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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의선물 May 21. 2023

새벽 1시 런던, 숙소에 벨이 울렸다.

아이와 유럽 1일 1고난 여행기 - 혹시 한국 사람이세요?


'초인종 벨 소리가 ..  이 시간에'



벨소리는 끊어질 것 같지 않았고 예상대로 계속 울렸다.

삐걱거리는 마루바닥 소리에 아이가 깰까 살금살금 서쪽으로 난 부엌 창문을 향해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현관불이 켜져있다.  빗물 받이 지붕에 가려 누구인지는 보이지 않는다.


전자음도 아닌, 마치 모스 부호 수신기 소리 같은, 

전기에 감전되었을 때 온 근육이 찌리릿 하는 진동의 벨이 다시,


띠---- 울린다. 

그 소리에 마치 감전되는 느낌이다.



컴컴한 계단을 벽을 짚고 내려간다. 계단의 불은 아래층 입구에서만 켜고 끌 수 있기 때문이다.

3층 입구의 문을 열고, 2층을 내려가 열까 말까 망설였고, 

난 아직도 이 초인종을 누른 사람이 누구인지

왜 이 시간에 벨을 누르는지 알지 못했다.


온 두려움에 떨리는 손으로 1층 철문을 살포시 열었다.


눈이 너무도 커다랗고 무서운 덩치의 여자 

그 옆에는 작고 귀여운 소녀가

서 있었다.


모녀 관계로 보였고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부동자세로 서서 "땡큐"라는 말 뿐. 표정이 없었다.

너무 무서웠다.

공포영화의 처키 같았고 나는 바로 뒤돌아섰고 빨리 올라가고 있었다.


그 때,

옆에 서 있던 예쁜 소녀가 말하길



"혹시 한국 사람이세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건 정확하고, 또렷한 발음의 한국말이었다.


"네?"



공포 그 자체였다.

새벽1시. 런던. 모든 것이 낯설고 나를 아는 사람이 있을 수 없는

여기, 이 시간에 처음 보는 외국인이 한국어로, 나의 국적을 묻는다. 

이들이 FBI나 영국 경찰일리 없을 것이고, 오히려 그 반대편에 가까운 이들이라는 게 차라리 맞는 논리였다.


대답도 하지 않고 얼른 올라와 방문을 힘껏 밀어 잠갔다.

그 소동에 1층에 살던 사람이 문을 열고 나왔고, 잠시 영어로

신경이 날선 목소리들이 오갔다. 내가 들은 것은 '에어비앤비' 라는 단어가 몇 번 오갔다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 뒤를 따라 올라와 옆방으로 들어가는 소리를 듣고서야 

옆방의 게스트라는 것을 알았다.


다음 날 아침 

숙소에는 주인이 돌아왔고, 주인 고양이는 주인 방 대신 우리 방을 숙소로 삼았다.

밀어내도 들어오고 밖으로 또 밀어내도 들어온다.

아예 잠도 우리방에서 잔다. 세상에 이런 고양이가 다 있나.


다음, 다음 날 아침

나는 그 사람들이 우리 옆방의 다른 게스트이며

칠레에서 온 여행객이며 엄마로 보였던 사람은 언니, 작은 소녀는 동생이었다.

언니는 스페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고, 동생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전공 1학년.

그러고 보니 아이가 며칠전에 했던 말이 그때야 생각이 났다.


"아빠, 어디서 우영우 드라마 소리가 들려"

"그럴리가 있어."


그리고서 열어본 냉장고 한 쪽에는 내가 잘 아는 브랜드의 술병이 들어있었다.

'국순당 막걸리'


숙소 주인이 현관 열쇠 하나를 주었는데 1층에 사는 런던 현지인은

밤에는 두 곳의 잠금 장치 모두 잠궈버렸기에 두 사람이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이었다.

내가 옆방에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고

나는 옆방에도 게스트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차이가 있었다.







가난한 내 여행의 아침은 전날 테스코 익스프레스에서 산 

2파운드짜리 포도, 1.5파운드 납작 복숭아

역시 합쳐봐야 2파운드가 안 되는 우유와 주스다. 

가장 비싼 샌드위치가 2파운드 정도. 그리고 진라면 컵라면

꼭 매운맛이어야 한다는 아이의 요구대로. 지금 가지고 있는 돈으로 먹을 수 있는 최선의 아침식사였다.


지금 우리는 런던에 갇혀서 나갈 수 없는 상황인 걸 아이는 모른다.

그렇다고 그 걱정과 생각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숙소에서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여행은 또 해야 하기에.



언제까지 런던에 있어야 할지도 모르고 이 숙소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2박이 남았다. 

이 날 일정은 브라이튼과 세븐시스터즈를 다녀오는 일정이었고

기차표는 미리 한국에서 예매를 해 두고 왔기에 다녀오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유레일패스나 예매해 둘 것이지, 브라이턴으로 가는 기차는 좌석이 텅텅 비었었다.




여행을 마치고 밤이 찾아왔다

거대하고 멋진 풍경에, 이 걱정을 티 낼 수 없는 시간이 지나자

다시 이 섬을 나갈 방법이 없다는 고난 앞에서


맥주를 마셨다.

손가락을 다쳐 비지니스석 비행기에서 주는 와인과 맥주도 맛만 보고 내릴만큼 안 마셨던 술인데

돌아오는 길 저녁 마트에서 맥주를 사 오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그 때 파리로 들어온다는(이 친구와는 1년에 딱 한 번, 여행 시즌에만 연락하게 되는 동갑이다) 지인이 생각 났다.

'아 맞다. 얘 오늘 파리로 들어온다 했지.' 





너 암스테르담으로 가라.

응? 뭐라고? 암스테르담???


            - 6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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