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 이렇게 계속 일 하면 나중에 손가락 다 휘어지고 손가락 다 못 쓰게 돼요.”
정형외과 의사에게 티는 못 냈지만 정말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적어도 2주 이상은 일을 하지 않고 약 먹으면서 푹 쉬어야 해요.”
이미 오픈을 하고 한 달이 지났고, 일주일 전에도 손가락이 아파 가게를 쉬었는데 지금 이대로 계속 일을 한다면 다시는 손가락을 못쓰게 될지도 모른다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가장 두려웠던 건 카페 운영도 못하고 내가 사랑하는 기타를 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 팔씨름 왕, 턱걸이 왕이었던 나는 악력은 누구보다 강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카페 창업을 시작하고 몸의 변화가 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몸은 견디지 못하고 여기저기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손가락의 상태는 매우 나빴다. 급성 건초염이었는데 얼마나 아팠는지 핸드폰을 들지도, 손가락으로 메시지를 치지도 못했다. 손가락으로 카톡을 톡톡톡 치는 순간 손가락 관절 마디마디 통증이 전해져 음성 녹음 기능으로 메시지를 입력해야 했다. 밥 숟가락을 들지도 못하고 손가락이 너무 아파 화장실 뒤처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방문도 못 여는 것은 당연했고, 옷도 못 입었고 잠 잘 때도 고통스러워서 손을 어떻게 펴고 자야 할지도 모른 채로 어설프게 잠이 들었다.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내가 호기롭게 셀프 인테리어를 한다고 페인트를 칠하고 붓을 물로 헹굴 때, 그 붓의 페인트물을 맨손으로 만지며 헹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해대서 페인트 독이 손가락 안으로 다 들어간 거라고...
일리가 있는 말씀이었다. 페인트 독이 얼마나 유해한지도 모르고 그걸 장갑도 안 끼고 맨 손으로 씻었다니... 물론 머신, 포터필터, 셀프 인테리어, 무거운 액체류 들고 나르기 등등 내게 갑자기 일어난 무리한 노동과 한 달 동안 하루도 안 쉬고 가게에 나와 일을 한 것들이 복합적인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의 무서운 협박 덕분에 나는 오픈 초기 무조건 열심히 달려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남편과 의논하여 무려 5일간의 휴식에 들어갔다. 그리고 약을 먹으며 푹 쉬기로 결정했다.
나는 쉬는 날에도 점점 더 부어오르고 아픈 손가락을 온몸으로 느끼며 사람의 ‘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너무 많은 일을 하는 우리의 ‘손’..
‘손을 쓸 수 없다’ 의 사전적 의미는 ‘나의 힘으로 어떤 일을 해결하지 못함’이다. 손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인가.
손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는 괜찮아요, 네가 아픈 게 걱정이야.”
남편의 말이었다. 내 손은 고작 5일 만에 말끔히 낫지는 않았다. 하지만 더 쉴 수는 없었기에 가게에 나가기로 했고 손의 염증 때문에 얼굴도 울상이고 몸도 만신창이인 나를 대신하여 남편이 한동안 가게 오픈을 도와주었다.
착한 남편은 7시에 출근하는 날에는 아침 6시에 가게에 나가 머신 켜기, 입간판들 내놓기, 가게 청소하기, 원두 부어놓기, 손님용 물 부어놓기 등의 내가 아파서 할 수 없는 일들을 우렁각시처럼 해주고 본인 출근을 했다. 겨우 겨우 일어나 밥을 먹고 가게에 나가면 그림처럼 오픈 준비가 되어 있던 가게의 모습과 남편의 손길이 느껴져 울컥했다.
그 무렵 남편에게 ‘본인 출근도 일찍 가느라 힘든데 가게까지 가는 게 힘들지 않으냐’고 물어보면 남편은 “나는 괜찮아요. 네가 걱정이지.”라고 진심 어린 대답을 해줬다. 그 따뜻한 말과 행동이 고맙고,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서로 고마워하면서 잘해주면서 살아야지. 글을 쓰는 지금도 다시 다짐하게 된다.
쉬는 날 큰 병원에 갔다. 큰 병원에서는 나를 대수롭지 않은 환자로 여기며 오히려 다른 말을 해주었다. 그 의사는 ‘너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며 조금씩 움직이고 손목을 스트레칭 하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러고는 약을 지어주셨는데, 그 약을 약 한 달간 복용하고 손가락 건초염은 나을 수 있었다.
그 후로 만성 ‘손목’ 통증이 일 년 넘게 그리고 현재까지도 지속될 거라곤 알지 못했지만, 생전 처음 겪어보는 고통스러운 급성 손가락 건초염의 경험은 그 해 여름,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