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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파 Aug 06. 2018

네번째 글_마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칸쿤, 난생 처음 집에 밤손님이 들다.

콜롬비아, 페루를 거쳐 멕시코에서 지낸지 한 해 하고도 5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중남미 주택가를 걷다보면 미세먼지 하나 없는 푸른하늘, 햇살 좋은 날이 너무 많다. 한국에서는 미세먼지 때문에 항상 문을 꼭꼭 닫고 살아서인지, 이런 햇살 좋은 날이면 좋은 기운을 집 안으로 들이고 싶어서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열어 둔다. 그런데 이 곳 사람들은 창문을 닫아놓을 뿐 아니라, 커튼도 쳐놓는다.


난 그저 남미 사람들이 사생활을 중요시 하는구나 하고 무심히 지나쳤다. 하지만 칸쿤에서 겪은 일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카리브해에 인접한 Playa del Carmen, 2017년 11월 더운 어느 날. 남미인들이 창문, 커튼을 다 닫고 지내니, 우리도 닫고 지내자는 내 제안을 남편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남미인들은 남미인들이고 나는 나야. 난 이 햇살 좋은 날 답답하게 지내고 싶지 않아" 그래서 우린 항상 햇살이 잘 들도록 취침시간을 제외하고, 창문과 커튼을 활짝 열고 지냈다.


여느 때처럼 무더운 저녁, 어김없이 침실에 방충망만 닫아놓고 잠이 들었다. 나름 방충망 열리는 문틈에 그 길이만큼 막대기를 놓아 도둑에도 대비했다.


새벽 2시쯤 남편의 고함에 놀라서 잠이 깼다. 도둑이 침실 창문을 열고 들어오려다, 인기척에 깨어난 남편과 창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도둑은 놀라서 올라왔던 창 밖 2층 발코니를 내려갔고, 남편은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게 창문을 닫아 버렸다. 남편과 난 다행이라며 놀란 가슴을 추스리며 다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놀이공원 예약을 했던 우리는 외출을 할려고 부산을 떨었다. “어! 지갑이 없다. 내 것도. 휴대폰도 없다.” 어제 도둑은 들어오다가 만난게 아닌, 털고 나가는 길에 마주친거다. 다행히 그 날 지불해야하는 패키지 여행의 잔금, 카메라, 컴퓨터는 놔두고, 가방에 있는 현금과 남편휴대폰이 도난품 전부였다.


의문이 들었다. 분명 창틀에 그 길이만큼 되는 막대가 있었는데 어떻게 집에 도둑이 들어 올 수 있었지? 남편이 직접 어제 상황을 재현해 본다. 방충망이 휘어지면서 마른체격의 남자 한명은 거뜬이 들어 올 수 있는 틈이 생긴다.


사건 발생 이틀 후, 도로 맞은 편 이웃집 남자를 만났다. 순간 내 심장은 요동치며 내 몸은 얼어버렸다. 이틀 전 새벽 그 도둑이다. 정신을 차리고 남편에게 "저 사람 이예요! 저 사람이 이틀 전 우리집 도둑 이라구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허겁지겁 달려와 내가 가리킨 남자를 보더니 "도둑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모르겠어" 그 날 도둑 얼굴을 더 가까이 본 사람은 남편이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남편말이 얄밉기만 했다.


2017년 11월 우리 삶에 처음으로 마주한 밤손님. 하지만 우리는 가족 모두 무사한 걸로 위안을 삼고 도난신고를 하지 않았다. 집집마다 닫혀진 창문과 커튼이 개인 사생활 보호도 있지만, 도둑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함이었음을 깨달았다.

사건 이후 무심히 넘겼던, 멕시코 주택가 골목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vecinos unidos contra la delincuencia. cuidado. te estamos vigilando. 이웃분들 범죄에 대항해 합심해요. (도둑놈아) 조심해라. 너 보고있다."


그 나라가 아직 초행이라면, 그 사람들 하는대로 따라하자. 마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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