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만난 버스커
한참 밸런스 게임이 유행일 시절 누군가 물었다.
“음악 없는 여행 vs 사진 없는 여행?!”
한 장의 사진도 남길 수 없는 여행과 어떤 음악도 들을 수 없는 여행이라니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치열한 고민 끝에 나는 '사진 없는 여행'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번 런던 여행에서 다시 한번 더 제대로 찾을 수 있었다.
12월의 런던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해 특별한 걸 하지 않고 걸어만 다녀도 축제 분위기가 났다. 반짝이는 전구들과 예쁜 장식들, 들뜬 사람들 덕분에 도시 전체가 큰 크리스마스트리가 된 느낌이었다.
여느 유럽 도시들이 그렇듯 길거리 공연자들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코벤트가든에서는 스릴 넘치는 묘기를 보이는 거리공연자가 아이들의 환호를 받고 있고 곳곳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도 있었다.
그렇게 걷다가 잠시 멈추어 공연을 보고 또 걷고 하다 보니 어느새 피카딜리 서커스였다. 또 광장 쪽에서 노랫소리가 들려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그런데 노래를 너무 잘하잖아? 원래 버스킹은 아마추어의 맛과 거리 감성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기에는 프로라고 느껴질 만큼의 노래 실력이었다. 감탄하며 한참을 듣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듣고 있자니 버스커의 표정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진심으로 행복에 가득 찬 얼굴. 노래에 흠뻑 빠져 행복해하는 표정을 정말 오랜만에 봤구나 싶었다. 여기서 처음 하는 공연인가? 싶을 정도의 눈빛이었는데 알고 보니 런던에서 버스킹을 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고 한다. 공연 후반부 즈음 자신은 7년째 런던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데, 얼마 전 코로나로 인해서 거리 공연이 불가능한 때 얼마나 막막했었는지 이야기하며 노래를 할 수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보통 숙련된 거리공연자들은 공연을 잘하는 만큼 다소 능글거리는 멘트를 치거나 하는데 거리의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고맙다고 말하고 노래하는 게 정말 순수해 보였다. 내가 찌든 사람처럼 느껴질 만큼. 무언가를 좋아하는 진심 어린 마음과 눈빛으로 부르는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증명하듯 사람들은 더 계속 몰려들었다.
그렇게 거의 30분이 넘도록 공연이 끝나갈 때까지 노래를 들었고 그의 팬이 되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이름을 찾아 팔로우하고 그 이후 종종 그의 유튜브에서 자작곡이나 버스킹 영상을 보곤 한다.
길거리 버스킹이든, 어떤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든 간에 음악은 오로지 그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여행에서의 음악은 잠시 현실을 떠나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순수함, 감성적인 면을 꺼내어주기도 하고 음악이 그 순간의 배경음악이 되어 마치 내가 영화의 한 순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음악은 그런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이런 마법 같은 순간들 때문에 나는 또다시 사진과 음악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음악을 선택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