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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리 May 13. 2023

한 번은 쉽지, 두 번이 어려워

시작보다 중요한 것 

지난주 친구와 데이비드 슈리글리 전에 다녀왔다. 슈리글리는 소셜 미디어에서 인기가 참 많은 작가다. 나 또한 인스타그램에서 위트 있는 작품을 보고 전시가 궁금했던 터라 친구가 전시를 보러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바로 이곳은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디자인을 전공한 친구라 혼자 보는 것보다 색다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전시장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사람도 작품도 많았다. 직관적이고 위트 있는 표현 덕분에 즉각적으로 미소를 지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친구 마음에도 들려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왜, 사람들이 추상화 그림을 보면 '이건 나도 그리겠다~'라고 하잖아. 이런 심플한 작품들도 마찬가지고. 근데 이런 그림은 한 번 그릴 수 있어도, 계속 그리는 건 어렵다? 누가 뭐라든 이 스타일을 계속 지속하는 건 용기인 거지."  누가 나를 한 대 툭 치고 간 것 같았다.


위트 있고 심플한 그림에 미소를 지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친구 눈에는 너무 대중적인 작품들이 많다며 마음에 안 들어 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스멀스멀하고 있던  게 민망해지는 말이었다. 무엇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외부의 평가와 무관하게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할까? 어쩌면 우리는 화가의 그림 실력보다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림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림 자체보다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을지가 자꾸 궁금해졌다. 


생각해 보면 창작의 영역에서는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라는 명제가 종종 뒤집힌다. 특히 사람들에게 평가받는 자리에서는 한 번이 제일 쉽다. 평가가 좋은 극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작가에게 두 번째, 세 번째..는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하겠다는 마음 하나가 그 어려운 것을 깨는 도구겠지. '이건 나도 그리겠다!'를 말해 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어려운 것을 도전해 본 적이 있나 되돌아보게 되는 하루였다. 언젠가 어려운 두 번째 시도를 하고 싶은 날이 오면 슈리글리의 그림을 떠올려야지. 이 날의 대화를 떠올리며 작고도 큰 용기를 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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