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의 연속, 홍콩인들을 응원합니다
이 영화를 단순히 홍콩 풍의 무술영화라고 치부한다면, 영화와 홍콩 사람들에 대한 모욕일 것이다!
나는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면서, 중국(본토) 입장에서의 대만과 홍콩(중국의 '소속지역'으로서의 대만과 홍콩)을 학습했고 그게 맞는 줄 알았다.
졸업 이후 대만 친구와 홍콩 친구가 생기면서 비로소 중국(본토) 와 대만, 그리고 홍콩의 입장과 관점이 얼마나 첨예하게 대립하고 갈등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이제라도 깨달은 게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중문과에서는 내가 받은 관점의 교육(중국 본토 입장의 교육)이 행해질테고, 해마다 한국에서 쏟아져나오는 중문과 졸업생이 예전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하면 대만과 홍콩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라도 대만과 홍콩의 입장을 많이 전달하려고 한다. 소소하게는 대만/홍콩 기사 번역이나 퍼나르기부터, 주위에 조금이라도 귀 기울이는 사람에게는 대만이나 홍콩의 최근 입장에 대하여 설명해주려고 한다.
왜 남의 나라에 관심이냐고? 한국이 일제 식민지였을 시절에도 그 사실이 해외에 퍼질 수 있었던 것 역시, 동양의 작은 나라에 관심을 가져준 외국인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보다 최근 사건으로는 광주 민주화 운동도, 지극히 한국 내의 사건이지만, 외국인들의 관심과 더 나아가 외국인들이 한국정부를 향해 쏟아낸 비난이 그 당시 군부독재 정권을 자극하는 데에 한 몫 했으리라.
영화 리뷰를 쓴답시고 썰이 길었다. 아무튼, 중국(본토; 영어로는 Mainland China라고 하고, 대만이나 홍콩에서는 '중국대륙'이라고 부른다. 사실 본토라는 단어도 중국중심적인 단어이니, 이하 글에서는 중국대륙이라고 쓰겠다), 즉 중국대륙에서 나오는 기사 위주로 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영화 '엽문'은 그리 어렵지 않게 홍콩의 슬픈 역사를 다뤄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1편에서는 중국 남부 광둥성 지방에 살던 엽문이 일제 식민지 시절 핍박을 받다가 홍콩으로 넘어가는 과정까지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린다. 단순히 '무술 잘하는 엽문'의 영화로 해석하면, 이 영화의 절반 이상을 놓치는 것이다. 1편은 '무술 잘하는 엽문'을 모티브 삼아, 일제 식민지 하에서 힘들었던 중국 백성들을 그렸다.
2편과 3편에서는 홍콩이 일제로부터는 독립하였지만, 곧 영국의 식민지가 된 상황에서의 삶이 그려진다. 술집, 마약과 같은 어둠의 일자리 외에는 제대로 돈을 벌기 어려운 현실, 높은 자리는 모두 영국인이 차지하고, 영국인만 우선시되던 시절의 삶... 영국인이 아무리 잘못 해도 홍콩인이 처벌 받는 부조리한 삶. 그런 상황에서의 엽문이었기 때문에 더 처절하고 더 아름다웠다.
4편에서는, 이런 홍콩을 떠나서 더 잘 살아보겠다고 미국에 갔으나, 미국에서도 차이나타운에 모여살면서, 미국인들의 부당한 대우에 찍소리 못하고 사는 홍콩 사람들이 나온다. 이들에게 국가는 무엇이고 민족은 무엇일까? 이들의 '동양적인 외모'는 곧 낙인이었다. 제 아무리 미국인처럼 살려고 애써도,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어도, 조금만 약점을 잡히면 홍콩으로 쫃겨난다. 억울하게 맞아도 그저 굽신거리고 살아야 하는 2등 시민이다.
이렇듯, 엽문은 큰 틀에서는 '뛰어난 무술인, 엽문(견자단)'을 주인공으로 하는 무술영화같지만, 그 영화의 배경을 매번 바꾸면서 홍콩의 가슴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 점에서 영화의 4편 모두 가슴에 와닿았다.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이 영화 4편 모두 강추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매력포인트 하나 더. 엽문은 싸움도 겁나 잘하는데 마초가 아니라 집에서는 한없이 다정다감한 사랑꾼이다. 아내에게 정말 잘하고, 아내를 항상 위한다. 3편에서는 눈물찡한 얘기도 있는데 스포일러가 될까봐 생략... 보통의 한국 사극 같은데 보면, 아니 실제 역사적으로도 계백이 전투에 나가기 전에 온 가족을 살해했다고 할 정도로 도대체가... 제정신이야? 남의 손에 안 죽게 하려고 그랬다는데 그게 말인지 방구인지... 그런 걱정이라면 애당초 장군이 되지 말던가. 가족의 목숨을 왜 지 맘대로... 아 갑자기 화난다.
암튼 엽문은 절대로 계백같은 사람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1편에서는 아들을 잘 안 봐줬다고 아내에게 꾸중을 듣기도 하는데, 과거 한국 드라마였다면 '어허! 사내대장부가 바깥일하는데 애까지 돌보라니!' 대사 나올 법도 한데. 엽문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너무 좋아 >.<
#. 덧 1. 최근 홍콩의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친구는 요즘 중국 국가보안법 반대 투쟁중이다) 자신은 홍콩이 중국에 편입되는게 싫어서 투쟁하는데, 자신의 할머니 시대에는 홍콩이 영국에 편입되는게 싫어서 투쟁했단다. 할머니는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부르고, 자신은 '홍콩인'이라고 부른단다. 둘다 서로를 이해하지만, 이 모순적인 상황이 답답하기만 하단다. 물론 할머니가 원하던 '중국'이 지금의 중국은 아니었겠지...
100여년 이상 제대로 독립되지 못한 홍콩인들의 삶이 안쓰럽다. 그들의 투쟁을 응원한다.
# 덧 2. 이 영화 후기들 보면 '중국 영화'라고들 칭하던데, '중국 영화'와 '홍콩 영화'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리뷰라기엔 뭔가 멀리 온 ㅋ 내 맘대로 리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