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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리 Mar 12. 2023

즐거운 괴로움

요즘 싫으면서도 좋은 게 있다. 바로 근육통이다. 다시 운동 횟수를 늘리면서 매일 근육통도 심해지고 있다. 얼마 전 테니스를 친 다음 날에는 오른쪽 팔이 아파서 잠에서 깼다. 무수한 알람과 햇빛도 깨우지 못하는 나를 깨우는 근육통이라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씨익 웃게 된다. 오히려 좋아! 정말 오랜만에 데드리프트를 하고 엉덩이와 허벅지가 아파서 어기적 어기적 걸으면서도 하루 종일 기분은 좋았다. 분명 아프고 피곤한데 신이 난다. 아프다고 징징대면서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대학생 때 용돈벌이 겸 기자단 활동을 했다. 기자라기보다는 매달 글을 1-2편 쓰면 글 한 개당 몇 만 원을 주는 소일거리에 가까웠지만 마감일이 되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마감은 해야겠는데 마음에 드는 글은 잘 써지지 않아 노트북 앞에서 괴로워하는 걸 보고 남자친구는 내가 글쓰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1년 반 넘게 계속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왜 힘들어하면서 계속해? 차라리 과외를 하는 게 낫지 않아?"라고 물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글을 쓰는 것이 괴로우면서 즐겁구나,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 같다. 분명 괴로운 것은 맞다. 마감일이 다가오면 밥을 먹으면서도, 친구들과 놀면서도 마음은 편하지 않다. 그러다 마침내 마감 직전이 되면 쫄깃한 심장으로 아무 말이나 써 내려간다. 그렇게 쓴 글이 마음에 들 수는 없는 법. 비루한 실력을 마주하며 고치고, 고쳐도 좋지 않은 글을 보며 조금 시무룩해졌다가, 마감을 화력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이 일련의 과정 동안 분명 마음은 편하지 않다. 그렇지만 즐겁다. 마감을 하고 나면 또 다음 마감이 기다려진다. 다음 달에도 머리를 싸매고 실력에 실망하고 쓸 말이 없다며 징징대겠지만 그럼에도 마감 덕분에 글 다운 글을 쓰려고 노력하니까. 뭐라도 쓰니까 좋았다. 허접한 내용이라도 써나가려 갈 때면 즐거웠고 좀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 낑낑대는 마음이 드는 것도 좋았다. 쓰다 보면 언젠가 1mm 정도는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희망도 섞여 있었다. 물론 마감 후의 짜릿한 맥주 한 잔은 그중에 제일이었다. 그래서 기꺼이 괴로운 마감의 굴레로 스스로 들어갔다. 큰 매체에 쓰는 글도 중요한 글도 아니었지만 이 경험 덕분에 즐거운 괴로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기꺼이 괴로워하고 싶은 마음엔 잘하고 싶은 마음도 분명 섞여 있는 것 같다. 근육통을 반복하며 근육이 커지는 몸의 원리만큼 만사가 힘든 만큼 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꺼이 괴로워하며 성장하고 싶다. 꼭 성장하지 않더라도 즐거운 괴로움이라면 환영이다.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아도 과정 자체가 즐거운 일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앞으로도 즐겁게 괴로워할 날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글쓰기 연습을 시작하기로 한다. 기꺼이, 그리고 즐겁게 괴로워하기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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