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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리 May 13. 2023

시작은 누구나 찌질해

세상에 나만 빼고 모두 멋지게 사는 것처럼 보일 때, 좋아하는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을 볼 때, 주체할 수 없는 조바심을 느낄 때 하는 찌질한 행동이 있다. 바로 다른 사람의 시작을 탐구하는 것. 


좋아하는 유튜버라면, 동영상 리스트의 필터를 '오래된 순'으로 바꾸고 첫 영상을 보는 것. 매주 멋진 글을 써내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첫 글을 읽는 것. 인플루언서의 인스타그램 첫 게시물을 보는 것 등등.. 어떤 것에도 적용될 수 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디지털 세상에서의 기록은 잘 사라지지 않고, 기록을 남기는 이들은 늘어나고 있으니 어렵지 않게 그들의 시작점을 찾을 수 있다.  


요즘 방(탄소년단에 스)며 들고 있는 와중 2013년의 방탄 로그를 몇 개 보았다. 8년 전의 그들은 참 평범했다. 흑역사가 되어버린 그 시절 유행하던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으로 더듬더듬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진은 몸이 좋지 않아서 몸 관리를 잘 하고 시간이 나면 요리를 해야겠다고 했고, 친구를 만나서 좋다고 했다. 알엠은 회사로부터 랩을 그리 잘하는 편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오기로 작업에 몰두해서 보여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모두들 평범한 연습생 같아 보였고, 경직되어 있었고 어딘가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열심히 해야지'라는 말이 거의 매 영상마다 들렸다. 


이렇게 사람들의 시작을 찾기 시작한 것은 애정에 기인한 행동이었다. '아 이 멋진 사람들은 시작도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하고. 그런데 멋진 시작은 없었다. (물론 사랑스럽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시작은 작고 초라했다. 간혹 흑역사 수준의 시작을 볼 때는 흑역사를 발굴해 내는 악플러가 할만한 행동 같아 왠지 떳떳하지 못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런 작고 초라한 누군가의 시작이 위로가 되고 자극이 되었다. 


흔히들 성공한 사람들은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상상하지 못했다'라는 말을 하고는 하지만 솔직히 사람들은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시작을 내 눈으로 보고 나면, 과거의 그들은 진심으로 상상하지 못했겠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을 받아들인 후에는 나의 찌질한 시작도 나중에는 무언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용기가 생긴다. 성공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이 시작보다는 나은 무언가를 만들 수 있겠다는 희망에 위로도 받는다. 


단지 위로만 받는 것은 아니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자극이 되기도 한다. 시작은 초라해도 그걸 멋지게 만드는 것은 결국 성실함과 근면함이라는 것. 아무도 모르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것을 쌓아나가는 시간의 힘 같은 것. 같은 시작으로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꾸준히 하는 것이 결국에는 답이라는 걸 느낀다. 평범한 시작이었더라도 그만두는 사람은 없었다. 몇 년, 몇 개월이 되었던 계속해서 무언가를 한 사람만이 자신만의 특별함을 찾아내더라. 이렇게 누군가의 시작은 내게 견디라고 말한다. 


무언가 시작하는 나는 늘 어색하고 찌질하다. 그럴 때면 닮고 싶은 사람들의 시작을 본다. 그 시작을 견뎌낸 사람만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마음속에 새긴다. 초라한 시작이 없으면 멋진 성장도 없으니까. 내가 흑역사가 없는 사람보다는 흑역사가 좀 있더라도 더 많은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찌질함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 목요일의 글쓰기도 아직은 초라하지만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 지금보다는 나은 글을 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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