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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리 Apr 28. 2024

2주 동안 런던에 간다

연말의 런던 여행 일기 01

오늘부터 2주 동안 런던에 간다.

영국에 큰 로망이 있지는 않았다. 대학생 때는 물가가 비싸다는 이유로 배낭여행 루트에서 제외했고, 그 이후 몇 번 더 유럽에 여행을 가면서도 이상하게도 후보지가 되지는 않았던 곳이다. 그러던 내가 런던에 가게 된 이유는 짝꿍이 있어서. 어찌어찌 해 런던에 공부를 하러 간 그 덕분에 이번 연말에는 휴가를 털어서 런던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 이후 연말 전에 프로젝트를 모두 끝내고 가기 위해 같이 일하는 팀원들에게 "저 연말에 2주 휴가 갑니다!"라고 몇 개월동안 말하고 다녔다. 그렇지만 직장인의 휴가는 늘 쉽지만은 않은 법. 프로젝트 마감일이 밀리고 밀려 출국 당일이 되고 말았다. 밤 12시 비행기인데 낮 12시에도 현장 세팅이 끝나지 않는 상황이라니. 게다가 새롭게 해 보는 프로젝트였기에 혹시 더 밀리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무사히 프로젝트는 오픈을 하고, 공항에 왔다.

여행을 사랑해도 긴 비행은 늘 힘들다. 환승할 암스테르담까지만 14시간이 걸린단다. 전쟁 때문에 유럽행 비행기가 요즘은 더 오래 걸린다고 하던데 그것 때문인가. 게다가 미리 체크인을 안 했더니 중간에 끼인 자석이 걸렸다. 이럴 때면 비즈니스석을 편하게 타고 다니는 날이 언젠가 오긴 할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래도 그 사이 비행을 견디는 팁은 늘어서 목베개와 안대를 챙겨 왔다. 밤을 새운 덕분에 잠도 잘 왔다. 이래저래 14시간을 견디고 드디어 풀려났다. 이제 남은 건 환승하고 진짜로 런던에 가는 비행기에 타는 것. 아침에도 각종 국적의 관광객들로 붐비는 암스테르담 공항을 보니 이제야 여행을 왔다는 게 조금은 실감이 난다. 나 진짜 런던에 가는구나!


설렘도 잠시, 보기 좋게 찌그러진 캐리어를 마주했다. 항공사 직원에게 캐리어를 들고 가 일부 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봤지만 완전히 깨진 게 아니라 찌그러지기만 해서 (?) 보상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다시 따지기에는 너무 피곤해서 그냥 포기하고 공항을 나섰다.



공항에서 설레고 어딘가 긴장되고 어색하기도 한 3개월 만의 재회를 하고, 기숙사가 있는 타워브릿지 쪽으로 향했다. 날씨가 안 좋기로 유명한 영국이었지만 타위브릿지 색깔 같은 파아란 하늘색의 하늘과 하얀 구름들이 날 반겨줬다. '그림 같다'는 상투적인 말투가 어울리는 하늘이었다. 


그렇게 런던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점심 먹으러 가기.


멀리 갈 에너지는 없으니 숙소 근처에서 대강 평이 좋은 카페로 향했다. 멀리서도 현지인들이 줄을 선 게 보인다. 느낌이 좋구먼. 메뉴를 3개나 시키고 테라스에 앉았다. 유럽은 어딜 가나 테라스가 많아서 좋다. 테라스를 낭만으로 생각하게 된 것도 유럽배낭여행을 할 때 만난 테라스들 덕분이기도 했다. -11도였던 한국과 달리 겨울에도 11도라니. 기분 좋은 바람과 함께 뜨거운 커피를 홀짝였다.

그런 평화도 잠시 우리의 자리 옆을 비둘기가 스쳐 지나갔다. 참고로 내게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걸 꼽으라면 그게 바로 비둘기다. 유럽의 비둘기를 내가 잊고 있었다. 서울보다도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아이들. 그들을 발견하고 나니 더 이상 평화롭게 식사를 할 수 없었다. 몸의 온 신경이 비둘기가 가까이 다가오는지에만 곤두서있는 걸. 아아 이제 2주 동안 테라스는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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