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글
육아휴직 후 우리 가족이 해외에 나온 지 어느새 한 해하고도 4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아이들은 콜롬비아, 페루, 멕시코 3개국에서, 3개의 학교를 옮겨 다녔다. 여행 일정에 따라 짧게는 2달, 길게는 한 학기의 학교생활을 했다. 사실 말도 통하지 않은 새로운 환경에서 생활하는 건 어른들에게도 힘든 일. 하물며 6살, 8살 아이들에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학교 생활을 잘 했고 헤어질 때마다 이별을 아쉬워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들을 기억한다. 첫째는 1년 전 헤어진 콜롬비아 친구들과 아직도 연락할 정도다. 그때보다 훨씬 유창한 스페인어로.
우리가 현재 거주하는 곳은 멕시코 와하카 주(Oaxaca). 와하카 주는 맛과 문화의 도시로 한국으로 치면 ‘전주’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다. 6개월 이상 장기 거주를 계획하고 교육, 물가, 치안, 기후, 자연환경 등을 고려해, 멕시코 북쪽 치와와에서 남쪽 유카탄 반도까지 직접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조건에 부합하는 와하카 주와 만나게 되어 7개월째 살고 있다.
도착하자마자 1순위로 찾은 건 아이들 학교. 어차피 귀국하면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테니 여기서는 하고 싶은 거 실컷 하라는 생각으로 공부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학교를 찾았다. 현지인들에게 물어 방문할 학교 리스트를 작성하고, 약속시간을 잡았다. 하지만, 멕시코 역시 좋은 학교의 기준이 좋은 상위학교 진학인가 보다. 대부분 학교가 아이들 얼마나 열심히 교육시키는지 강조하더라. 그렇게 사나흘 열심히 돌아다니다가 풀이 죽어 있을 즈음, 우연히 하교시간이라서 문을 열어놓은 학교를 방문했는데, 아이들이 선생님들과 함께 춤추고, 공차고 즐겁게 노는 모습에 우리 가족 모두 매료되었다. 아이들은 다음 날부터 이 학교에 등교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 학기 남미 친구들과 어울리니, 어느새 그들 문화에 스며들어, 우리 아이들도 축구와 댄스에 많이 익숙해졌다. 아빠를 닮아 뻣뻣한 딸도 이번 2학년 쫑파티에 급우와 함께 한 달여간 준비한 멋진 댄스를 선보였다. 리듬감 있는 아들은 음악만 나오면 몸을 흔들어 댄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 등교 후, 평온함을 찾는다. 커피숍에서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헬스장 가서 운동을 하거나, 문화센터에 가서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문화 강좌를 듣는다. 아빠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라틴댄스와 기타를 배운다.
아이들과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아이들 수영 가르치는 것이다. 평생 또 올까 싶어서 큰 맘먹고 카리브해, 칸쿤 해변, 세노테, 워터파크에 데리고 다녔지만, 아이들은 해변에서 모래놀이만 했다. 그래서 와하카에 오자마자 수영 강습을 시켰고, 6개월이 지난 지금은 수영 비슷하게 한다. 다음 여행지 중 하나인 태국이 기대되는 이유다.
주말이 되면, 아이들은 문화센터에 가서, 체스와 그리기를 배운다. 체스에 대해 문외한이던 아이들이 게임 규칙을 알게 되고, 가끔 게임에 이겨 성취감과 즐거움을 느낄 때면 여기 온 보람을 느낀다..
중남미에 와서 우리 식생활은 한국에 있을 때 비해 많이 달라졌다. 한국에서는 비싸서 엄두를 못 내던 과일과 고기를 많이 먹는다. 냉장고에는 망고, 멜론, 바나나, 파인애플, 체리, 아보카도 등 열대과일이 항상 가득하고, 끼니때마다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한다. 물론 중남미의 맛있는 커피도 항상 함께 한다.
가끔은 로또 1등도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먹고 싶은 거 먹고, 배우고 싶은 거 배우며, 하고 싶은 거 하는 생활이 가능해서다. 이런 생활을 하려면 한국에서는 얼마가 들까? 여기서는 우리 4인 가족의 렌트비, 교육비, 생활비 해도 총 200만 원이 안 든다.(단, 우리는 외식을 한 달에 두세 번 한다. 그것도 피자 정도, 아내가 음식을 기가 막히게 하거든) 한국에서 이 정도 삶을 즐기려면 배는 더 들 것 같다. 한국에서 육아휴직을 쓰는 것도 좋겠지만 아이들에게 풍족한 음식과 새로운 언어, 양질의 교육도 받을 수 있는 해외 체험의 기회를 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와하카 도착 후 집, 학교, 수영장, 문화센터 등을 찾고, 등교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물론 운이 따르기도 했지만, 나라를 옮길 때마다, 직접 발품을 팔아 알아봐서인지, 요령이 생겼다.
지금도 많이 어설프지만, 처음 콜롬비아에 갔을 때는 말도 안 통했을 뿐 아니라, 정보가 없어서 많이 고생했다. 사실 외국에서 아이들 학교를 다니는 경우는 대부분 해외지사 근무를 하거나, 부모가 학생비자로 와서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기존 담당자로부터 정보를 받거나, 유학원을 통해서 전부 처리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는지 조차 몰랐다. 그래서 시행착오도 많이 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우리처럼 아이들을 현지 학교에 보내고 싶은 분들이 계실 거다. 하지만 경제적 문제, 언어 문제, 입학 수속 등 신경 쓸 부분이 많아서 엄두도 못내고, 그냥 부러워만 하시는 분들도 분명 계시겠지. 하지만 외벌이에 스페인어는 1도 몰랐던 우리 부부도 문제없이 아이들 학교 잘 보내며 지내고 있다. 육아휴직 후 해외생활에 도전하시는 분들이 우리들이 했던 시행착오를 안 했으면 한다. 그래서 그만큼 줄인 시간과 비용으로 아이들과 더 좋은 추억을 만드는데 우리 글이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