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떤 하루 Jun 12. 2020

한국에서 12일 만에 도착한 택배

2020.06.08


약 2주 전부터 나를 오매불망 기다리게 한 것, 바로 가족들이 한국에서 보내준 EMS 택배다. 삿포로를 비롯한 일본 지방에서 한국을 오가는 직항 편이 다 끊이고 그나마 운항 중인 나리타 항공편도 편수가 줄면서 EMS를 못 보낸다, 보낼 수 있다 등등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설사 보내도 몇 달은 걸린다는 말까지 있어서 아예 맘을 접고 있었는데, 5월 들어서면서 2주 정도면 택배를 받을 수 있다고 하길래 부모님께 택배를 부탁했다. 원래 이번 택배의 주목적은 마스크였다. KF94가 아닌 부직포 일회용 마스크는 수량 제한이 없다고 해서 보내달라고 했는데, 부모님이 우체국에 직접 가서 물어보니 부직포 일회용 마스크도 제한이 있다고 해서 그냥 식료품만 받기로 했다.


일본에 처음 왔던 2000년대 말에는 여기서 구할 수 있는 한국 식료품이라곤 신라면, 고추장 정도였다.(엄청 옛날 사람 같다...) 그 당시에는 EMS 온다고 하면 오랜만에 한국 음식 먹을 생각에 며칠 전부터 설렜던 기억이 있다. 누구 한 명 EMS 오는 날에는 주변 한국 친구들 다 불러서 한국 요리 파티했던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한국 가족들의 사랑이 듬뿍 담긴 EMS은 타지에서 가족들을 떠올리게 해주는 동시에 한국 친구들과 고향의 정을 나누는 그런 상자였다. 그 사이 일본에 다양한 한국 식료품이 들어오면서 요 몇 년 동안은 EMS를 받을 일이 줄었다. 한국 직항 편도 늘어서 한국 갈 기회도 많아지다 보니 한국 갔을 때 필요한 것만 사 와도 크게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설마 이 몇 달 사이에 한국 갈 길이 막힐 줄이야. 원래 '한국 음식 없인 못 살아' 이런 사람도 아닌데 당분간 한국에 못 간다고 하니까 식료품이라도 받아야 맘이 놓일 거 같았다.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싶은 마음인 걸까.


일본은 도쿄, 오사카 아니면 택배를 못 받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잘 알아보니 그 지역권 내에 해당되면 배송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다. 홋카이도는 섬이 달라서 아예 기대도 안 했는데 신기하게도(?) 도쿄 지역권에 포함되어 있어서 배송이 가능했다. 평소 같으면 3~4일 안에 도착하지만 지금은 열흘 정도 걸린다길래 마음을 진득하게 먹고 기다리려 했으나... 매일 눈 뜨자마자 배송 상황을 확인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다. 5월 25일 접수 이후로 6월 1일까지 인천 물류센터에 있던 내 택배... 정말 비행기 잘 타는 거 맞을까 목 빠지게 기다리다 보니 그 긴 접수 번호까지 다 외워 버렸다. 결국 6월 2일에 한국을 출발해서 5일에 도착. 예정보다 늦어지긴 했지만 12일 만에 도착했다.


진짜 오랜만에 버선발로 달려 나가서 받은 택배. 일본에도 당연히 소금 있는데 맛있는 거라면서 굳이 또 소금 보내주시고, 닭다리는 내 초딩 때 최애 과자였는데 딸내미 취향 기억하는 우리 어무니 아부지의 마음. 식료품 산 값이며 비싼 택배비 따지면 그냥 여기 한인 마트 같은 데서 비싸게 사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한국에서 택배를 받고 싶었다. 택배 상자에 한 가득 담겼을 부모님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었던 걸까.

여하튼 다음 한국 갈 때까지 잘 버텨보자.(제발 입국 제한 좀 풀어줘...)



+ 주말 사이에 조회수가 10만이 넘었네요...

메인 화면에 소개된 덕분이겠지만 한편으론 외국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시는(혹은 반대로 외국에 가족을 보내신) 많은 분들이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실감했어요. 한국을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택배 하나 맘 편히 못 받는 지금이 많이 불편하고 답답하지만 지금은 모두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해나가면서 그 속에서 작은 기쁨이나 소소한 행복 같은 걸 찾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오늘 점심으로 부모님이 보내주신 진비빔면을 한 그릇 때리고 다시 한 주를 씩씩하게 시작하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올해 라일락은 집 근처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