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고난 아이와 유럽여행 일기
아이와 마지막이라고 여긴 다섯 번째 유럽 여행 준비를 시작한 것은 2021년 9월. 그러니까 작년 가을에 비행기표를 사 두면서였다.
하지만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코로나로 인해 이 불확실한 여행은 언제든 포기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고, 취소되더라도 취소 수수료 정도는 10개월간 여행의 기다림과 설렘의 대가로 내어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런던으로 들어가서 벨기에로 건너와 파리, 스위스를 거쳐 로마로 나오는 일정이었기에 예닐곱번 정도 장시간의 고속 열차 이동이 있었다. 구간권과 유레일패스 가격을 비교해 보니 엇비슷한 가격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여행 일정 변동에 대비하기에는 유레일 패스가 나아보였다.
2022년 5월에 미리 유레일 패스를 구매했다. 아이와 내가 한 달안에 2등석으로 칠일을 사용할 수 있는 패스였고 74만원을 결제하자 이메일로 모바일 유레일 패스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핀 번호를 받았다.
유레일패스를 활성화 시키지만 않는다면 전액 환불 받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 '갈 수 있을지 못 갈지 모르는 이 여행의 불확실함이 확실함으로 바뀌면 그때 패스를 활성화 시키리라.' 마음 먹었다.
동시에 틈틈이 유로스타, 탈리스, 파리/ 스위스/ 이탈리아 철도청을 들락거리며 이동 일정에 맞추어 타야 할 기차 시간과 환승역을 구글맵으로 살펴두었다. 이 구간은 모두 미리 좌석을 예매하지 않으면 탑승할 수 없는 구간이었다. (나중에 모바일 유레일패스 사용법과 좌석 예약 방법을 따로 쓰겠지만 정말 쉽지 않다)
런던 여행 사흘 째날 밤,
아이는 잠들었고 나는 잠들지 못했다. 이런 저런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맞다. 유레일패스로 유로스타 예약 안 했다.' 싶어
얼른 유레일패스를 활성화하고 유로스타 자리를 찾아보았다.
잉? 응?
아무리 돌려보고 찾아봐도 좌석 예약이 되지를 않는다.
저 붉은 글씨가 내 뿜는 기운의 불길함은 걱정으로
꽉 찬 이 고난 여행에 결정타를 내리 치고 있었고
나는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붕괴되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Prices unavailable
No price results were found for this connection. It is possible that all pass holder seats are sold out. Please try searching for another connection or check 'More information' and try other ways to book this seat reservation. If no pass holder seats are available anymore you need to buy a separate full fare ticket to board. board.
더 이상 이 가격으로 구매 불가. 유레일패스로 살 수 있는 표가 다 팔렸음.
다른 방범을 찾아 자리를 예약하거나 풀 요금을 다 내고 탑승권을 사라.
'풀 요금? 얼마지? 한달전에 검색했을 때 12만원이었는데... 어디 보자..'
최소 가격이 448유로. 60만원이 넘는 돈이었다.
심장이 쪼개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꺼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이걸 구매하면 여행 온지 사흘만에 120만원 가까운 돈을 잃게 되는 셈이었다.
런던에서 벨기에, 런던에서 암스테르담. 유로스타가
갈 수 있는 모든 행선지로 날짜를 매일 바꿔가며 1주일 이상 뒤로 미뤄 검색해봐도 모두 자리가 없다.
늦어도 7월초에는 예약을 했었어야 할 일이었다.
더구나 영국 철도 파업과 휴가철이 맞물리면서 유로스타 좌석 구하기는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을
런던에 도착하고서야 알았다.
'그래, 유럽 내 이동 비행기는 저렴했었어.' 비행기를 알아보니 직항은 이미 없고 공항에서 최소 9시간 야간 노숙하는 경유 편으로 1인당 30만원.
'맞다. 버스도 있어. 버스로 가면 되겠지'
플릭스 버스를 알아보니 가격이 1인당 20만원이 넘는 표만 남았는데 그마저도 밤 11시 출발이다.
여기 숙소를 오전 11시에 체크아웃한다면 밤 11시까지 12시간을 아이와 길바닥에서 보내야 한다.
이 불확실함에 내 여행이 밀린 것이다. 나의 불안함과 머뭇거림이 여행을 망쳐놓고 있었다.
모바일 유레일패스 74만원을 지키려다 그 두 배를 날리게 되었고 이 무대책의 여행 준비에 내 뺨을 사정없이 후드려 쳐대고 싶었다.
저 티켓이라도 사야 하나.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그것마저 살 수 있는 카드가 없다. 카드는 모두 분실 상태이다.
울음도 나오지 않고, 힘이 쭉 빠지면서 그대로 무슨 비행기든 잡아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가슴이 터질 거 같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찬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어쩌자고 나한테 이러니.
꼭 이렇게까지 가혹한 여행이어야 하는가.
이제 나는 아이와 이 섬을 나갈 방법이 없다.
새벽 1시.
벨이 울렸다.
띠익--- 벨소리가 짧게 울린다.
10분 후 다시 울린다.
띠익------------- 이번은 더 길게 울린다.
불이 꺼진, 주인도 없는 아이와 나 밖에 없는
이 무섭고 어둡고 캄캄한 숙소에 그대로 갇힌 밤이었다.
다시 벨이 길게 울린다
띠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