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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훈 Nov 25. 2021

프라하의 연인의 연인

Day 8

1.여유로운 기상

프라하에 온 후 자정을 넘어 잔 적은 처음인지라 8시가 넘어까지 늦잠을 잤다. 어차피 대부분 일정을 소화한지라 급할 것도 없다. 누워서 지구 반대편 소식을 접한 후 남은 짜장을 소화하기로 한다.


게스트하우스 김비룡은 요리실력이 일취월장하여 남은 파를 볶아서 짜장에 고명으로 올려보았다. 언제나 정겨운 고향의 맛. 파고마양은 역시 상비약이다.


2. PCR test


코로나로 별 걸 다해본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안쑤시는 코를 여기까지 와서 쑤셔야 한단다. 여차저차 구글맵을 따라 오니 정황상 검사소로 보이는 컨테이너 박스. 짧은 영어를 동원해서 현장예약을 마치고 약간의 대기를 거쳐 입장. 원화로 약 6만원. 냅다 코 쑤시고, Ok, Bye. 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와 똑같다. 결과는 내일까지 메일로 주겠다는데, 증상은 전혀 없지만 양성이면 골치 아프니 부디 무사히 복귀할 수 있기를.


3. 구시가지 광장에서의 점심

아침을 파짜장으로 거하게 먹은지라 전혀 출출하지 않았으나, 저런 영롱한 돼지 통구이를 그냥 지나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맥주 한 잔까지 곁들여 약 9천원. 전통시장에 가면 파는 통구이 삼겹살과 맛이 비슷허다. 이제 임박한 크리스마스 마켓 준비과정을 구경하며 얼마 남지 않은 프라하에서의  시간을 아쉬워하며 얼마 남지 않은 생맥주로 목을 축여 본다.


4. 카프카 박물관


프라하가 낳은 최고의 문호, 프란츠 카프카. 프라하성 투어에 숨겨진 카프카의 생가부터, 현대 미술가 체르니의 작품 “움직이는 카프카”까지, 도시 곳곳에는 그의 흔적이 묻어 있다. 그리고 그 집약체가 카프카 박물관이라 하겠다.


카프카의 원고나 작품 초본들, 아버지에게 썼던 편지들과 4명이나 되는 그의 여인들과 기록들까지. 영어로 되어 있어 정확한 의미를 받아들이긴 어려웠지만, 살아생전 그닥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던 위대한 예술가의 처연한 슬픔이 느껴졌다. 일부러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려 했는지도 모르지만.


프라하 오는 비행기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첫번째 부인과 약혼과 파혼, 약혼 후 결혼 끝에 이혼하였고, 재혼, 삼혼하였으나 40세에 일찍 맞이한 임종은 다른 여성이 함께 했다고 한다. 예술가의 삶이란 그런걸까. 안정적인 삶에서는 그를 뛰어넘는 작품을 그려낼 수 없는건지, 위대한 예술가일수록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통재라.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할 지라도 안정적인 브런치를 써야지.

화장실 겸 아이폰 충전을 위하여 까를교 뒤안의 스타벅스를 들렀다. 오는 비행기에서 읽지 못한 카프카의 ‘성’이나 마저 읽고 천천히 나가야지.


5. 알폰소 무하 박물관

알폰소 무하. 미술에 대해선 소양이 얕기에 , 카프카에 비해서는 다소 낯선 이름이다. 허나 작품을 보니 바로 느껴졌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 나무위키를 검색해 보니 월령공주로 대표되는 지브리 작품들과 세일러문에도 영향을 끼친 아르누보 화파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한다.


프라하에서 태어나 당시 웬만한 예술가들이 모두 모이던 파리에서 주로 활동했다고 하는데 예술 작품이 아니라 연극이나 영화의 포스터를 그리며 유명해졌다고 한다. 현대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일러스트레이트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그의 포스터들은 작품을 뛰어넘는 인기를 누렸고, 길거리에 전시된 포스터들을 뜯어서 소장하는 웃지 못할 일들도 자주 벌어졌다고 한다.


여하튼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화가가 세계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적인 작품도 많이 그려냈으니 체코인이 자랑스레 여길 만하다. 박물관에서 잔뜩 구경하고 프라하뽕에 취하여 기념품도 살 뻔했으나, 아쉽게도 실사구시 정신에 걸맞는 기념품은 없어 참았다.


6. 새로운 인연들과의 저녁

전 날 고향 친구 - 와 다를 바 없는 - 들과 진한 해후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지라, 더이상 혼술은 어려웠다. 까페를 통해 이래저래 동행을 구하다 보니 건장한 청년 - 법적으로 만 39세까지는 청년이다 - 이 넷이나 모였다.


메뉴는 단연 꼴레뇨. 어제도 먹었고 오늘도 먹었지만, 내일도 먹어야지. 주고 받는 맥줏잔에 지나온 여행담을 주고 받았다. 유럽은 적어도 2주 이상  여유가 있어야 방문할 수 있는 곳이기에 무작정 방문하기도 어렵거니와 - 물론 나는 무작정 - 신기하게도 만나는 일행들마다 어마어마한 여행경력을 자랑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파리, 스페인 일주를 하고 한국에서 휴식 후 다시 프라하를 찾은 동생, 졸업반이라 한 달 간 서유럽을 돈 후 프라하에서 아웃하려는 동생, 아이슬란드, 덴마크, 독일을 거쳐 프라하에 온 후 헝가리로 가려는 동생들의 어마어마한 여행담은 긴긴 프라하의 밤을 풍요롭게 했다.

코젤다크 직영점이라는 맛집을 찾아 2차. 5천원 남짓하는 감자칩 퀄리티가 훌륭하다. 이 정도면 봉구비어 귓방망이 날릴 수 있을 듯. 물론, 코젤 집을 찾아 필스너를 마셨지만, 코젤은 필스너 거고, 필스너는 아사히 소속이다. 독립운동은 못해도 불매운동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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