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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의선물 Apr 26. 2022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곳으로 가득한 도시 런던

아이와 여행하기 좋은 유럽 여섯 도시 1

  런던의 겨울 해는 짧기도 짧아 겨우 오후 2시가 넘은 시각인데 왠지 날은 벌써 어두워진 저녁 느낌이다. 짧은 런던 여행에서 두 번이나 들른 코벤트 가든의 찻집에서 차를 한잔 마시고 다시 지하철로 Charing Cross Station역으로 가서 내셔널 갤러리가 있는 트라팔가 광장에 도착했다. 아이는 광장의 분수대를 바라보더니 잠깐 멈췄다가 분수대로 돌진해서 올라가려고 한다. 다시 반대쪽 다리를 올리고 낑~!낑~!! 아이는 이런데 올라가는 걸 참 좋아한다. 거의 본능적으로 올라간다. 차 한잔 마시고 쉬었다 오니 체력이 다시 살아났나보다. 어서 그림 보러 가자. 내셔널 갤러리로 향한다     


 내셔널 갤러리에 입장해서는 아이가 어린이 잡지에서 봤다며 가장 보고 싶어했던 그림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 앞에 선다. 그러면서 이 그림에 숨은 비밀도 설명해 주었다. 어디서 읽은건 있어 가지고. 나는 잘 모르는 그림인데 또 어느 그림 앞에서 아이는 한참 설명해주었다. 요모조모 생각보다 그림을 잘 보고는 나름의 감상평도 내어 놓는다. 술과 도박에 찌들고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른 화가의 삶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의 카라바조의 그림과 흐릿한 기억 속 풍경 같은 모네의 그림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아이가 또 달려온다. 고흐의 빈 의자와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 이 그림도 자기가 아는 그림이라며 내 손을 잡아 끌고는 설명한다. 어린이 잡지에서 봤다고 했다. 그림 속에 숨은 나이 숫자 등을 알차게 설명해 주는 아이도 체력이 많이 달리는 모양이다. 유럽 미술관 여행은 지식과 체력이 있어야 한다. 진짜 다리 아프고 지친다. 프라도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내셔널 갤러리도 정말 체력전이다. 아이의 지친 표정의 무게가 무거워져 미술관 바닥에 닿아 질질 끌려가는 지경이지만 그림을 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그만 나갈까?” 라고 슬쩍 물어보니 단호하게 안 된단다.

“영국까지 왔는데 다 봐야 해” 라고 엄마 아빠 모드로 돌입한다.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 앞에서 아이는 이 그림을 보더니 이것도 설명 모드로 진입. 넌 도데체 이런걸 어디서 알게 된거니? 난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신기한 녀석이다. 아이는 결국 힘든지 미술관 벤치 지쳐 드러눕는다. 미술관에서 거의 2시간 반을 넘겼다. 이젠 나도 아이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국박물관으로 간다. 아이와 오이스터 카드 한 장으로 런던 지하철을 탈땐 저 넓은 개찰구를 이용하면 같이 나갈 수 있다. 아침부터 종일 돌아다니니 안 피곤할 수가 없다. 자연사 박물관에 들러 거대한 공룡의 화석과 이렇게 큰 다이아몬드가 있나 싶을 정도로 큰 다이아몬드 원석들을 보았다. 지진체험도 하고, 거대한 고래도 만났다. 그리고 이어진 버킹엄 궁전 - 웨스트민스터 사원 - 빅밴 - 런던아이 - 버로우마켓까지 초초 강행군이었으니 다리가 진짜 너무 아팠다. 그만 걷고 싶을 지경이었다. (결국 이 여행에서 바르셀로나에서 족저근막염이 와서 쩔뚝쩔뚝 걸어다니다 마지막 날은 다니는 걸 아예 포기했다.) 어느새 완전히 깜깜해진 5시가 되어간다. 아이에게 슬쩍 운을 띄운다.


"영국 박물관은 너무 힘드니까 가지 말까?"

"무슨 말이야. 런던까지 와서 안 보고 간다는 게 말이 돼?"

"그래. 가자"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박물관 문 닫기 한 시간 전이었다. 분명히 오후 5시인데 깜깜해서 한밤처럼 느껴진다. 박물관 폐장 시간 40분이 채 남지 않았다. 영국 박물관 뒤편으로 후다다닥 들어가서 바로 3층 이집트관으로 올라간다. 파라오의 미라들. 수천년의 시간을 견딘 미라들. 신기하기도 하고 그럴 리 없겠지만 가짜 같기도 하고 파라오의 관들도 유심히 살펴보고 이게 내장을 담는 항아리랬나. 아이는 그 지친 몸으로 또 설명 모드. 그리스 로마관으로 넘어와서도 열심히 본다. 아이가 박물관도 이렇게 열심히 볼 줄이야.


  번쩍이는 황금 장식은 눈이 안 갈 수가 없다. 입장한지 30분만에 뒤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양치기가 양을 몰듯 우리는 우르르르 내몰려서 쫓기듯 나가야 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박물관을 나가고 우리도 그 무리에 휩쓸려 계단을 내려가야만 했다. 왜 런던에서 하루 이틀을 더 잡아 놓지 못했을까 너무 아쉬웠다. 


 아이가 꼭 가 보고 싶어 했던 셜록 홈즈 박물관도, 노팅힐 포토벨로 마켓도, 그리니치 천문대도 못 갔다. 긴 하루의 여행으로 오늘 정말 지쳤을텐데 아이는 그때도 웃고 있다. 내일은 세비야로 넘어가는 날이라 날도 밝지 않은 이른 아침부터 정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기분으로 런던을 다 돌았다. 너무 아쉽고 비행기 타는 그 순간부터 런던은 꼭 다시 와야지 하는 생각을 간절히 남기고 보낸 하루였다. 여행 다니면서 이날처럼 바쁘게 돌아다닌 날이 없었다. 


  해리포터 스튜디오를 다녀온 날은 아이와 함께 애프터눈 티를 마시러 갔다. 런던에 가기 전부터 아이는 런던에 가면 꼭 애프터 눈 티를 경험해 보고 싶다 했다. 애프터 눈 티의 나라 영국답게 애프터눈 티를 내 놓는 곳만 모아 놓은 사이트가 있었다. 그 사이트에 들러 우리 숙소와 멀지 않은 호텔에서 30% 할인 되는 셋트로 골라 예약 메일을 보내 놓고 런던으로 떠났었다. 분명히 애프터눈이었는데 우리가 호텔로 들어설 때 이미 날은 컴컴해지기 시작했었다. 아이는 이 날 마셨던 홍차와 맛있는 것들로 가득했던 3단 트레이 앞에서 머물렀던 그 여유가 그립다고 했다. 이리저리 차를 우려내 마시면서 갈색 각설탕으로 장난하며 놀던 아이였다. 런던에 가면 맨 먼저 그때로 다시 가보고 싶다 한다. 


  아이에게 지금까지 다녔던 도시들 중에 “한 군데만 다시 갈 수 있다면 어디를 고를래?” 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이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 런던. 그만큼 런던은 볼 것도 많고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게 가장 많은 도시다. 스위스에 아이들이 좋아할 자연과 액티비티가 있고 로마에는 역사가 남긴 유적이 있다면 런던에는 아이들이 보아두면 기억할만한 명화가 있고 역사가 있고 유물이 있다. 영국만의 분위기를 내는 공원이 있다. 무엇보다 여유가 있다.  세비야로 떠나는 런던 게트윅 공항의 주황색 이지젯 항공이 이륙했다. 세비야로 가는 설렘보다 런던에 남겨두고 온 아쉬움이 더 진하게 남은 잿빛 하늘이었다. 


 런던 다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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