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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de Jul 21. 2019

살림 예찬

나를 사랑하고 돌보기 위한 행위, 살.림.

요리나 집안 살림 등의 컨텐츠로 잘 나가는 파워블로거들은 대체적으로 여자가 많았다. 

전통적으로는 으레 여자가 살림을 해왔지만, 현재는 여자들도 사회에서 남자 못지 않게 일을 하고 커리어를 쌓고 있는데, 왜 살림 담당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일까? 사회 속 여자들의 포지션이 많이 달라졌음에도 여전히 워킹맘, 슈퍼우먼이라는 포장된 단어로 은근슬쩍 살림은 여자의 몫이라고 가두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컸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스스로를 '살림을 하지 않는 여자'로 칭하기로 다짐했다.


여성들끼리 모여서 대화하던 중에 꼭 살림 얘기가 나오면, 난 더 오바스럽게 “전 제가 살림 안 해서요” 라며 선을 그엇다. 물론 가족모임이나 혼성모임에 가면 내 몫에 대한 희생은 다른 여성들이 지게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몫은 내가 덜어주어야 할 것이 아니라, 남성 여성 모두 함께 덜어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기에 결코 내가 먼저 나서지 않았다. 많은 눈총을 받더라도, 경계를 허무는 자의 고충이려니 하며 견뎌냈다.


나는 살림 실력이 당연한, 살림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한 여성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이런 내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내 짝꿍은 여성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집안일을 그 누구보다도 잘 했다. 오랜 자취 경력으로 모든 요리와 청소, 살림을 모두 다 했고, 심지어 살림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잘 했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 시키지도 않았다! 내 짝꿍은 본인을 스스로 '주부'라 칭하며, 마트에 갈 때마다 예쁜 식기구를 보고 좋아할 줄 아는 섬세한 살림꾼이었다.


주위에서는 “남여가 바뀌었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나는 “왜 이게 여자 일이죠?” 라며 반문했다. 짝꿍 역시,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라며 명언을 선사하곤 했다.


덕분에 나는 전통적인 여성상처럼 살지 않고 있다. 약 2년 넘게 같이 살고 있는 우리는, 집안일을 적당히 5대5로 나눠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양가에서의 행위도 잘 합의가 된 덕에, 친가나 시가에 가면 철저히 식사를 얻어먹기만 하고 설거지만 대신 해드리고 온다. 양가 부모님 역시 우리를 철저히 손님처럼 대우해주시고, (특히나 며느리를 일꾼처럼 부려먹는 일은) 우리 집에는 절대 없다.


이런 대접을 받다보니, 나도 초기에 공격적이었던 태도를 많이 누그러뜨리게 되었다. 오히려 이제는 뭐라도 더 해드리고 싶어하고 종종 안부 전화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나에게 '넌 여자니까'라는 멍에를 씌워주지 않는 환경 안에서 내가 품었던 칼은 더 이상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칼은 빼앗아야 하는 게 아니라, 쓸 일이 없게 만들어서 스스로 버리도록 해야 한다. 나는 그동안 내 칼을 빼앗으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늘 싸우며 살아왔는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칼을 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나게 되었다.




짝꿍이 마련해준 깨끗한 집에서 짝꿍이 해주는 정갈한 음식을 먹으며, 게다가 '여자'라는 족쇄도 없이 자유롭게 살다보니 수년간 놓치고 있던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그동안 나는 나를 갉아먹는 방식으로 투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살림은 그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한 것인데 말이다. '집사람'이나 '주부', '엄마' 등의 수식어 안에 갇히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특히 나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강한 부모님과 조부모님 슬하에서 자랐기 때문에 오히려 살림=여자의 것. 이라고 단언하는 그들에 대하여 거부감이 커졌고, 과도한 가시를 세웠다.


기존의 전통적인 기혼 여성처럼 되지 않겠다는 강한 일념으로, 나를 학대하는 방법을 선택해왔다. 행여나 요리를 잘 하면 '시집 가서 사랑 받겠네' 따위의 말을 들을까봐, 부엌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고 배우지도 않았다. 그 방법은 우리 부모님이 나를 포기하도록 하는 데에 일조하기는 했으나, 내 스스로에게도 결코 건강한 방식은 아니었다. 


새삼 내 자신에게 미안했다. 내 스스로를 해치며 여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자 투쟁했던 행위는 요리를 비롯한 살림 거부 뿐이 아니었다. 음주와 흡연, 그 밖의 거칠게 놀았던 지난 날들... 그 모든 나를 아프게 했던 투쟁방식에서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칼과 갑옷을 벗고 나니, 그동안 나에게 소홀했던 내가 보인다. 




결혼 후에도 행여나 살림이 내 것이 될까봐 손 대기를 주저했던 내게, '같이 하면 되지'라며 다가와주었던 짝꿍 덕에 이제는 나도 내 주변을 아끼고 내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다. 


내 보금자리, 내 몸에 들어갈 음식, 내 위생... 내가 살림에 좀 더 신경을 쓴다고 해서 내 여성주의적 투쟁이 희미해지고, 이 사회의 여성에 대한 편견을 공고히 하는 것은 아니었다. 살림은 성별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므로, 살림=여자의 것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일 뿐, 그렇다고 내가 나를 살리는 살림의 행위를 거부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남자를 위해 해주는 살림은 거부한다. 많은 여성들이 '여자니까 하는거지'라고 살림을 본인의 성역할로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살림은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 하는 것이지, 여자라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라도 난 내 몸을 사랑하고 나를 돌보는 살림꾼이 되고자 노력중이다. 

그렇지만 여기에 대고 행여라도 '여성스럽네'라고 말하는 사람은 혼꾸녕을 내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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