와 동그란 철제 테이블. 메뉴는 여러 가지이지만 보통 모둠을 시키면 된다. 가격은 이만원 초반.
꼬들꼬들한 한치와 해삼 그리고 달달한 멍게까지. 청양고추와 함께 먹으면 신선하다못해 상쾌하다! 모둠해물 한 접시와 기본으로 나오는 홍합탕만 있으면 막차시간까지 술을 마실 수 있다. 심지어 충무로역까지 뛰면 3분.
필동해물집은 2차로 오면 좋다. 그렇다고 닭한마리를 갔다 오는 코스는 추천하지 않는다. 1차에서 간단하게 먹고 와야 필동해물 해산물의 싱싱함을 느낄 수 있다. 보통은 간단하게(?) 맞은편 족발집에서 1차를 하고 온다.
'여기 맛있어, 최고야' 를 외치며 끌고 와 좋아하길 바라는 내 눈빛이 상대는 부담스럽겠지. 그냥 닭한마리일수도, 평범한 해산물 포차일수도 있으나 같이 추억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만은 넉넉하게 받아주길 바란다. 오랜만에 가봐야지, 내 고향 충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