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찬 바닥에 앉으면 어른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여자는 찬 바닥에 앉으면 안 좋아". 그 이유는 "여자의 건강에 문제가 되어서"가 아니라 "이 다음에 애 낳을 때 안 좋기 때문"이었다. 고로, 할머니나 여자 어르신들은 나에게 방석을 건네고 본인은 찬 바닥에 앉으면서자신은 이미 애를 낳아서 괜찮다고 말하곤 했다. 담배피는 남자에 비해 담배피는 여자가 더 혹독한 비난을 받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담배피는 여자는 "애 생각도 안하는" 파렴치한 (예비)엄마로 질책을 받는것이다.
헌데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아기는 여자의 난자와 남자의 정자가 만나서 잉태되는것인데, 여자의 난자가 건강하지 않다면 남자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런데 남자의 건강상태를 나무라며'너 그러면 이 다음에 아기 건강에 해롭다'는말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난자는 여자가 태어날 때 이미 만들어진 상태라고 한다. 태어날 때 수백만개의 난자를 가지고 태어나며, 살면서 난자의 건강과 질이 서서히 줄어든다고 한다. (난자가 난소에서 잘 자란 뒤일정 기간마다 배출되는 것이 바로 "생리"이다. 임신이 '안' 되서 생리하는 거라고 가르치는 출산 중심의 교육 반대한다!).
한편, 정자는 만들어지기까지 70여일이 걸리며, 약 3개월 이후에 배출될만한 상태가 된다고 한다.
고로, 임신을 하려면 '집중적으로' 건강관리를해야 하는것은 여자보다 남자이다.
여성질환 관련 검사받을 일이 생겨서병원 정보를 찾다가 맘카페에 가입하게 되었다. (산부인과. 왜 산과와 부인과를 합해놓은 것일까? 나는 임신과 관련한 정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인과" 진료가 필요했는데 산부인과에서 산과에 비해 부인과 진료는 완전 찬밥 신세 같았다. 여자가 생산할때 이외에 발생하는 여성질환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다시금 느껴진다. 산부인과. 이름도 마음에 안든다. 남자는 비뇨기과인데 여자는 왜 산부인과람)
어쨋든 맘카페에 여성질환 관련 정보가 한가득이어서 훑어보다보니 점점 정주행하게 되었고, 아이 증상에 대한 다양한 푸념글에서부터 남편욕 시댁욕 등 다양한 글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볼 땐 남편과 대화하며 풀어야 할것 같은 내용들도 상당수가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나는 일일히 댓글 다는 수고를 강행했다. "여기서 푸념하시기보단 남편과 직접 논의하셨으면 좋겠어요.", "아이돌봄 노동을 남편과 배분했으면 좋겠어요. 아이의 반은 남편의 피잖아요", "임신으로 인한 고통을 남편에게도 이야기하시길 추천드려요", "집집마다 사정이 다른데 그러한 아이 케어 문제는 남편과 상의해야 더 답이 잘 나올것 같아요" "출산 직후의 가사도 남편과 상의하세요",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을 남편과 세우셨으면 좋겠어요" 등등..
이후, 대부분의 대댓글이 "남편은 애 문제에 신경도 안 써요"라고 달린 건 정말 충격이었다. 아이는 여자만의 아이가 아니라 여자+남자 힘을 합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쓴다는 것일까. 애초에 여자가 '남자는 이런 거 모르잖아'라고 오해하고 아예 제안조차 안 해봤던 것이 아닐까라고 믿고 싶었다. 만약 얘기를 꺼냈음에도 남자가 정말 신경을 안 쓴다면 그건 두 말할 것 없이 이혼해야하지 않나? 임신은 여자와 남자 공동의 것이다. 여자 혼자 그 고민을 짊어지고 갈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임신을 하려면, 꼭 남자와 충분한 상의 후에 아이를 가졌으면 좋겠다. 임신일 때의 가사 분담은 어떻게 해야할지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펼쳐질 육아세계까지임신과 육아 관련 서적을 충분히 읽으면서 이 일들을 다 감당할 수 있을시 심사숙고 한 뒤에 아이를 가졌으면 좋겠다. 다른 동식물과 달리, 인간은 혼자 자라지 못한다.
가끔가다 "내 남편은 기저귀 잘 못 갈아서 그냥 내가 해.."라는 여자들도 있는데, 못 하면 가르치면 된다. 우리 할머니 표현에 따르면, "공부가 어렵나 기저귀갈기가 어렵나? 공부 못해도 집안일이 뭐 그렇게 어려워!"라고. 내가 키워야할 건 내 아기이지, 내 남편이 아니란 말이다.
여자 혼자 이 모든것을 감내하는것은 여자 뿐 아니라 남자의 (아빠로써의) 성장에 있어서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부디, 세상의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첫째. 그렇게 책임이 막중한 일을 제발 "원나잇엔조이"로 덜컥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생이 걸린 일이다. 고민, 고민, 또 고민해도 늦지 않다.
둘째, 내가 돌봐야 하는건 내 아이이다. 남편이 아니다. 진짜 애 키우듯 남편을 키우고 싶어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면, 남편에게 명확히 지시해야 한다. 당신은 이 아이의 아버지라고, 아이를 위해 이것, 이것, 이것을 할 의무가 있다고.
비록 물리적으로는 여성의 몸 속에서 아이가 자라지만, 그 씨앗의 절반은 남자가 제공하였다. 새 생명의 소중함을 여자 혼자만 느끼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