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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하루 Jun 12. 2020

전시 관람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2020.06.09


어언 5개월 만에 전시를 봤다. 코로나로 휴관되었던 집 근처 미술관이 2번(3번?)의 휴관 연장 끝에 얼마 전 다시 문을 열었다. 어느 나라나 지금 박물관, 미술관이 놓인 상황은 거의 같을 것이다. 몇 년간 준비한 전시가 세상에 빛도 못 본 채 취소되거나 연장되고 있는 상황. 또다시 휴관이 연장되지 않을까 했는데 긴급비상사태 선언이 일단 종료되면서 재개관하였다.


사실 영화를 보거나 전시를 감상하는 등의 문화생활은 없어도 먹고 살 수 있고 때로는 ‘사치’로까지 여겨진다. 영화 안 봐도, 전시 안 봐도 숨 쉬면서 살 수는 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그런데 코로나라는 물리적인 이유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문화생활을 자유롭게 즐기지 못하게 되고 나니 이런 것들이 삶 속에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는 걸 새삼 느꼈다. 특별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가끔 혼자 보는 전시나 영화, 조용한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 등등. 잠 못 자면 졸리고 밥 못 먹으면 배고프듯 문화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마음이 허해진다. 몸을 챙기듯 마음을 살피고 돌봐주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다.

홋카이도립근대미술관


삿포로는 적당히 크고 적당히 작아서 먹고사는 데는 불편함이 없는 도시다. 공기도 좋고 자연도 깨끗해서 살기 좋다. 일본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 1, 2위로 꼽기도 하고, 요 몇 년 사이엔 우리 나라에도 많이 알려져서 종종 친구들한테 이곳에 사는 게 부럽다는 말도 듣는다. 좋은 곳이지, 좋구 말구.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을 꼽자면 문화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게 적다는 것이다. 삿포로는 일본 5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도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누릴 수 있는 문화 자원이 적다고 느낀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수도 적고 그렇다 보니 당연히 다양한 전시를 접할 기회도 적다. 그 외에도 전국을 도는 각종 세미나, 강연, 콘서트 등등의 문화적 이벤트가 여기까지 안 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문화적 허기를 채우려면 비행기 타고 홋카이도 밖으로 나갔다 오는 수밖엔 없다. 그래서 주변엔 비싼 돈 들이면서 한 달에 한 번 강의 들으러 도쿄에 가는 사람도 있고 오랜 이직 준비 끝에 결국 간사이 지방으로 이사 간 친구도 있다. 그렇다 보니 이곳에서 근대미술관은 중요한 존재다. 삿포로 시내에 미술관이 몇 군데 더 있긴 하지만 해외 전시나 전국 순회전을 개최할 정도의 규모는 근대미술관 정도이기 때문이다.


재개관 직후에는 왠지 사람이 몰릴 거 같아서 일부러 평일 오전에 갔는데도 특별 전시실에는 관람객이 꽤 있었다. 미술관 들어가기 전 입구에서 체온을 잰 후, 전시실 입장 전에 종이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서 내면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전시실 바닥에도 적정 거리마다 표시가 되어 있어서 주변 사람과 간격 유지하면서 관람할 수 있었다.


지금 개최 중인 특별전은 폴란드 출신의 프랑스 화가 모이즈 키슬링의 전시다. 이 작가에 대해선 사실 아는 게 없어서 전시가 더 기대되었다. 전시를 관람하는 목적은 크게 새로운 지식을 접하기 위해서거나 원래 알던 지식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로 나눌 수 있는데(물론 양쪽 모두일 때도 있고), 나는 확실히 전자처럼 전혀 몰랐던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는 전시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19살에 파리로 건너온 작가는 피카소, 모델리아니 등 많은 예술가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전시에선 특히 초상화가 많이 소개되었는데, 모델 대부분의 표정이 어둡고 눈의 초점이 맞지 않는다. 어딘가 우울하고 불안해 보이는 모델의 분위기가 강렬한 색채와 대비되어 더욱 극대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초상화 외에도 정물화 중 특히 꽃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사실적이면서도 인위적인 모순성이랄까.

일본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아직까지 촬영이 금지된 곳이 많다. 최근에는 전시 작품 중 일부만 촬영이 가능하도록 바뀌고 있는 추세이다.


전시 관람이나 작품 감상하면 어렵다, 무겁다, 따분하다 등으로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왠지 교양 있어야 할 것 같고 몰라도 아는 척해야 할 것 같고. 근데 정말 그렇다면 굳이 비싼 돈과 귀한 시간을 들여가며 갈 필요가 없지 않을까. 전시의 내용에 따라 감상 목적은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일상 속의 '비일상'을 접한다는 목적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다 보면 내 감정에 집중할 시간이 많지 않다. 또 일상을 평온하게 굴리기 위해서 일부러 감정에 집중할 시간을 회피할 때도 있다. 그런데 전시라는 한정된 시공간 속에서 작품을 바라보면 특별하고 대단한 지식이 아니라도 어떤 사소한 궁금증이 생기고, 새로운 느낌을 받기도 하고, 혹은 묻어뒀던 기억과 마주하게 될 때도 있다. 온전히 내 감정과 생각에 집중하는 순간. 일상 속에서 가끔씩 그런 '비일상'을 접하는 게 바로 마음을 보살피고 허기를 채워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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