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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파 Aug 14. 2018

여섯 번째 글_ 집 구하기@Tabio, Colombia

눈 뜨고 코 베이기 쉬운 나홀로 해외 체류

호구
1) 범의 아가리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처지나 형편을 이르는 말.
2)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출처: 국립어학원)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곳에 처음 발을 딛게 되면 새로운 곳에 대한 적당한 긴장감과 함께 기분좋은 두근거림을 느낀다. 그 두근거림이 좋은 추억으로 이어지면 좋지만, 이런 들뜬 여행객의 주머니를 호시탐탐 노리는 이들로 여행이 엉망이 되기도 한다. 단기 여행의 경우에도 바가지를 쓰게 되면, 여행 기분을 망치기 쉬운데, 장기가 되면 기분을 망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언어가 서툴고 현지 사정에 어두운 외국인임을 이용해서, 집 렌탈 계약서를 주인에게 너무 유리하게 작성한다든지, 인터넷으로 직접 갱신이 가능한 비자를 발급대행해주는데 인당 60~100만원(콜롬비아 현지 마트에서 8시간 근무시 한달 급여 30만원)을 요구하기도 한다. 개인간 분쟁 해결이 잘 안되서, 법적인 해결을 해야 할 때,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을 악용해서, 비자가 만료되길 기다리며 경찰을 부르던지 말던지 마음대로 하라는 막가파도 있다. 처음에는 대사관에서 도와주지 않을까 싶었지만, 도움을 요청하면 대부분 그런 일은 당사자간 해결하라며 슬그머니 발을 빼기 일수다.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는게 가장 좋지만, 세상사 내 마음 같지 않다.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건, 현지에서 통용되는 기준점이 어느 수준인지 아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단순히 GDP만 고려해서, 물가를 환산할 수는 없지만 (2018년 콜롬비아 1인당 GDP가 6,581불이고, 한국이 32,774불) 한국에 비해, 싸다고 돈을 지불하다 보면, 어느 새, 사람들에게 ‘잘 사는 나라에서 왔으니, 조금 더 비싸게 받아도 괜찮겠지’라고 호구로 인식되어 버린다.
 
목적지가 콜롬비아 메데진으로 정해지고 학교, 집 등에 관해 기준점이 될 세부 정보를 찾았다. 하지만, 남미에서 한인이 가장 적은 탓인지(2013년 코트라 자료 400여명), 한국어로 된 정보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하늘도 이런 내 상황을 안타깝게 보았는지, 가끔 엘레베이터에서 만나 인사를 주고받던 이웃을 통해, 또는 스페인 유학 경험이 있던 사촌 누이를 통해, 콜롬비아 지인을 소개시켜 주었다. 온 세상 사람들을 6명만 거치면 다 알 수 있다는 ‘*6단계 분리’를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웃고 넘겼는데, 무시만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를 내 주변에서 소개받았으니 말이다. 이웃은 커피 수입 및 도소매 업무로 중남미 출장 경험이 많았다. 다행히 메데진은 콜롬비아 대표 커피 산지 중 하나. 보고타와 메데진에 사는 이를 한 명씩 소개 받았다.
 
*‘6단계 분리: 1967년 미국 하버드대 스탠리 밀그램 교수가 주장한 이론으로 6명만 거치면 서로 서로 모두 연결된다는 내용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우연히 네이버 카페 ‘남미사랑’을 통해 보고타 근교 Tabio라는 마을에서 한인민박을 운영하는 분을 알게 되었다. 기재된 전화번호로 연락드렸는데, 사소한 질문에도 사장님은 시원시원하게 답변주셨다. 운영하시는 블로그에 올라온 목가적 사진들은 주말마다 캠핑으로 자연을 쫓던 내 마음을 단번에 사로 잡았다. 지구 반대편에 그것도 수도 외곽에 사는 그분의 이야기가 궁금했던 우리는 예정에 없던 Tabio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매년 업무로 한두번 해외출장 경험이 있어서, 이번 해외 장기체류에도 처음에는 그리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출국 몇 일 전부터 불안감이 엄습했다. 출장 때와 달리, 아내와 아이들을 동반해야 하는 점. 20시간 가까운 거리를 비행경험 없는 6살, 8살 아이들이 잘 견딜 수 있을지도 걱정되었다.(인천에서 달라스까지 14시간, 달라스에서 보고타까지 5시간, 총 19시간 비행). 게다가 환승시간은 어찌나 짧은지, 출입국 절차가 까다로운 미국에서 환승시 최소 2시간 이상 잡아야 하는데 우리 비행기는 환승시간이 1시간 40분에 불과했다. 실제 탑승시, 이민국 및 관세청 검사에 시간을 너무 소요해서, 비행기 출발이 30분 이상 지연되었다.
 
*고고파의 생생 정보
불법체류에 대해 까다로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여서인지, 환승에도 불구, 미국 이민국 및 관세청은 검사를 까다롭게 했다. 그 바람에 비행기 이륙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울 것 같았던 나는 해당 항공사 창구로 달려가서, 기다려달라고 요청했다. 그 승무원은 해당 gate에 연락해서, 이륙을 늦췄다. 혹시나 환승시간이 짧은 분들은 이런 대안도 염두에 두자.
 
입국할 때도 불안했다. 편도 항공권으로는 입국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 학생비자로 바꿀 것을 대비해서 여권에 특정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둥. 하지만, 편도항공편만 갖고 입국한 우리 가족을 이민국 직원은 ‘Bienvenidos(환영합니다.)라 말하며 기분좋게 여권에 입국 확인 도장을 찍어줬다.
 
*고고파의 생생 정보
페루에서 멕시코행 비행기 티켓 발권시 항공사에서는 귀국편 탑승권 구매여부를 확인했다. 멕시코 여행 후 미국으로 이동할 예정이라 귀국편 항공권이 없었던 우리는 이런 상황을 항공사 직원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페루 항공사는 귀국편 항공권이 없으면, 탑승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비행기 탑승시간이 임박한 우리는 마음이 급했다. 책임자를 요청했고, 그와 다시 협상을 했다. 다행히 미국입국시 필요한 ESTA를 가지고 있던 우리가 멕시코에 불법체류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한 책임자는 우리 탑승을 허가했다. 멕시코 이민국 담당자가 아닌 항공사에서 귀국편 탑승권을 요구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담당자와 말이 통하지 않으면 포기하지 말고, 그 상사를 찾아, 다시 확인해보자.
 
그렇게 우리는 밤 늦게 보고타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민박집 사장님과 ‘알리리오’라는 현지인 할아버지가 마중 나오셨다. 도착시간이 밤 11시라서 통화가 안되면 공항에서 밤 새야 하나 하고 불안했는데, 출국장에 나가자마자 만나게 되니, 어찌나 반갑던지. 그렇게 우리는 민박집네 차를 타고, Tabio 숙소로 향했다. 민박 사장님은 남미 온지 1년 남짓 되었는데, 페루에서 구매한 차량으로 여행하면서, 우리처럼 장기거주 할 곳을 찾다가 이곳 타비오에 정착하게 되셨다나. 이런 시골에서 배추, 무 농사지으면서 한인 민박집을 차린 추진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라.
우리가 스페인어는 1도 모르고, 남미는 처음이라는 이야기를 들으신 사장님은 남미가 많이 위험하며, 특히 한인 교포를 조심하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남미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보통 현지에 사는 교포에 의지를 많이 하는데, 이를 이용한 교포에게 사기를 많이 당한다. 일부 교포는 한국에서 죄를 짓고, 해외로 도피 이민을 온 사람이 많단다.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귀국할 수 없어서, 남미에 체류하게 되었고, 현지인 대상으로는 사기치기 어려우니, 해외에 막 도착한 우리처럼 어리버리한 자국민을 대상으로 사기치는 거란다. 조심해야 할 이름들을 알려줬다. 나는 달리는 차 안에서 그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며, 수첩에 이름을 적었다.
 
흙먼지를 날리며, 시골길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대문도 리모컨으로 열리고, 어둠에서 봐도, 블로그에서 봤던 것처럼 집이 멋드러졌다. 창도 크고, 로망이던 벽난로도 있는, 꼭 영화에 나오는 집 같다. 여장을 풀고 있으니, 사장님이 배고플 거라며, 미역국에 밥을 말아, 직접 키운 무채와 함께 내주시는데, 평소라면 거들떠 보지 않았을 그 밥상이 1년하고도 몇개월이 지난 지금도 꿀 맛으로 기억된다. 오랜 비행으로 인한 피곤함, 식구들을 챙기느라 느꼈던 긴장감이 풀려서였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한국의 어느 캠핑장에서의 저녁처럼 기분좋게 풀냄새 가득한 하룻밤을 보냈다. 드디어 우리는 남미, 콜롬비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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